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마음의 일> (재수x오은, 2021)
책을 읽다가 별안간 작년 유월의 내가 생각났다.
입사하고 나서, 어쩌다 보니 일이 잘 안 풀렸다.
매년마다 우리 팀에서 맡아서 해오던 일이, 내가 입사하던 해에는 잘 되지 않았다. 내가 입사한 지 한 달도 안 됐을 때 우리 팀은 하루가 멀다 하고 다른 사업들을 따오기 위해 끊임없이 제안서를 제출하곤 했으니까.
하지만 언제까지 회사가 제안서만 쓰고 있는 우리 팀의 사정을 봐줄 순 없었다. 회사는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었고, 팀에서 가장 막내인 나는 팀에서 잠시 나와 다른 팀 일을 도와야만 했다.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을 받는 입장에서 나는 적어도 내가 받는 돈 값을 해내야 하는, 이 회사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여야 했다.
업무지원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타 팀으로 가게 된 날, 팀장님은 내게 미안하다며 올해는 같이 견뎌보는 시간이라 생각하자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이 시국에 짤리지 않은 게 다행이라 씁쓸한 웃음을 지으시면서.
내게 농담처럼 말씀하시기까지 그 누구보다 가장 힘드셨을 팀장님께, 나 역시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타 팀에서 맡은 일은 방대한 데이터들을 한 파일 안에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처음 보는 낯선 설계도면들을 해석하고 그 결과를 엑셀표 안에 하나하나 채워 나가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 지금 이 시간을 이렇게 보내도 될까?
뭐라도 다른 일을 준비해야 하는 걸까?
혹시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내가 날려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데드라인이 존재하는 일이다 보니 일정 개수를 채우지 못한 날이면 회사에서 하던 작업을 집까지 들고 갔다. 집에 도착해 노트북으로 잔업을 하며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자꾸 마음의 여유가 사라졌다.
대학 졸업 전까지는 책도 자주 읽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읽고 싶은 책 한 권을 읽으려 하다가도
'아.. 이 시간에 엑셀 정리해야 하는데... 그냥 다음번에 읽자..'
휴일에도 ‘다음 주에 내가 채워야 할 할당량’ 계산을 하고 나면 어느새 가슴이 턱 막히곤 했다.
그렇게 모니터 앞에서 채워져 가는 엑셀표와는 달리, 나의 자존감과 자기 확신은 비워져 가고 있었다.
그래서 이 구절을 보고 문득 지난 유월의 내가 떠올랐을지도 모르겠다.
당장이라도 책을 펼쳐 밑줄을 긋고
귀퉁이를 접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주제를 찾고 중요한 문장을 암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주제를 파악하는 일이 두려워 발등을 내려다보았다
믿는 도끼가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쉬는 날에는 쉬어야지”
초조한 나를 간파하는 아빠의 말
이 말은 배고프면 밥을 먹어야지, 나
아프면 병원에 가야지, 처럼 당연하게 들렸다
침대에 대자로 누웠다
거추장스러운 것과 멀어지고 싶어
베개를 끌어앉은 채 눈을 감았다
열어둔 창문 안으로
햇살과 바람과 새소리가 동시에 들어오고
나는 잠시 당연해진다
(마음의 일 - 홀가분한 마음, p194)
다행히도 추운 겨울이 오기 전, 우리 팀은 다른 사업을 따오게 되었고 나는 다시 팀으로 돌아왔다.
지금 내가 미래에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무언가 계속 해나가고 있다는, '걸어가고 있다'는 이 움직임에 의미를 두려 한다. 예측하지 못하는 미래에 두려움이 앞서기도 하지만 내 삶은 아직 엔드(and)니까. 그 두려움에 잠식당하지 않으려 한다. 이렇게 걷다보면 어디든 닿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마음고생하던 지난 유월의 나에게,
그리고 아직도 어디선가 홀로 눈물을 삼키고 있을 수많은 유월의 그대들에게,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