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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희완 Feb 24. 2018

기억을 자르다.

유희완의 그리움 詩

기억을 잘라내기까지 너무 오랫동안 주춤거렸나 보다.

지우려 지우려 해도 노력만큼 되지 않는 일이 기억을 지워버리는 일이라서

그렇게 힘들어했던 나였나 보다.


가슴에 담으려 하면 금방이라도 넘쳐버릴 듯이 위태로웠고

눈에 담으려 하면 항상 부질없이 흘러버리는 것이 그녀였기에

나에게는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외로움이 있었다.


머리를 쓸어 올리는 모습

입술을 깨무는 모습

그리고 나를 보며 웃어주던 모습들까지도

나에게는 지울 수 없는 흉터가 되어버렸다.


잊었다 싶으면 불어오는 바람에 그녀 모습 아른거리고

이제는 지워졌구나 싶을 때면

어느새 그녀는 느닷없는 일상에서 불쑥 나를 찾아오곤 했다.


내뿜는 담배연기처럼 내 기억도 그렇게 흩어져 버렸으면……

길가에 수북이 쌓인 하얀 눈처럼 그렇게 내 기억도 하얗게 덮여버렸으면……


일 년이 지나든

십 년이 지나든

잊히지도 지워지지도 않을듯한 기억들

독한 술을 단숨에 들이켜 버릴듯한 가슴이

내 머릿속에 나지막이 말했다.


지울 수 없으면 잘라버리라고 

견딜 수 없다면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라고


그래도 정 안 되겠으면

무릎이라도 꿇지 않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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