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고객 때문에 오늘도 출렁이는 하루를 보내요.
프리랜서 5년 차의 이력
프리랜서가 된 지 어느새 5년이 넘었다. 그 사이 잠시 개인사업자가 되기도 했고, 최저시급으로 단기 계약을 하기도 했었다. 프리랜서 이전에는 22년 동안 대기업, 글로벌 기업, 국내외 비영리 기관, 서울/지방 대학교, 스타트업 등 크고 작은 여덟 개 조직을 오가며 입사와 퇴사를 반복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과 일하면서 기본적인 업무 스킬은 물론, 적응력과 소통, 협업 능력을 익혔다. 일을 빠릿빠릿 깔끔하게 잘한다고 평가받기도 했고, 승진에서 미끄러지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결국 사람과 리더십, 조직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으로 배웠다.
이직의 키워드는 '성장'
나의 이직 키워드는 단연코 '성장'이었다. 성장 가능성이 보이지 않으면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물론 생계형 노동자였기에 연봉과 복지, 조직의 평판도 중요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중요해진 건 '누구와 일하는가'였다. 내 보스가 누구인지, 팀원이 어떤 사람들인지가 최우선 기준이 됐다.
의외로 대부분의 조직에 미친 개자식들이 적어도 한 명은 있다. 그걸 견딜 수 있을지 말지 면접 과정에서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직이 나를 선택하듯, 나 역시 그들을 선택한다는 믿음과 함께 '파트너십'을 추구하는 것. 이 관점은 프리랜서가 된 지금도 변함이 없다.
프리랜서로서 나는 계약 전에 파트너가 누구지, 역할과 책임, 그라운드룰이 무엇인지 명확히 한다. 파트너로서 존중받지 못하면, 통장 잔고가 아슬아슬해도 단호하게 '드롭'한다. 드롭할 수 없는 상황이면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다음은 없다. 남이 보기에 하찮은 프리랜서일지라도 나름의 당찬 커리어 철학이 있다고 자부한다. JTBC 드라마 <김 부장 이야기>에서 술 취한 오 부장의 꼬장을 보고 바로 칼 거절을 한 그 여성 대리기사처럼 말이다.
프리랜서의 베스트 고객 vs. 워스트 고객
프리랜서에게 일은 들쑥날쑥하다. 물이 들어오면 노를 젓고, 없으면 노를 내려놓고 쉰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출렁거리는 꾀나 리드미컬한 삶이다. 이런 삶을 가능하게 한건 나와 계약을 맺었던 고객들 덕분이다. 이들이 있기에 에너지를 얻고 삶이 풍요로워지기도 했다. 이들 때문에 울면서 이를 악물고 꼭 성공하리라 다짐하며 야근을 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만난 최고의 고객 Top3는 이렇다.
첫째, 견적서에 군말 없이 오케이 하는 고객 (사랑합니다!)
둘째, 금액은 크지 않더라도 일이 끝나면 제 때, 혹은 조금 일찍 입금해 주는 고객 (감사합니다!)
셋째, 금액이 적고 빨리 입금도 안 해주지만, 협업에 감사하고 진심으로 응원해 주는 고객 (고래도 춤춥니다!).
특히 세 번째 유형의 고객과 일할 때는 '한 팀'이라는 감각이 생긴다. 그래서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고, 결과물도 기대이상으로 나온다. 결국 윈윈이 되어 다음 협업으로 이어진다.
반면 최악의 고객 Top 3는 분명하다.
첫째, 시간당 인건비를 깎고 일의 가치를 폄하하는 고객 (왜 내 몸의 가치를 당신이 정하는 거죠? 싼 게 비지떡인 거 모르시나요?)
둘째, 하청업체 다루듯 업무 범위를 넘어가며 갑질하는 고객 (상생협력이란 단어는 슬로건에 불과한가요?)
셋째, 겉으로는 위하는 척하면서 교묘하게 부리는 고객 (고수라 조심해야...)
이들의 공통점은 '돈 주는 내가 갑'이라는 태도다. 협업 파트너로 보지 않는다. 이런 경우엔 그냥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프로젝트를 빨리 끝내 퉤퉤 뒤돌아보지 않는 게 상책이다. 계약 전에 그런 성향을 보이면 바로 손절해야 한다. 굳이 상대의 속내를 파악해 내 편으로 만들 필요도 없다. 다행히도 지금까지 이런 고객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이렇게 나열해 보니 이 리스트는 단순히 고객과 프리랜서의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 가족에게, 친구에게, 연인에게, 상사에게 대할 때도 그대 적용해 볼 수 있다. 동시에 나를 들여다보는 거울이 되기도 다. 나는 누군가에게 최고의 고객 Top3처럼 대한 적이 있던가? 그들에게 갑질하지 않고 경청하고 응원하며 한 팀이라는 기분을 느끼게 했나? 충분히 존중하고 배려했나? 글을 쓰다 보니 자연스레 급 반성하게 된다.
프리랜서는 A to Z 책임지는 사람
좋은 고객이든 나쁜 고객이든 일단 프로젝트를 맡으면, 나는 늘 '이게 내 인생 마지막 프로젝트'라는 마음으로 임한다. 그래야 배움이 있고 성장이 있다. 나에게 프로젝트는 기회와 도전이다.
전문성과 경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경험한 프리랜서는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마케팅이나 글로벌 파트너십 같은 특정 업무를 맡아 월급을 받던 시절에는 몰랐다.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전체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직접 실행까지 한다. 전략가이자 실무자이며, 때로는 마케터, 세일즈맨, 디자이너, 리서처, 카피라이터, 고객센터 직원이 된다. 결국 전방위로 일을 총괄하는 팔방미인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호기심, 큰 그림을 보는 능력, 디테일, 창의력, 문제해결능력, 추진력, 소통 능력이 모두 필요하다. 요즘은 AI가 훌륭한 어시스턴트가 되어 업무 효율을 높여주고 있다. 이런 역량은 여러 조직에서 트레이닝을 받기도 했고, 혼자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늘기도 했다.
내 시간의 주인은 나
"프리랜서여서 뭐가 좋아요?" "힘들지 않아요?" "다시 태어나도 프리랜서 할 거예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나는 주저 없이 미소 지으며 답할 수 있다. 프리랜서의 가장 큰 장점은 단 하나, '내 시간의 주인이 바로 나'라는 거다. 이건 직접 누려본 사람만 안다. 그래서 다시 조직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미국에서 재택근무의 맛을 봤고, 지금도 한국에서 계속 재택을 하고 있다. 춥고 더운 날, 비 오고 눈 오는 날 남들 출근할 때 집에서 노트북을 여는 기분이란. 물론 자기 관리를 못하면 쉽게 늘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내가 선택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오늘도 식탁에 앉아 캐럴을 들으며 일하고 있다. 작은 소망이 있다면 나만의 작업실을 갖는 것. 그날을 위해, 오늘도 고객의 피드백을 기다리며 남은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