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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 Aug 01. 2022

무언가를 지속하는 마음

도서, <콘텐츠 만드는 마음> (서해인, 2022)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이어폰 안 끼고 휴대폰 안 보고 허공을 응시함.  


직장인의 찐 광기란 이런 것이라며 유머성으로 올라온 짤에 해당 문장이 있을 정도로, 출퇴근 시간, 아니 평소에도 대중교통 안에서 무언가를 보지 않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모두 바쁘게 무언가를 소비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나 역시 편도 1시간이 넘는 직장과의 거리 때문에, 지하철에서 머무는 순수 시간만 해도 1시간이 넘어간다. 그 시간에 내가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다. 스마트폰으로 e-book을 읽기도, OTT 서비스로 밀린 드라마나 전날 화제가 된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때도, 유튜브에서 재미있어 보이는 동영상들을 시청하기도 한다.



사람들로 밀도가 높아진 지하철을 '탄다'기보다는 견디면서, 콘텐츠들을 내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밀어 넣는다. 하지만 장거리 통근자인 나에게 애매하게 시간이 뜰 때나, 볼만한 것은 이제 거의 다 본 듯한 생각이 들 때면 이런 마음이 자주 들었다. "아, 누가 나한테 볼 것 좀 추천해 줬으면!"


혹시 나와 같은 마음이 한 번이라도 들었다면, 이런 당신에게 적합한 추천자가 있다. 바로 10일간의 콘텐츠들을 정리하여 뉴스레터로 보내주는 <콘텐츠 로그>의 발송인이자, 《콘텐츠 만드는 마음》의 저자인 서해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퇴사 후, 영화 추천 좀 해달라는 친구들의 반복적인 물음이 '귀찮아서' 올리게 된 페이스북 리뷰 게시글이 시작이 되어 탄생하게 된 <콘텐츠 로그>는 10일간 저자가 보거나 혹은 볼 예정인 콘텐츠들을 모아 구독자들의 메일로 보내는 하나의 뉴스레터이다.


이 책은 <콘텐츠 로그>를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 넘쳐나는 콘텐츠 홍수시대에서 이 뉴스레터를 구성할 때에 어떠한 본인만의 기준으로 콘텐츠를 선정하는지 상세히 이야기한다. 


콘텐츠 생산자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프로 콘텐츠 소비러로서 '보는 사람'(1부), 그렇게 소비한 콘텐츠를 뉴스레터라는 형식에 담아 만드는 '만드는 사람'(2부), 그리고 그것이 일이 된 저자의 삶을 보여주는 '일하는 사람'(3부)의 모습을 총 3부에 걸쳐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3부의 각 소제목은 '일하는 사람'의 시선에서 작성된 다양한 콘텐츠 리뷰로, 해당 작품들의 이름으로 지어졌는데, 저자가 얼마나 콘텐츠에 진심인지까지 엿볼 수 있었다.




사실 이 도서를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는 책보다는 저자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 대학교 재학 시절 처음 알게 된 '뉴닉(NEWNEEK)'을 시작으로, 어느덧 10개가 넘는 뉴스레터들을 받아보는 사람이 된 나는 매일, 혹은 격주로 (뉴스레터 별로 발송 텀은 서로 상이하다.) '과연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꾸준하고 성실하게 나에게 메일을 보내주는 것인가?'라는 마음을 자주 품었기 때문이다.


메일함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뉴스레터들을 바라보면서 레터 뒤에 있을 그들의 성실함에 반해 그들을 남몰래 동경하기도 했다. 이러한 궁금증으로 서둘러 페이지를 넘기면서도 나의 시선을 붙잡았던, 내가 접어내려 간 책 속의 귀퉁이들을 위주로 이 책을 소개해 보려 한다.



콘텐츠 만드는 마음 / 서해인


1부, 보는 사람


"당신의 인생작은 무엇인가요?"


내가 이 질문을 받는다면 정말 많은 고민에 빠지게 될 것 같다. 저자가 책에서도 밝혔듯, 지금 내가 꼽는 인생작이, 곧 나라는 사람을 대표하는 하나의 단어로 나를 가두어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이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대답해버리는 순간 그 작품을 기점으로 나와 내 인생이 고정되는 거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살다 보면 인생작은 업데이트될 수 있지만, 잦은 수정은 신뢰를 잃는 지름길이니까. (콘텐츠 만드는 마음, p.21)


수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지점을 나는 저자가 만드는 <콘텐츠 로그>를 통해 답을 얻었다. 아, 이런 방법으로도 나의 취향과 관심을 나타낼 수도 있겠구나. 열흘이라는 기간을 두고 (기분상) 합법적으로 나의 인생작을 업데이트할 수 있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1부에서 나는 저자에게 [콘텐츠의 단점을 말하고 싶을 때의 체크리스트]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책의 내용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01. 콘텐츠의 맥락(또는 세계관)을 익히는 데 충분히 시간을 썼는지

02. '고객이 왕'이라는 마음으로 콘텐츠를 보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는 것

03. 이 비판이 해야 하는 일인지, 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니면 그냥 하고 싶은 일인지 가려보는 것



사람들은 종종 콘텐츠를 음식에 비유한다. 나부터도, 내가 재밌게 본 콘텐츠를 친구들에게 추천할 때 "야, 이거 진짜 맛있어. 딱 한 번 잡솨봐."라고 소개하곤 하니까. 내가 저자의 체크리스트를 보면서 해당 비유가 더 와닿았던 이유는, 실제로 우리 집이 음식점을 운영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10여 년간 음식점을 운영하던 우리 가게는 어플을 통한 배달 서비스를 함께 시작하게 되었다. 이에 어플 속 별점 제도 속에서 우리 집을 이용한 사용자들의 다양한 리뷰를 만나게 됐다.


개인의 취향으로 음식 맛에 대한 평가가 갈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원색적인 비난으로 1점을 준 손님이나, 아무런 내용도 없이 1점을 남긴 손님의 리뷰를 마주하게 될 때면 음식점 집 딸로서 가슴이 철렁했다. 우리가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도 않았을뿐더러,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악의적인 의도가 담긴 것 같아 화가 나기도 했다. 


속상해하는 나에게 다니고 있던 회사 과장님은 이런 말을 해주셨다.


-원래 사람들이 좋은 건 그냥 넘기지만,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절대 못 참잖아. 너무 마음 쓰지 말아.


종종 우리는 좋아하는 이유를 언급하기보다는 싫은 이유를 드러내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대인관계에서도 좋아하는 것을 공유할 때보다 싫어하는 대상에 대한 공유가 이루어질 때 친밀감이 훨씬 빠르게 생성된다는 말도 있지 않나. 그래서 저자의 이 기준에 더욱 눈길이 갔다.


'우리는 모니터 뒤에도 사람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가 지난 나의 경험에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위로가 되었다고 할까. 그리고 나 역시 콘텐츠 소비에 있어 쉽게 단점을 말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며 좀 더 신중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2부, 만드는 사람


저자는 좋았던 콘텐츠를 뽑게 될 때에도 '굳이' 가장 좋은 두 가지만을 고른다고 한다. 무자비하게 좋은 것들을 나열하다가는 글을 읽어나가는 상대도, 본인도 집중력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저자 본인이 가진 기준을 적용하는데, 기준은 다음과 같다.



01. 전체가 탁월하지 않고, 부분만 좋아도 괜찮다.

02.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콘텐츠나 뜬금없는 타이밍에 나만의 역주행이 시작된 콘텐츠도 괜찮다.



콘텐츠를 소비하다 보면 나는 가끔 이상한 딜레마에 휩싸이곤 했다.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은 (개인적으로) 그냥 그랬는데, 어느 한 장면에서! 혹은 어느 한 문장이 내 마음 깊은 곳을 찌르르 파고드는 경우에! 내가 남들에게 이 작품 참 좋았다고 소개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기준을 들으니, 마치 해묵은 답을 찾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게 좋은 영감을 주는 콘텐츠,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들이 참 많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또한 이 구절 역시 마음에 와닿았다.


먼저 경험해보니 좋더라'가 아니라,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최소한의 정보만 가지고도 생겨나는 기대감의 정체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 모쪼록 이 기대감에 동참해달라는 마음인 '우리가 같은 대기줄에 서 있다면 즐겁겠다'에 더 가깝다. (콘텐츠 만드는 마음, p.133)


좋아하는 뮤지션의 콘서트장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릴 때, 나는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서 쉽게 친해지곤 한다. MBTI 검사를 하면 매번 극 I 성향이 나오는 나에게도, 옆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거는 용기(?)의 원천에는 함께 좋아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는 공동체적 연대감과 이제 곧 뮤지션을 볼 수 있다는 설렘에 있었다.


이 감정을 정확히 관통하고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에 이곳 역시 한쪽 귀퉁이를 접어두었다.




3부, 일하는 사람


2n년 동안 꾸준히 콘텐츠를 소비하며 자라온 사람으로서 마음 한구석에는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다'라는 작은 열망을 품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용기를 내는 건 쉽지 않았다. 관련 학과를 전공하지도, 해당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매번 나를 가로막았다.


이러한 내게 먼저 '콘텐츠 생산자'의 길을 걷고 있는 서해인은 이렇게 말한다.


믿을 만한 기술을 가지지 않았어도, 우리에게는 이미 생활을 통해 쌓아온 작고 소중한 노하우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노하우들이 위기를 헤쳐 나가고 인생의 새로운 장을 펼치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당장은 믿을 만해 보이지 않더라도, 자신이 쌓아온 것들을 믿어보자. (콘텐츠 만드는 마음, p.207)


▲ 출처 : 유투브 스브스 트렌즈 (본격 연예 한밤 진기주 인터뷰)

모두 다른 제각각의 모양을 가진 경험들로 불안하던 때, 결국은 이 모든 활동이 나라는 퍼즐을 완성하기 위한 존재였음을, 지금 내가 보내는 이 시간들 모두 제 짝이 있는 퍼즐 조각이라는 걸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나 스스로에게 믿을 구석이 없는 것 같아 용기가 나지 않을 때마다, 앞의 사진 속 배우 진기주의 인터뷰에 이어 꺼내어 볼 문장이 하나 더 생긴 기분이다.





조회수가 높다거나 판매 부수가 많은 콘텐츠를 소개할 때면 "요즘 이게 난리입니다", "당신만 모릅니다"라는 말을 나까지 얹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신작과 구작을 섞어서 소개할 때가 많은데, 콘텐츠를 다루다 보면 이미 지나간 작품에 뒤늦게 마음을 쏟는 나만의 역주행 콘텐츠들이 점차 늘어날 수밖에 없다. (콘텐츠 만드는 마음, p.120)


저는 함께 나누고 싶은 콘텐츠를 소개하지만, '절대 놓치면 안 되는 콘텐츠', '요즘 난리 났는데 당신만 모르는 콘텐츠' 같은 식의 이야기는 하지 않아요. 개개인의 불안과 조급함을 증폭시키지 않는 게 제가 느끼는 최소한의 책임감인 것 같아요. (많은 창작자들의 덕후가 전하는 #내옆엔항상뉴스레터가, <헤이버니>, 2022.04.17.일자 인터뷰 참조)



수많은 콘텐츠를 소비하다 보면, 소비자들의 불안 심리를 노리는 콘텐츠들을 자주 만난다. 모든 게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공략하여 클릭을 유도하는 콘텐츠들을 마주하게 될 때면, 묘하게 불편한 마음이 든다. 그러면서도 이내 '나만 놓칠 순 없지'라는 마음에 부랴부랴 해당 콘텐츠를 소비하는 나를 발견한다.


밀려드는 콘텐츠의 바닷속에서 본인만의 확고한 기준으로 콘텐츠를 소개하는 저자의 모습이 좋았다. 저자가 콘텐츠를 만드는 마음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구독만 누르고 궁금했던 뉴스레터 이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건 덤이고 말이다.



모든 기준이 투자 대비 효용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일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을 재확인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콘텐츠 만드는 마음, p.10)


'왜 그 일을 하느냐'라는 물음에 선뜻 대답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목에 무언가 턱 막힌 듯한 느낌. 뭔가 그럴싸한 대답을 내놓아, 이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해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에 그저 웃음으로 무마했던 지난날의 나에게 이 책은 '일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을 떠올리게 한다.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 는 간단한 명제를 이 책을 통해 새삼스럽게 다시 한번 배운다.






해당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된 글입니다.

[Review] 무언가를 지속하는 마음 - 콘텐츠 만드는 마음 – 아트인사이트 (art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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