So long, and good luck
'So long, guys'
출국 1주 전쯤인가, 동네 가장
큰 grocery 직원들, 그리고 이후 조금이라도
말을 트게 된 현지 사람들에게는 늘
끝인사를 저렇게 덧붙였다.
아마 어지간해선 다신 올 일이 없다는
본능적인 판단이 다 선 까닭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귀국한 지 반년이 좀 더 흐른 지금도,
더 누릴 수 없었던 시간과 환경이 가끔 아른할지언정
돌아오기로 한 결정 자체엔 후회가 없다.
현지에서 만나 날 잘 챙겨주셨던 교포 삼촌께선
그렇게 오래 기다려서 이제 넘어왔는데,
하다못해 1년은커녕 있는 동안 동부 지역도
안 돌아보고 가려고 하냐, 아쉽지 않겠냐,
하셨지만 자세한 속은 밝히지 않고
그냥 생각한 것만큼 내가 이 땅과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설명만 덧붙였다.
그러고 정말 그 땅을 떠날 시간이 며칠 안으로
다가왔을 무렵, 차라리 올 거라면 더 빨리,
본래 생각했던 4~5년 전 그때 왔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감상에 젖기도 했다.
물론 그 시절이 본격적인 펜더믹 전후였으니
결국 돌고 돌아 별 의미 없는 가정인지도 모르지만.
돌아보면 오랫동안, 아마 일평생 추억할
문물과 경험도 꽤 있었다. 한국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면 모르고 지냈을 삶의 원리들도
돌아보고 깨우치는 시간이었기에, 또한 소중했다.
그래서 캐나다와 나의 이번 생의 인연은,
그 정도라면 지금는 족하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이 정도까지 내 마음을 돌아서게 한
가장 큰 사건이라면 역시, 현지인들은 물론
은행 직원들조차 원인을 모르니 해결할 방도도
끝내 못 찾은 은행거래제한 사태였다.
캐나다에선 이메일 주소를 계좌번호 대신해
각종 이체 등 계좌 거래 시 이용하는 시스템
자체가 이미 고착화한 곳이다. 'etransfer'였나...
여하튼 나 역시 그 정보를 이미 들어왔기에 입국 후 사흘 정도 만에 캐나다 내 가장 규모가 큰 은행을 통해
계좌 개설도 하고, 그 시스템까지 별도로
신청을 했는데 결론적으로는 그 이메일 주소
기반의 거래 시스템이 계속 'Blocked'로만
뜰뿐, 은행은 물론 관련해서 통화할 수 있는
모든 부서를 통해 알아봐도 전산상 이상은 없다,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이게 늘 끝이었다는 거다.
그 와중에 안내 방식도 한국에서 소위
폭탄 돌리기 식으로 각자 여기 전화해 보라
말하며 떠넘기는 방식이 이어지기까지 하고,
그렇게 같은 통화로 열 번쯤 넘게
반복해서 이어지는 이슈들에 나도 좀 성이 나서,
"I've already contacted you guys for almost 10 times, maybe 11 by now, and you guys still do not know what's the problem and can't even offer some slight solutions for me? Does it make sense, you think?"
뭐... 그나마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말주변으로
저렇게라도 항변해 본 듯하다. 그랬더니 대답도 가관.
"Uh... Sorry, I don't understand you."
결국 나는 얼마 일하지도 않은 기간 동안,
남들 다 하는 이메일 기반의 거래 시스템은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Boss 입장에서도
다소 귀찮을 만한 일종의 계좌 직송 방식으로
급여 처리를 받아야만 했다. 당연히 Boss는 남들 다
문제없는데 넌 뭐냐, 혹시 넘어오면서 안 할 짓 못 할 짓
했던 건 아니냐 등등 잔소리도 곁들였다.
그 어떤 위홀 및 해외 체험담에서도 못 들어본
사건의 여파로 한 번 더 현실의 벽을 느낀 나날이었다.
그런 허탈감과 무력감이 찾아온 건
그때뿐만이 아니었다.
"The amenities are on the stall over there, and the sugar and cream is free when you grab some coffee, as well."
내가 현지에서 먼저 각종 안내를 받을 때와
유사한 화법으로 안내하니, 진짜 문자 그대로
커피를 따랐으니 커피를 비롯해 설탕, 크림
등도 다 공짜인 줄... 알고 멍해 있는 친구,
또 그걸 자초지종을 들은 뒤 시골 장사이니
'On the house, for only this time'
식으로 수습한 뒤 내게 좀 쉽게 설명해라,
시골 사람들은 현지라도 화려하게 막 얘기 안 한다,
라고 충고 겸 타박하는 Manager,
"Your membership has been enrolled."
라고 나름 격식 있게 표현하려 했더니, 그걸 이해 못 해서
표정을 찡그리는 백인 노파, 또 그 모습을 보고선
'영어를 좀 알아듣게 해라, 그런 식으로 소통 못하는
모습이 이어지면 넌 영원히 최저시급 평사원이다,
Manager가 면접 후 보고해 들어왔다지만
Boss는 나고, 난 원하는 내 기준이 절대적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대우해 줄 마음 없다, 정신 차려라'
라는 말까지 내게 쏟아내는 Boss까지,
환경도 사람도 가면 갈수록 나를 저 구석까지
어떻게든 몰아붙여 기를 쓰고 아등바등
이겨내고 살아내도록, '극복라이팅'을 시전 하기만
하는 모습에서 기시감이 너무 크게 다가왔다.
저 좁은 동북아시아의 반도에서나,
이 넓은 북아메리카 대륙 한복판에서나,
사람 사는 세상 뭐 크게 다를 게 없긴 하구나, 싶더라.
그와 동시에 앞서 언급한 허탈감이나 무력감
따위도 좀 크게 온 게 사실이었고. 소위 말하는
'아메리칸드림'도 옛말이겠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삶의 방향을 새로 열어볼 수 있는 의미로의
꿈은 꿔보면서 넘어온 게 사실이니까.
그것마저도 꿈은 단지 꿈일 뿐이었음을
철저히 냉혹한 현실 속에서 다시 깨닫고 나니,
오히려 미련이 사라졌던 것 같다.
구태여 하나 더 사족을 달면, 한국이든 캐나다든
그런 생각에 다다른 나를 한편으로는 진심으로
수용하며 보듬어줄 사람이 있었다면 또 어땠을까,
그런 생각도 귀국한 지금에야 들기도 한다.
인연. 어쩜 그게 내가 꿈꾼 가장 큰 것이었을지도.
이런저런 까닭으로 캐나다에선 굳이 100일 이상,
심지어 비자로 허용된 체류가능기간 2년 중
1년이라도 채울 마땅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혹시 작년보다 더 앞서 찾아올 기회가 왔더라면,
조금은 더 상황이 달랐으려나?
그럼에도 평생 추억할 광경, 그리고 경험,
이를 보내주신 데에 감사할 뿐이다.
또 내 앞에 놓인 일들에 전념하다 보면,
더 멋진 경험을 할 기회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캐나다 여정을 마치고 얻은 가장 큰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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