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지내던 이웃 간의 온기를 느끼고 싶을 때
여러분의 다정한 이웃, 스파이더맨
영화 <스파이더맨> 속 유명한 이 대사가 이제는 낯설게만 느껴진다. 층간소음부터 시작해 이웃 간 갈등은 이제 뉴스의 단골 소재가 되었고, 나 역시 함께 엘리베이터를 탄 이웃과 인사는커녕 서로 휴대폰 화면만 바라보기 일쑤다. '가까운 이웃이 먼 사촌보다 낫다'는 속담이 무색할 지경이다.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헤어진 이웃들을 떠올린다. 삭막해진 사회 속에서 미디어 속 이웃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다정한 관계를 쌓아가는 모습이 괜스레 부러워지기도 한다. 현실에서 느끼기 어려운 따뜻함은 기억에 오래 남기 마련이니까.
근래 보았던 미디어 콘텐츠 중에서 내 마음에 오래 남았던, 나의 다정한 이웃들을 소개해보려 한다.
2022년 공개된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는 요리라곤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남편 창욱(한석규 역)이 음식을 점점 먹을 수 없게 되는 아내 다정(김서형 역)을 위해 요리를 배우고 레시피를 개발하는 과정을 담은 드라마다.
여기서 양수원(양경원 역)은 창욱이 자주 찾는 마트의 직원으로, 특유의 넉살과 붙임성을 가진 살가운 인물이다. 드라마 속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지만, 처음 수원이라는 캐릭터를 접했을 때 내게는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진심은 언제나 통한다고 했나, 요리에 필요한 해삼을 찾는 창욱을 보고 수원이 근처 중국집에서 불린 해삼을 구해온 장면이 유난히 기억에 남았다.
"뭘 바로 해주고 싶은데, 재료 때문에 포기하게 되면 그게 엄청 속상하더라고요."
누군가에게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오지랖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조심스레 본인 또한 어머니가 아팠던 경험을 꺼내어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수원과, 그의 선의를 진심으로 고마워할 줄 아는 창욱의 모습까지 더해져 한동안 여러 번 돌려보았던 장면이다. 진심 어린 다정함은 때로 말보다 더 깊게 전해지는 법이다.
원룸 시미즈에 혼자 이사 온 네 살짜리 꼬마 코타로. 옆집에 코타로가 이사 온 이후로 카리노는 묘하게 신경 쓰이는 이 존재의 보호자를 자처한다. 수입이 좋지 않은 만화가임에도 매일 코타로와 목욕탕에 가는 것은 물론, 어느새 코타로의 등하원까지 동행하고 있다.
6화에서는 자신이 강해져야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코타로에게, 카리노가 함께라면 더 쉽게 강해질 수 있다며 달리기를 제안하던 장면이 나온다.
- 너는 계속 혼자 노력해서 강해지고 싶어?
- 그렇다. 혼자 뭐든지 할 수 있다면 강해질 수 있다.
- 그거 알아? 경쟁자가 있으면 더 쉽게 강해질 수 있어. 나는 지금 이 거리를 달릴 수 있을 만큼 강해졌어. 그러니까 함께 강해지자.
(...)
- 어이, 카리노. 그런 걸로 해결할 수 없다는 걸 너도 잘 알잖아.
- 알아요. 그러니까 그 사실을 깨닫는 그날까지, 조금이라도 저 녀석의 몸과 마음이 강해졌으면 좋겠어요. 충격을 극복할 수 있도록요.
앞서 소개한 수원처럼 카리노의 말과 행동이 살갑지만은 않지만, 코타로를 위하는 카리노만의 다정함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어른 같지만 아이 같고, 아이 같지만 어른 같은 두 사람의 관계는 때로는 누가 보호자이고, 누가 보호받는 사람인지 헷갈릴 정도다. 이 묘한 균형이 두 인물 간의 케미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카리노뿐만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코타로를 향한 애정을 표현하는 원룸 시미즈 주민들을 보면서 가슴 한편이 뜨끈해지는 건 덤이다.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건넨 작은 친절이 누군가에겐 하루를 버틸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동네에서 마주치는 이웃에게 가벼운 목례라도 먼저 건네보는 건 어떨까. 우리가 잊고 지내던 ‘이웃 간의 온기’는 어쩌면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