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우리가 짐을 싸야 할 시간

by 킨스데이

산대특 과정 수료를 이틀 앞두고 짐 싸기에 돌입했습니다. 지난 4개월 동안 만든 작품들은 기본이고 작업대에 두고 쓴 개인 공구와 각재에서부터 그동안 사용했던 개인 사물함까지 모두 비워야 했거든요. 저는 예전 정규반 때 제작했던 흔들의자와 캐비닛, 스툴까지 한꺼번에 가져가야 해서 생각보다 짐이 꽤 있을 것 같더라고요. 우선 작품을 하나도 빠짐없이 리스트업 했습니다. 행여나 공방에 깜박하고 놓고 가면 안 되니까요. 집에 보관해 둔 뽁뽁이와 종이 포장재, 커다란 비마트 봉지를 재활용할 겸 공방에 가져다 놓고 흔들의자 다리와 스툴 다리, 티테이블 아랫부분, 캐비닛과 미니책장의 전면부를 감싸서 이동 보관 시 스크래치가 나지 않도록 테이핑 했습니다. 담요로 티테이블을 감싸주고 사물함에 보관 중이던 가죽 자투리로 플레이트와 액자, 냄비 받침대 등 소품들도 모두 포장해 집으로 가져갈 준비를 했지요. 그다음 개인공구를 살펴보았습니다. 먼지에 쌓여있던 공구함을 열고 에어프레셔로 겉과 속을 말끔히 털어낸 다음 대패와 톱, 각종 측정기구와 마킹 도구, 사포 등 공간이 허락하는 선에서 차곡차곡 정리했어요. 클램프와 목공용 본드, 바니쉬는 부직포 가방에 따로 담았고 트리머는 상자 속에 잘 담아서 테이프로 봉했습니다. 각재들은 가져갈 것만 청테이프로 싸서 챙기고 나머지는 땔감으로 내놨고요. 사물함에 들어있던 교재들과 헤드셋, 방진마스크 등도 종이백에 모두 담았습니다.


문제는 '이 짐들을 모두 어떻게 집으로 가져가느냐'였습니다. 1톤 트럭을 부르기에는 양이 좀 작고 그렇다고 카카오택시로 벤티나 I.M으로 카니발 밴을 부르자니 기사님들이 싫어할 것 같았거든요. 카카오 벤티 유의사항이 아래처럼 승차 거부를 당할 수 있다고 적혀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번에는 엄마 친구 찬스를 쓰기로 했어요. 다행히 평일 오전에 시간이 되셔서 짐 옮기기를 도와주시기로 했습니다.



카카오 택시 벤티 예약 시 유의사항 © 2023 킨스데이



드디어 날이 밝고 짐을 빼는 날이 되었습니다. 지난 10개월 동안 작업대 아래와 강의실, 휴게실, 사물함에 흩어져있던 제 짐을 한 자리에 모아두니 그 양이 상당하더라고요. 역시 "이사를 자주 다녀야 짐이 줄어든다"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편으로는 집으로 가져가면 어디다 둬야 할 지도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목표는 우선 "짐들을 집으로 안전하게 모셔가기"이기 때문에 여기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죠. 엄마 친구분이 엄마와 함께 카니발 7인승 밴을 몰고 오신 덕분에 트렁크와 뒷좌석으로 촘촘하게 짐을 실어날랐습니다. 옮기는 데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더라고요. 카니발이 출발했고 저는 손을 흔들며 배웅을 했습니다.


이동하려고 한 데 모아둔 나의 짐 무더기 © 2023 킨스데이


공방으로 다시 들어가니 깨끗하게 비워진 내 공용 작업대를 보면서 이제 정말 이 과정도 다 끝나는구나를 실감하게 됐습니다.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과 허무함이 동시에 느껴져서 오묘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시원섭섭함과 비슷하기도 했고요. 천천히 점심 식사를 한 뒤 텀블러를 들고 저의 최애 카페로 발걸음 가볍게 걸어갔습니다. 따뜻한 라테 한 잔을 마시며 창 밖의 풍경을 감상하는 이 여유. 이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아쉬움과 감사를 표하며 사장님께 굿바이 인사를 하고 다시 공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저의 여름 휴식을 책임져주었던 곳이자 동료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던 곳, 그동안 고마웠어, 카페 멜로이. 마음속으로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오늘도 하늘 위로 비행기 한 대가 빠르게 지나가더라고요. 성남 비행장이 근처에 있거든요. 비행기 소음을 온몸으로 버텨내는 사송동. 2023년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이 동네. 양 길가 옆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텃밭과 아직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문닫힌 보라색 슈퍼마켓, 일 년 내내 임대 광고가 걸려있는 빌라들과 주차장. 제 인생에서 크게 중요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눈에 담아두었습니다. 사송동, 이제 안녕~


카페에서 돌아오니 동료들은 아직 자유제작인 마지막 작품을 진행 중이라 정신없이 바빠 보였습니다. 여전히 CNC 기계들은 시끄럽게 돌아가고 있었고요. 내일까지 마무리 못하면 며칠 더 나와서 추가 작업을 할 예정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이게 싫어서 지난 몇 주 동안 철저하게 스스로를 컨트롤해 가며 (그리고 디자인을 타협해 가며) 계획에 맞춰 엄청 진도를 빼서 완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일을 벌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무리가 진짜 중요한 사람이 거든요. 그동안 일할 때 주변에서 마무리를 못하고 헤매는 답답한 사람들을 여럿 봐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목공을 해보니 완성도를 떠나서 기한에 맞춰 마무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다시 깨닫고 있습니다. 목공을 통해 새로운 스킬업뿐 아니라 '제 자신에 대한 발견의 시간'이었다는 생각도 드네요. 평소 알고는 있었지만 진짜 내가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는지 시각적으로 보고 체험하는 경험을 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한결 여유로운 마음으로 난롯불을 관리하거나 헤드셋을 끼고 스툴에 앉아 발을 까닥거리며 남겨둔 각재를 사포질 하면서 나머지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늘의 목표였던 짐 옮기기를 달성한, 마음 뿌듯한 하루였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저는 이 미니책장으로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