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빌리지를 산책하다'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유럽의 생태마을 사례들에서 초창기 독일인들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컸다는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유럽에서 독일이 1980년 가장 먼저 녹색당을 창당한 점 그리고 그 녹색당이 초창기 생태주의적 좌파 이념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주도됐다는 점과도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추측을 해보았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독일로 떠납니다. 독일 남편과 사는 지인이 '독일 남부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이고 북부는 진보적'이라고 얘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독일 북부의 항구도시 킬(Kiel)에서 3km 떨어져 있는 킬하세 생태주거단지 ((Kiel-Hassee Eco Settlement)를 함께 산책해 볼까요?
1986년 킬하세 지역에서 활동하는 건축가의 주도로 생태적인 삶을 지향하는 21 가구가 모인 뒤 시 정부가 보유한 토지를 75년 분할상환 조건으로 임대하면서 킬하세 생태주거단지가 시작됐습니다. 어찌 보면 건축가, 주민, 시정부가 함께 조성한 계획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건축에 필요한 자원과 에너지 절약을 위해 주정부의 지원프로그램으로 부터 지원을 받았고 조성될 단지의 대지, 식물과 동물, 환경에 대한 세부사항, 지리적 & 지질학적 조건 및 에너지 잠재력에 대한 지역분석을 거처 5년에 걸쳐 3천6백 평의 주거단지를 완성했습니다.
환경적인 측면에서 자연 생태계의 녹지 원형 그대로 유지하려고 노력했고 퍼마컬처 원리를 이용해 꽃과 채소, 야생꽃 지대를 구분했습니다. 모든 주택은 목재와 진흙 벽돌, 짚 등 재생가능한 생태 건축재료를 사용했으며 서늘한 기후가 오래 지속되는 지역의 기후를 고려, 주택의 거실이 일조를 위해 남쪽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천연 페인트를 사용했고 잔디지붕을 만들어 열반사를 최소화하고 산소공급기능 역할을 하게 한 것이 특징입니다. 또한 물 절약을 위해 자연발효식 화장실을 설치해 평균 140 리터의 물사용을 50리터로 최소화하고 화장실에서 발생한 내용물은 퇴비로 사용합니다. 물순환 체계를 위해 빗물처리시설을 설치했고 천연 연못을 만들어 빗물이 고이게 했습니다. 마을입구부터 주거단지 내 도로포장을 하지 않은 이유도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게 하는 물순환 체계의 일환입니다. 주택 뒤편에 설치된 하수처리시설에 모래필터층을 설치했고 그 위에는 갈대와 골풀을 심어 생활하수를 자연 정화하고 있습니다. 전기는 고효율 보일러에 연결된 천연가스로 모터가 작동해 주생활에 필요한 전기를 생산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폐열로 온수와 난방열을 공급하고 있는데 이는 일반 가정의 약 90% 정도의 에너지 소비량에 해당됩니다. 마을의 에너지 관리자는 시스템 유지관리뿐 아니라 주민의 월평균 에너지 소비량을 비교 기록해 주민들에게 에너지 절약을 독려합니다. 난방은 태양열을 이용하고 대지 뒤편에는 자동차를 통제해 카셰어와 자전거 타기를 권장합니다.
커뮤니티 측면에서는 마을 가운데에 커뮤니티 하우스가 있는데 이는 강당, 세미나룸, 생태 건축 사무실, 에너지센터, 유치원 등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거주자 35명으로 구성된 협동조합이 마을의 운영 관리, 재정관리, 주택 공급 및 처분 등을 담당합니다. 협동조합 이사회는 5명으로 구성되며 자발적으로 활동하고 3명으로 구성된 감독위원회와 함께 이슈에 대해 논의합니다. 이사회와 총회는 1년에 10회 정도 개최되고 이사회는 보통 총회 1~2주 전에 소집되어 향후 주제로 의제를 작성하며 마을 주민 모두 이사회 또는 감독 위원회 중 한 곳에서 일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주민이 이곳에서 10년 넘게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의 삶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합니다. 다만 제한적인 정보로 인해 초창기의 건축가를 포함해 개별 주민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확인할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나중에 이곳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독일인에게 생태적인 삶이란 무엇인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꼭 물어보고 싶습니다.
도시에 근거한 다양한 직업의 주민들이 사생활을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주민회의와 공동체문화를 통해서 자연을 닮은 마을을 꾸려가고 있는 점이 킬 하세 생태주거단지의 특징인데요. 특히 건축가, 주민, 시정부가 함께 조성을 하고 시유지를 75년간 임대를 했다는 점이 다른 생태 마을과는 차별화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녹색당의 활약이 뛰어나고 환경에 대한 독일인의 시민 의식이 전반적으로 높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기존 마을을 생태마을로 전환하는 형태가 일반적인데 최근 평일 5일은 도시에서 주말은 지역의 세컨드 하우스에서의 삶을 희망하는 도시 거주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킬하세 생태주거단지 모델을 한 번 고려해 봐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자체에서 땅을 장기 임대해 주고 생태지향적인 모듈러 주택을 지어 마을 공동체를 형성하는 형태로 말이죠. 지금 우리나라에서 3만 명이 안되면 인구소멸지역으로 분류되는데 계획성 있게 이런 잠재인구를 공동체 형태로 유치할 수 있도록 지자체와 현지 주민 중심으로 고민해 보시면 어떨까 싶네요. 저 또한 리모트 근무를 하고 있어 지역에서 에코빌리지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데에 관심이 많은데요. 지금과 같이 지자체별로 개인단위로 귀농귀촌을 지원해 주는 것도 좋지만 한 단계 더 나아가 킬하세의 건축가가 21 가구를 소집한 것처럼 작은 규모의 단체로 모집해서 진행하는 방법도 고려해 보면 어떨까요? 계획 + 전환 생태마을의 하이브리드 형태로 말이죠. 일본의 히가시카와 마을 사례처럼 지자체가 현지 주민들 + 외지에서 정착한 주민들과 함께 뭉치면 얼마나 큰 임팩트를 만들 수 있는지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하게 혁신적인 실험들이 진행되면 좋겠습니다.
<3줄 요약>
* 시유지 75년 장기 임대로 건축가, 주민, 시정부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생태주거단지 사례임.
* 생태적인 공법으로 지은 주택과 에너지, 전기, 정화 시스템 구축 및 생태적 라이프 스타일로 환경 피해 최소화 노력하는 주민의 노력
* 마을 주민으로 구성된 협동조합 운영을 통해 공동체의 의사결정 및 이슈 논의
자료 출처
도시에서도 '생태적 삶' 가능하다, 김경화, 여성신문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579
지금 독일 정치의 중심에는 녹색당이 있다, 김인건, 시사인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061
생태마을 활성화 방안 연구, https://ecoarchive.org/items/show/6585
킬하세 생태주거단지 홈페이지 http://www.kieler-scholle.de/index.html
EBS 하나뿐인 지구 937회 도시에서 생태를 꿈꾼다 https://home.ebs.co.kr/hana/board/10/10025226/view/20779229?c.page=26&fileClsCd=ANY&hmpMnuId=102&searchCondition=&searchConditionValue=0&viewType=pc&searchKeywordValue=0&pstId=20779228&searchKeyword=&bbsId=10025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