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00% 문과 출신입니다. 주로 노트북 앞에 앉아 일을 하고 말로 먹고사는 일을 했지요. 그런 까닭에 목공 아카데미에서 처음 드릴을 잡아보았습니다. 미지의 세계로 가는 문을 열고 첫 발을 내디딘 거죠. 좀 무모하지 않았나 싶긴 합니다. 톱질과 대패질, 끌질은 배운 대로 연습하면 실력이 늘 수 있다고 하네요. 하지만 또 다른 관문, '캐드(2차원/3차원 디자인, 제도를 위한 CAD 응용 소프트웨어)'라는 프로그램을 배울 차례가 됐습니다. 우선 내부 평가와 외부 평가 대비가 목표입니다. 모범생이었던 학창 시절처럼 맨 앞줄에 앉아 눈을 반짝이며 선생님의 시범대로 기능을 익히고 따라 그려보았습니다. 레이어 Layer, 딤스타일 Dimstyle, 라인 Line, 카피 copy 등 무궁무진한 단축키들을 암기하고 선을 바꿔가며 도면을 그리는 작업입니다. 처음에는 '할 만하네'의 자신감이 있었지만 와인거치대와 스툴, 캐비닛 도면과 같이 난이도가 높아지자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본듯한 블랙홀로 서서히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서랍 도면 앞에서는 그 복잡성에 정신줄을 높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아직 만들어본 적이 없어서인지 서랍 샘플을 여러 번 보았는데도 머릿속에 명확한 가구의 구조가 그려지지 않으니 이 선은 뭐고 저 선은 뭐지? 무지 헷갈렸습니다. 갑자기 바보가 된 느낌이었어요. 겨울잠을 자는 좌뇌의 수학적 계산과 추리력을 다급하게 두드리며 깨우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요.
살아오면서 나름 공부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는데 오토캐드 앞에서는 지진아가 돼버린 기분이었습니다. 방법은 하나. 연습만이 살길이었죠. 내가 꼭 따라가리라. 뒤처지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하면서요. 그래서 방과 후, 주말 내내 캐드 반복학습을 감행했습니다. 미러 Mirror와 오프셋 Offset이 왜 마음처럼 그려지지 않는 건지, 햇치 Hatch는 출력하면 왜 이렇게 시커멓게 보이는 건지 답답할 노릇이었죠.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캐드신의 동영상을 보면서 학습해 오토캐드의 기능을 최대한 신속하게 익히려고 노력했고 무엇보다 주어진 정면도와 투상도를 읽고 측면도와 평면도를 그릴 수 있도록 머리를 쥐어짜 냈습니다. 도면을 읽는 능력이 하루아침에 향상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요. 그럼에도 "목수는 도면을 읽고 그릴 줄 알아야 한다"라고 강조하신 마이스터의 말씀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지요. 도면을 못 보는데 누가 나에게 일감을 줄까 생각하니 저절로 손이 키보드 앞으로 가더라고요. 여러 번의 과제를 꼼꼼하게 풀고 선생님께 피드백을 받으면서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처음엔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난 이런 것도 못하는구나!' 자존감이 낮아지는 등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지만 캐드 1도 몰랐다가 이제는 도면을 조금씩 그리고 있는 제 모습에 기특하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드디어 캐드 내부평가 보는 날. 전날까지 모니터 앞에 앉아 오토캐드와 씨름을 했는데 시험 문제를 받고 나니 한결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침착하게 조금씩 그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빨리 제출하고 나가는 동기들도 있었지만 동요되지 않고 집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제출하고 나니 너무나도 쉬운 실수를 했다는 사실에 스스로에게 '멍청이!'를 크게 외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시험을 제시간에 마쳤다는 데 의의를 두기로 했습니다.
이제 내가 만들고 싶은 가구는 캐드로 도면을 그릴 정도는 되는 수준이 됐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피곤한 눈을 비비면서 밤늦게까지 그리고 주말 내내 연습한 결과입니다. '노력하면 할 수 있구나'를 다시 한번 느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앞으로 까먹지 않도록 동기들과 소모임을 만들어 일주일에 한 번씩 캐드 연습을 해보려고 합니다. 힘들게 배운 만큼 두고두고 사용하고 싶은 스킬이거든요. 이와 더불어 앞으로 스케치업, 퓨전 360과 같은 3D 프로그램도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목공 아카데미에서 하루하루 저는 조금씩 천천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Never too late to learn new th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