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전. 커뮤니티!
어떤 스타트업 대표님이 말씀하셨어요. 사업 성장시키기 위해선 학연 지연 혈연 흡연까지 모든 끌어다 써야 한다고요. 그때는 웃어넘겼습니다만 돌이켜보니 반강제적이거나 기브 앤 테이크가 철저한 관계에서 오는 피로함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유로운 영혼 모드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에코빌리지 커뮤니티의 존재가 새롭게 느껴집니다. 좀 더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살고픈 강한 열망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만들어진 커뮤니티이기 때문이죠. 물론 사람이 모인 곳이라 항상 꽃길만 걷는 것은 아닐 테고 불협화음도 있게 마련이지만요. 어스송 에코빌리지 사례를 통해 건강하고 행복한 커뮤니티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이런 커뮤니티를 지속가능하게 운영할 수 있을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3줄 요약>
* 어스송 에코빌리지는 건설과정에서 시련과 도전에서 함께 뭉쳐 단단한 커뮤니티 연대감 도모
* 커뮤니티는 결국 사람이 중요함으로 열린 마음과 태도, 함께 성장하고 싶은 열정과 실천의지 필요
* 리플렉션을 통해 되돌아보고 천천히 느슨한 연대를 이어가는 것이 지속가능한 커뮤니티의 성공 요인
어스송 에코빌리지는 1995년 프로젝트를 공식적으로 시작해서 2008년 완공되었습니다. 무려 14년이란 시간이 소요된 $1천5백 만 달러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로 32 가구, 총 69명이 커뮤니티를 이루며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기에서부터 시니어에 이르기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며 싱글도 있고 가족도 있습니다. 버스 운전사, 조산사, 교수, 건축가 등 직업도 각양각색입니다. 심지어 구성원들의 출생 국가는 13개국으로 뉴질랜드, 영국, 일본, 미국, 독일, 남아공, 중국, 인도, 벨기에, 덴마크, 프랑스, 캐나다, 파라과이의 문화를 서로 배우는 진정 작은 글로벌 공동체라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만든 최소한의 규칙 안에서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면서 이웃과 돈독하게 협업하는 삶. 매주 목요일과 토요일 저녁에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채소 정원과 커뮤니티 하우스를 관리하며 한 달에 한 번 정기미팅도 진행합니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번 주말에 다 같이 모여 축제도 즐깁니다. 물론 완벽한 커뮤니티는 아닙니다. 그저 좀 더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살고픈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서 큰 그림을 그리다가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떠난 사람들도 있고 새롭게 조인한 사람도 있었으며 서로 비난하고 싸우기도 하고 화해도 했습니다. 때로는 분쟁 해결을 위해 외부 전문가와 함께 합의와 조정의 시간도 가졌습니다. 하지만 주택 건설 과정에서 계약하고 선금도 지불했던 빌더가 구매했던 자재를 싹쓸이해서 철수해 버린 힘든 시기에는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똘똘 뭉쳤습니다. 어려움과 챌린지를 함께 경험하고 극복하려고 노력했기에 지금의 커뮤니티가 더욱 돈독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과정 없이 분양받아 완공된 뒤 입주한 거주자들로 구성된 커뮤니티는 아무래도 연대감이 좀 더 느슨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어떤 비전을 갖고 모여 협업하며 살아가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요.
맥카만트(McCamant)와 듀렛(Durett)이 정의한 코하우징의 여섯 가지 특징이 있는데요. 커뮤니티 운영 관리와 깊게 관련이 있어 적어보았습니다.
- 참여 프로세스(Participatory process)
거주예정자들이 함께 모여 기획하고 개발을 주도하며 기획과 디자인을 담당해야 함. 필요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됨.
- 커뮤니티 운영을 위한 디자인 (Designs that facilitate community)
개인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면서도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기 위해 레이아웃과 디자인이 신중하게 기획되어야 함.
- 공용 시설 범위 확장(Extensive common facilities)
공용시설은 커뮤니티 하우스부터 정원, 열린 공터, 아이들 놀이장소가 되는 개별 주택과 개인 집의 일정 공간까지 그 범위를 확장해서 관리할 필요가 있음.
- 거주자의 직접 운영 체제(Complete resident management)
거주자들이 모여 공용 시설 지속 관리와 공동 합의서 작성 등과 같은 업무를 다 함께 결정하고 관리해야 커뮤니티에 대한 오너십이 생기고 적극적은 참여를 도모할 수 있음.
- 수평문화 구조(Non-hierarchical structure)
성인 거주자들은 모두 합의된 의사 결정 구조를 통해 커뮤니티와 관련된 문제에 대한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책임을 공유해야 함.
- 수입원 분리(Separate income sources)
주민들은 스스로 가계 재정을 관리하되 공용 시설 관리유지비는 각 가정별로 연간 사용료를 지불해야 함.
어스송 에코빌리지는 비전 세팅과 공용 시설을 포함한 건축 디자인 프로세스에 멤버들이 모두 적극 참여했고 각 가정별로 1명씩 대표해 정기적인 풀 그룹 (Full Group) 미팅에 참여해 색깔 카드로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는 수평 문화구조를 갖고 있으며 환경 교육, 에코빌리지 체험 프로그램 등으로 발생하는 수입은 커뮤니티 하우스 운영 관리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코하우징 여섯 가지 특징을 모두 충실하게 실행하고 있네요. 그래서인지 다들 만족스럽게 때로는 투닥거리며 어스송 에코빌리지에서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한 건강하고 행복한 커뮤니티의 조건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 봤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커뮤니티 조건]
명확한 비전 세팅 (프라이버시 존중+ 느슨한 커뮤니티 연대)
비전에 동의한 멤버 선발 프로세스 (참여 동기, 기대, 커뮤니티에 기여방법, 재정능력 등)
친환경적인 건축디자인 프로세스에 멤버 일괄 참여
상황에 따른 유연하고 신속한 의사결정 진행(갈등 발생 시 대화 방법 제시)
커뮤니티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규칙 제정과 자발적 참여 도모
커뮤니티 운영을 위한 멤버 간 분명한 역할과 책임 세팅
커뮤니티 멤버 간 연대를 위한 식사, 액티비티 등 느슨하게 운영
공동수입원 발생 시 커뮤니티 운영 및 기여도에 따른 공정한 배분
투명한 정보 공개 및 공유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툴 지정
사심을 견제하기 위한 거버넌스 지향 (수평문화구조나 순번제로 퍼실리테이터 역할 진행)
연말 리플렉션 타임 진행
이렇게 적어보니 하나의 조직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같이 일하는 것(코워킹)과 같이 사는 것(코하우징)을 비교할 때 같이 사는 것이 같이 일하는 것보다 어나더 레벨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같이 일하는 것은 '퇴근'이나 '재택근무' 같은 숨 쉴 수 있는 옵션이 있지만 같이 사는 것은 상대적으로 선택의 폭이 적습니다. 그래서 더욱 마음에 맞는 사람을 잘 찾거나 서로 잘 맞춰 살아갈 수 있는 다양성과 포용성, 개방성 마인드셋이 구성원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관점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의견이 다를 수는 있지만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이를 기반으로 더 나은 솔루션을 찾을 수 있는 성숙한 대화 프로세스가 필요하겠죠. 그래서 적어도 일 년에 한 번 리플렉션 타임을 갖고 한 해 어떻게 보냈는지, 만족하는지, 어려움은 없었는지, 개선할 포인트는 없는지에 대해 진솔하게 대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지속가능하게 에코빌리지 커뮤니티를 운영할 수 있을 테니까요. 결국에는 다른 이의 의견을 경청하고 인정하고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 "열려있는 마음과 태도"와 에코빌리지 커뮤니티 구성원으로서 "함께 성장하고 싶은 열정과 실천의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다들 커뮤니티를 원하지만 지속가능하게 유지, 관리하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요? 커뮤니티에는 사람이 전부이니까요. 그래서 처음부터 너무 뜨겁게 시작해서 몇 년 지다 금방 식어버리는 것보다는 (그런 커뮤니티를 많이 봤어요) 거북이처럼 느리게 시작하더라도 그 속도를 유지하며 계속 이어가는 것이 커뮤니티의 지속가능성, 장수비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앞으로 작은 에코빌리지 커뮤니티를 운영하게 된다면 거북이처럼 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다양하게 새로운 실험들을 이리저리 해보고 싶은 희망이 있습니다.
어스송 에코빌리지 사례를 바탕으로 한 <뉴질랜드의 코하우징 워크숍 참석 후기> 연재는 여기서 마무리를 지으려고 합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는 국내외 다양한 친환경 마을 공동체 사례를 살펴보면서 인사이트를 얻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