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봉, 케이프 포인트, 그리고..
남아공 월드컵쯤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알고 있는 남아공에 대한 정보(정보라고 할 것도 없는 단지 키워드일 뿐이지만)는 케이프타운, 요하네스버그, 희망봉이 전부였다. 언제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을 보건대 희망봉은 엄청 유명한 곶인 것이었다.
그리하여 찾아간 희망봉.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에 위치를 입력하고 가다 보면 톨게이트 같은 입구가 나타난다. 성인은 1인당 147란드(약 13,200원)이다. 자동차 안에 몇 명이 타고 있는지는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듯했지만 일단 정직하게 돈을 지불했다.
입구를 통과하고 우리는 먼저 희망봉으로 향했다. 주차장이 나름 조성되어 있지만 좁다. 그래도 사람들의 기념사진 회전이 빨라서 자리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도착하면 위의 만화에서처럼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대기열을 만들고 있다. 앞에 누가 찍고 있을 때 '다음에 나 찍겠소'라는 분위기를 물씬 풍기면서 옆에서 기다리면 그 뒤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줄을 선다. 어찌 보면 흔한 바닷가와 절벽 풍경일 수도 있지만 '희망봉'의 브랜드 파워 때문인지 간판 하나 세워놨을 뿐인데도 그 의미가 참 깊게 느껴졌다.
사진을 찍고 바로 돌아가기 아쉬워 돌탑을 쌓아 올렸다. 내 것 말고도 여러 개 있었다. 혹시 이 포스팅을 본 뒤 저 탑을 발견하는 분이 있다면, 발로 차거나 돌 한 개 더 올려서 인증을 남겨준다면 재밌을 것 같다.
희망봉에서는 사진 찍고, 돌 쌓고 하면서 한 15분 정도 있었던 것 같다. 그만큼 회전이 빠르다. 어떤 사람들은 돌 언덕을 걸어 올라가기도 하던데 우리는 등산이나 하이킹 같은 것을 극도로 혐오하기 때문에 바로 차를 타고 케이프 포인트로 이동했다.
주차장에 도착하면 먼저 포토존을 찾아가 보도록 하자. 희망봉과 비슷한 분위기의 나무 간판인데 이곳 역시 사진 명소이다. 위의 만화에서 보면 간판 뒤로 등대와 언덕길이 보인다. 언덕길로 걸어서 올라갈 수도 있다. 나는 평생 등산과 하이킹(행군)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군대에서 했었기 때문에 케이블카를 이용했다.
Funicular라는 종류의 케이블카는 주차장부터 케이프 포인트 정상까지의 가파른 언덕을 운행하는 작은 기차이다. 1량짜리 기차가 5분 정도 천천히 언덕길을 오르내린다. 그 이름인 'Flying Dutchman'은 이전 편에서 봤듯이 '유령선'을 뜻한다. 케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유령선도 그렇고 우리가 들어본 유령선이라는 것의 탄생 지역이 바로 희망봉이다. 가격은 성인 1명당 왕복 70란드(약 6,300원)이다. 휴일 없이 오전 9시에서 저녁 5시 30분까지 운행한다.
아래 사이트에서는 가상 탑승 체험을 해볼 수 있다.
나는 케이프 포인트가 아프리카 최남단인 줄 알았고, 어렴풋이 조사해놓았던 인도양과 대서양의 경계 표지판이 케이프 포인트에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케이프 포인트(정확히 희망봉)는 아프리카 최"서"남단이고 최남단은 Cape Agulhas(아굴라스 곶)이다. 그러므로 인도양과 대서양이 만나는 거센 파도가 치는 곳은 아굴라스 곶이다.
케이프타운에서 250km 떨어진 곳으로 구글 길 찾기에서는 희망봉으로부터 4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온다. 가든루트에서 케이프타운으로 오는 길에 들렀어야 했는데...
그런데 그렇게 착각한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다. 내 뒤의 어떤 아저씨도 바다를 바라보며 일행에게 인도양과 대서양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듣는 분은 신기해하시던데 언제쯤 진실을 알게 될까? 평생 모르고 지나갈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