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의 역작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 혹평을 받은 후 빈센트는 자기 그림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벨기에 앤트워프(Antwerp)로 떠났다. 당시 앤트워프는 화가에게 필요한 모든 게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빈센트가 원한 새로운 스타일의 미술은 없었다. 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들은 너무 올드했다.
거기서 본 모든 그림은 진짜 절망적일 정도로 별로야. 완전히 틀렸어. 내 그림은 전혀 다른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누가 옳았는지 알 수 있겠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
벨기에 앤트워프. 1886년 1월19일 또는 20일
벨기에를 떠나기로 결심한 빈센트는 테오에게 파리로 가야겠다는 뜻을 전했다. 당시 외국인 화가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Fernand Cormon에게서 레슨을 받을 작정이었다. 소식을 들은 테오는 형과 함께 살기 위해 아파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루라도 빨리 파리의 새로운 그림을 접하고 싶던 빈센트였고, 테오가 집을 구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도착해버렸다. 사전에 테오에게 언제 출발하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기에 가는 길에 스케치북을 찢어 편지를 적었다.
그렇게 전격적으로 파리에 도착한 고흐였다. 그래도 너무 갑작스레 찾아온 것이 민망했던지 우선 편지만 먼저 전달하고(직접 우체통에 넣은 듯 하다.) 테오를 직접 보는 것은 몇시간 후로 미룬다. 다소 일방적으로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해 만나자는 식으로 편지를 적었다.
테오야. 갑자기 왔다고 화내지 마렴. 많이 생각해봤는데 이렇게 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것 같았어.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
프랑스 파리. 1886년 2월28일
달을 넘겨 3월이 되기 전에 떠남으로써 숙소 비용을 아끼고 싶었던 듯 하다.
1886년, 테오는 여전히 구필 화랑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형에게 미술 트렌드를 알려줄 기회가 있었다. 테오는 클로드 모네 같은 화가들의 화려한 색채를 소개해 주었다. 빈센트 자신도 Fernand Cormon의 스튜디오에서 새로운 화가들을 만나며 새로운 미술을 접하는데 이때 만난 친구가 앙리 드 툴르주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에밀 베르나르(Emile Bernard)다. 이렇게 밝은 그림의 세계에 노출되면서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은 1886년부터 밝아지기 시작한다.
빈센트는 당시 파리에서 인기를 끌던 일본미술에서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당시 서양 미술은 나름 새로운 것을 찾아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갑자기 등장한 일본미술은 가히 충격적인 새로움이었다. 파리에 일본 미술 전문 잡지가 발간될 정도로 프랑스에서 일본 그림의 인기가 높아졌다. 빈센트도 열심히 일본 우키요에(浮世絵)를 모으고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간결함, 굵은 윤곽선, 새로운 구도, 화려한 보색 대비 같은 빈센트 반 고흐 스타일의 그림이 탄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방식을 찾아낸 빈센트는 정물화, 풍경화, 인물화까지 또 닥치는대로 그려가며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낸다. 또한 그림의 주제에도 변화가 생겼다. 더이상 시골 노동자 그림에 한정하지 않고 카페, 길거리, 교외 풍경, 정물까지 다양하게 그렸으며 특히 ‘돈이 되는’ 주제인 초상화에 공을 들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고흐는 모델을 구할 돈이 없었기에 스스로를 모델 삼아 초상화와 자기 화법을 연습한다. 다른 화가에 비해서 고흐가 자화상을 유독 많이 그린 데는 이토록 짠내나는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이것들이 다른 사람이 아닌 고흐의 얼굴이어서 더 좋은 것 같다. 이름 모를 당시의 모델을 감상하는 것 보다 고흐의 얼굴을 보는 편이 더 감동을 준다. 또한 화풍이 변함에 따라 다르게 그려지는 빈센트의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