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라는 현실을 가장 선명하게 느끼는 순간이 있습니다. 한도제한 계좌를 풀려고 필요한 서류 목록을 살펴보았을 때, 행사 신청서의 '소속' 칸 앞에서 멈췄을 때, 네트워킹 자리에서 명함을 건네기 직전 잠깐 망설였을때 말이지요. 그런 순간마다 이상하게 작아집니다. 듣보잡이라는 자각, 브랜드 파워의 부재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알려진 기업에 다니다 홀로서기를 하면 유독 춥고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20년 동안 대기업에 다녔던 지인은 1년 동안 우울감에 빠져 지낸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 대기업이란 우산 없이 폭풍 속에 맨발로 서 있는 기분이었을 겁니다. 아마 김 부장도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상감 임대 사기를 당한 거겠지요.
하지만 이럴수록 빠른 자각이 필요합니다. 어차피 우리는 언젠간 프리랜서가 됩니다. 다만 타이밍의 차이일 뿐이지요. 그리고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100세 인생이라면, 아직 절반도 지나지 않았으니까요. 초조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이 없을 때 스스로 일을 만들어서 결국 해내는 분들을 보면 존경심이 듭니다. 그렇게 버티면서 자기 몸값을 스스로 정하고, 나아가 외부 환경까지 주도하는 분들이요. 비보 TV의 송은이 대표가 그렇습니다. 방송국에서 일을 주지 않자, 기다리지 않고 직접 콘텐츠를 만들었고, 결국 팬덤을 만들었습니다. 숏박스팀의 스토리도 인상 깊습니다. 끊임없이 여러 콘텐츠를 가지고 실험하면서 인지도를 높였습니다. 비보 TV의 콘텐츠인 '연기의 성'을 리드하는 임형준 배우도 요즘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혜성처럼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모두 심해 바닥에서 조금씩 역량을 쌓으며 물 위로 올라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중증외상센터>의 이낙준 작가는 초반에 '디지털 쓰레기 같은 글'을 썼다고 고백했고, <대통령의 글쓰기>의 강원국 작가는 월 200만 원이라도 벌어보자는 마음으로 동네 도서관에서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도전을 해봤나요? 저요? 아직은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브런치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신세한탄도 하고, 제 경험도 공유하면서 제 일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요. 내년 1월에 계획했던 워크숍은 드롭했고, 활발하게 준비했던 프로젝트도 잠시 미뤄진 상태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뭐라도 해봐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시작은 단순합니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부터 하면 됩니다. 그것을 기록하고, 아카이빙하고, 과정을 공유하면 더 좋습니다. 그 과정에 반응하는 사람이 최소 1천 명 모인다면 방향은 크게 틀리지 않은 겁니다. 초기 스타트업이 '천 명 모으기'부터 시작하듯이요. 물론 작은 숫자는 아니지요. 이후에는 반응을 보며 A/B 테스트를 해볼 수 있습니다. '디자인 싱킹 프로세스'로 생각하면 더 쉽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유퀴즈>에서 김풍 작가가 카페 사업 실패담을 이야기하며 나만 좋았고 '소비자 니즈를 몰랐다'라고 고백했는데요. 시장조사를 하지 않는 '교만'이 가장 큰 리스크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고객의 페인포인트를 공감하고, 문제를 정의한 뒤 간단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테스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 결과가 언젠가 빛을 보는 시작점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좋은 경험으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아직은 모릅니다.
프리랜서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일이 없을 때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입니다. 번아웃 상태가 아니라면 말이죠.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몸값은 떨어지고, 감각은 무뎌집니다. 경력 단절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하나의 실험을 시작합니다. 브런치를 쓰는 것이 그중 하나입니다. 내년에는 온라인으로 작은 북클럽 모임도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며 배우고 나누는 모임이요. 일이 없으면, 일을 스스로 만들어보는 실험을 합니다. 오늘도 노트북 앞에 앉아있는 이유입니다. 이 작고 어설픈 실험이 다음 일을 가져와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