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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린나 Apr 12. 2019

빈센트 반 고흐의 삶(1) : 화가가 되기 전까지

악수를 건네며, 러빙 빈센트

화가가 되기 전까지 빈센트 반 고흐가 지나온 길을 짚어보는 것이 의미 있는 이유는 우연과 실패의 연속인 것만 같은 그 길이 빈센트를 화가로 만들었기 때문이고, 그의 그림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게 되는 27년의 여정을 통해 우리는 빈센트가 ‘어쩌다가’ 화가가 된 것인지 알 수 있다. 아니면 ‘운명’이 어떻게 그를 역사적인 화가로 이끌었는지 알 수 있다고 해도 좋겠다.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준데르트의 한 개신교 목사의 집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기 정확히 1년 전에 사산한 형의 이름도 빈센트였다. <러빙 빈센트>에서는 빈센트가 자신을 항상 불완전한 빈센트로 생각했었다고 나온다.

빈센트 반 고흐의 부모님



학생 빈센트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학교를 다녔다. 불어, 영어 등 외국어에 능통하게 되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중퇴한 채 집으로 돌아온다. 고흐 집안의 정신병력이 원인이었다는 썰이 있다.  

    


직장인 빈센트

아버지와 친척의 소개로 구필(Goupil) 화랑에서 일을 하게 된다. 화랑에서 일을 하면서, 특히 런던 지점에서 일을 하는 동안 밀레의 작품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성스럽고 경건하게 표현하는 밀레의 작품을 보고 난 후, 런던 노동자의 비참한 생활에 대한 사명감 섞인 연민을 갖게 됐다. 이제 빈센트는 고상한 그림이나 사고파는 자기 직업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대신 종교적으로 봉사하는 삶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구필 화랑의 실내 모습 사진(1900년)


한편 4살 터울의 동생 테오도 구필 화랑에서 일을 시작한다. 1872년, 19살의 빈센트는 직장 선배로서 동생에게 도움을 주는 입장으로 테오에게 편지를 썼다. 이때부터 약 18년에 걸쳐 수천통의 편지를 주고받는데, 그 중 1000여통의 편지가 잘 보관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편지는 고흐 작품의 제작 시기, 그 안에 숨겨진 의미, 고흐의 인간미 넘치는 성격까지 알려주는 아주 귀한 자료로 남아있다.          

빈센트 반 고흐(19세)



종교인 빈센트

런던에서 돌아온 이후 화랑에서의 일에 흥미를 잃어버린 빈센트는 결국 해고된다. 그는 다시 런던으로 갔다. 한 학교에서 무급 보조 교사로 일하며 때때로 성경 말씀을 전하는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런던에서의 교사 생활은 장래가 불투명한 것이었다. 결국 그해 말, 네덜란드 집에 잠깐 들렀다가 부모님의 설득으로 런던 교사 생활을 포기하고 친척이 소개해준 서점에서 일하기로 한다.     

런던 무급 교사 시절 편지에 그린 학교 모습


그러나 서점에서의 일도 적성에 맞지 않았는지 몇 달 만에 그만두고 말았다. 빈센트의 마음속에는 이미 아버지를 따라 종교에 귀의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했다. 하지만 목사가 되기는 쉽지 않았다. 이렇다 할 학력이 없는 빈센트가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입학시험을 먼저 치러야 했다. 공부를 하러 암스테르담의 친척 집으로 갔지만 잘 되지 않았다. 빈센트는 공부보다는 산책하기를 더 좋아했다고 한다.     

산책하고 싶어지는 암스테르담의 조선소 주변



시험에 떨어지고 돌아온 빈센트는 목사가 되는 대신 시험이 필요 없는 선교사의 길을 걷겠다고 선언한다. 무엇 하나에 정착하지 못하고 전전하는 25살 장남에 대한 부모님의 신뢰는 서서히 사라지고 걱정만 커져갔다.     

 


또 막다른 길

빈센트는 벨기에의 보리나주(Borinage) 탄광 지역에서 선교사 일을 시작한다. 거칠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탄광 노동자들을 돕고 선교도 하는 일은 보람찼다. 광부들에게 ‘광산의 예수님’이라는 애칭을 얻을 정도로 모든 걸 내어준 그였다. 그러나 교구 사람들과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 결국 빈센트는 선교사로서의 직위를 해제당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보리나주 광산에 지낼 때 편지와 함께 보낸 그림


이렇게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어느덧 27살이 된 빈센트였다. 그에게 남은 것은 동생 테오와의 우애, 동생과 주고 받은 편지와 그 안에 그렸던 스케치들, 밀레 작품에 대한 감명,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을 향한 종교적 연민이었다. 보통사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은 별로 남아있질 않았다. 하지만 역사에 길이 남을 화가가 되는 데에는 충분한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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