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켄스버그 사니패스(Sani Pass) - 레소토
드라켄스버그는 남아프리카에서 가장 높고 가장 긴 산맥이다. 아프리칸스어로 Dragon Mountain, 즉 용산이다. 최고 높이가 3,600m에 달하고, 이어지는 길이는 1,000km 나 된다(1,000m 아님). 너무나 크고 웅장한 산맥이라 어느 한 곳을 가고서 '드라켄스버그에 가 봤다!' 고 말할 수가 없다. 이번에 가기로 한 곳은 남아공 언더버그 근처, 그 유명한 사니패스가 있는 남부 드라켄스버그의 한 구간이었다.
드라켄스버그는 유네스코 세계 복합 유산이다. 수려한 자연경관은 물론이거니와 이 곳에서 살았던 산(San) 족이 남긴 벽화 문화유산이 크게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에 사니패스, 즉 산(San)족이 다닌 길이 있는 것이다.
산(San) 족이라는 용어가 낯설 것이라는 생각에 이해의 편의상 부시맨이라는 용어를 썼다. 영화 부시맨(영어 : The Gods Must Be Crazy)안에서 콜라 병을 들고 우스꽝스럽게 그려졌던 그 사람들 맞다. 그러나 부시맨이라는 말은 남아공 정착 백인(보어인)이 만들어 낸 모멸어(비하 용어)이다. 남아공을 개척해서 문명의 삶을 일구고 살아가는 백인 자신들과 덤불(Bush) 속에서 사냥이나 하고 사는 원주민들. 남아공의 주인은 누구여야 하는지에 대한 백인들의 생각이 은근히 담겨있는 용어다.
비슷한 말로는 홋텐톳 Hottentots이 있다. 이는 산 족이 아닌 코이족(Khoe)을 부르는 말인데 코이족은 초기 백인 정착기에 케이프타운에서 살다가 쫓겨난 원주민이다. 그리고 홋텐톳은 코이족의 언어에 포함된 협착음(혀 차는 소리 같은 클릭 사운드)을 비하하며 만들어낸 모멸어다. 동양인을 칭챙총이라고 비하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남아공 마타틸레에서 언더버그까지 간다. 약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구글맵 내비게이션에서는 D 도로를 추천하는데, 비포장 도로이기 때문에 시간이 오히려 더 걸릴 수도 있다. 무엇보다 바퀴가 터질 위험이 있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아스팔트 길(R, N)로 돌아가는 것이 좋다. (아프리카의 도로 참고)
언더버그에는 사니패스를 포함해서 서던 드라켄스버그 여행을 취급하는 투어 회사가 많이 있다. 우리는 언더버그 근처의 사니패스 호텔에서 투어를 예약했다.
사니패스는 남아공 언더버그부터 레소토의 사니 탑(Sani Top)까지 약 70km에 걸쳐 이어지는 산길이다. 비좁고 거칠고 험한 꼬부랑 산길이기 때문에 4륜 구동차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 그래도 고집부리고 2륜 자동차로 들어가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남아공 국경 사무소에서 붙잡힐 것이므로 무모한 도전은 하지 말도록 하자.
남아공 국경 사무소에서 출국 신고를 하고 나오면 바로 레소토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국경선에 사무소가 바로 걸쳐있는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너무나도 험한 산 자락이라 국경 사무소가 실제 국경보다 한참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레소토 국경까지 남은 10km의 산 길은 무인지대(No Man's Land)가 된다. 가는 도중에 십자가를 발견했다. 바이크 사고를 당한 분이라고 가이드가 설명해주었다. 이미 한 시간 넘게 달려온 길이었는데 무덤을 보고부터 새삼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겨울이 되고 눈이 내리면 아예 길을 폐쇄해버린다고 한다.
10km 길을 한시간은 걸려서 한참 가다보면 갑자기 자갈밭길이 아스팔트로 바뀐다. 아스팔트의 경계가 자를 대고 그은 것처럼 반듯하다. 별다른 표지판이 없이도 이제 레소토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레소토는 우리나라와 무비자 협정을 체결한 나라이기 때문에 비자 준비 없이 들락날락할 수 있어 편했다. 사니패스라고만 듣고 왔는데 뜻하지 않게 여권에 아프리카 도장이 늘어나 기분이 좋았다.
아직 여름이었는데도 바람이 차고 안개비가 거세어서 추웠다. 아프리카의 지붕으로 불리던데 생각해보니 지붕은 비바람과 눈을 막아주는 존재가 아닌가? 그런 지붕 위에 올라와서인지 비바람이 온몸을 때려 더 추웠다. 입국 신고 후 레소토 국경에 있는 작은 마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