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의 테러리스트, 폿홀(Pothole)
내가 남아공 백수라서 탱자탱자 걱정 없이 지내는 줄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에게도 스트레스를 주는 고유의 업무가 있다. 그것은 운전. 와이프의 출퇴근길 운전기사가 내 직업이라면 직업인 것이다.
이곳 마타틸레에서의 운전은 서울의 운전과는 장르가 다르다. 서울의 운전(남아공 대도시의 운전도 비슷)은 말도 안 되는 정체가 스트레스의 원인이라면, 여기는 말도 안 되는 도로 사정이 그러하다.
왕복 2차로 아스팔트의 왕복 차선 곳곳에는 폿홀(Pothole)이라는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게다가 차선 바깥쪽 도로가의 아스팔트는 갈기갈기 찢겨 나가 있다. 잘못 밟으면 펑크가 나거나 휠이 파손되기 때문에 조심히 지나가야 하지만, 후미에 바짝 달라붙는 거친 운전자들과 거기에 가끔씩 무단 횡단하는 말, 소, 당나귀, 개도 신경 써주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밟는 경우가 생긴다. 차폭감을 완전하게 잡았다고 자만했던 어느날, 폿홀을 밟으며 펑!! 하고 바퀴가 터지고 말았다.
위 사진처럼 한두 번 바퀴를 터트리고 나니, 운전할 때마다 이만저만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그 이후로 운전 스트레스는 더 늘어나버렸다. 그래서 나도 나름 힘들다..
아무튼 남아공에서 렌터카로 여행할 계획이라면 스페어타이어 교환하는 연습을 해오는게 좋다. 폿홀이 있다는 것은 그 지역이 대도시가 아닌 변두리라는 것이고, 그런 곳에서 자동차를 세우고 당황한 외국인은 치안에 매우 취약할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에서 예상 이동 동선을 파악해보고 그 도로에 어떤 명칭이 붙어있는지 보면 도움이 된다.
남아공 지도를 살펴보면 도로에 N, R, D 등 알파벳이 붙어있다.
N 도로는 중앙 정부에서 관리하는 도로로, 아스팔트 상태가 매우 훌륭하다. 폿홀 걱정 없이 달려도 된다.
R 도로는 Route로 읽는데, 지방 정부에서 관리하는 도로이다. 숫자가 두 개만 들어간 경우에는 아스팔트가 깔려있고, 3개가 들어가면 아스팔트가 아닌 경우도 있으니 구글 지도의 실사 버전으로 확인하자. R 도로는 왕복 2차선으로 되어있어 역주행으로 앞차량을 추월해야 하는 경우도 많이 생긴다. 이 때는 우측 깜박이를 켜고 역주행 차선으로 추월하면 된다. 단, 이때 중앙차선이 실선으로 되어 있다면 추월해선 안된다. 반대편 차량이 갑자기 등장할 수 있는 곳에 실선이 그려져 있다.
D로 시작하는 도로는 되도록 가지 않는 것이 좋다. 돌멩이, 바위 조각들이 즐비한 비포장 길이다. 거리상으로 훨씬 이득일지라도 길이 험해 실제로 이동 시간은 예상 시간보다 두배 세배 길어진다. 구글 길 찾기에서 가끔 D 도로 경로를 추천하는데 예상 시간에 속은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나마 시간이 걸리더라도 바퀴 구멍만 안 난다면 다행이다. 폿홀이 아무리 많은 아스팔트 도로라도 아스팔트인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다.
아래는 Matatiele 근처의 좀 더 큰 도시 Kokstad 주변의 지도인데, R52, R617, N2(파란색 2) 도로가 교차하는 걸 볼 수 있다. 지도 상의 흰색 도로는 D 도로이다.
※ 케이프타운이나 조벅같은 대도시에는 M이나 Dr 같은 도로명도 볼 수 있다. 대도시에만 있는 도로로 아스팔트가 깨끗하게 깔려 있으니 안심. 대신 트래픽을 걱정해야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