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럴 때가 있습니다. 노트북 하나 들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그런 순간, 여행과 일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워케이션이야말로 프리랜서에게 주어진 최고의 특권 아닐까요? 제가 지금까지 경험한 부산, 제주도, 태국, 뉴질랜드, 미국, 포르투갈 포르토, 독일 베를린에서 며칠 또는 몇 달 이상 디지털 노매드 경험을 간략히 나눠볼까 합니다.
워케이션 장소를 정할 때 고려하는 조건
워케이션을 떠날 때, 저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고려합니다.
하이스피드 인터넷은 필수 => 줌 미팅하다 끊어지면 가슴이 철렁하기 때문에 24시간 접속이 가능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지는 제외합니다.
숙소나 근처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
주변 환경에서 힐링할 수 있어야 한다. => 반드시 자연일 필요는 없고, 도심이어도 문화생활이 가능하면 됩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과 카페, 마트가 있어야 한다. => 나름 미식가를 추구하거든요.
지인이 있거나 친구를 만들 수 있는 커뮤니티가 있어야 한다. => 장기 워케이션이라면 특히 중요합니다.
물가 비싸지 않아야 한다. => 예산은 한정적이니까요.
날씨가 온화해야 한다. => 너무 덥거나 추우면 숙소에만 틀어박혀 지내야 할 수도 있거든요.
안전한 환경이어야 한다. => 여성 혼자 돌아다녀도 안심할 수 있어야죠.
숙소가 깨끗해야 한다. => 집순이 경향도 있거든요.
새로운 경험이나 도전을 할 수 있어야 할 것. => 항상 영감이 필요합니다.
이 조건들을 만족하는 장소는 언제든지 도전합니다.
부산, 바다와 함께 일해요.
부산 해운대는 바다 보고 싶을 때 가는 곳입니다. 해운대역 근처의 가격 리즈너블한 펠릭스 by STX 호텔(스튜디오 디럭스가 1박에 7만 원대 수준)에서 머물었어요. 일하다가 슬렁슬렁 걸어서 바다도 보고 그 앞에 시장 골목이나 근처 식당이나 카페를 다녔지요. 부산 창조 경제 혁신센터에서 운영하는 부산역에 근처 거점센터인 코워킹 스페이스 공간은 등록만 하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데요. 아스티호텔 24층에서 내려다보는 뷰가 예술입니다. 북적이지 않아 집중하기도 좋고, 온라인 미팅 공간도 있어요. 키친도 있어서 근처 식당에서 픽업해서 간단히 식사도 가능합니다. 여름을 제외하고 가성비 좋은 곳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제주도, 고립과 힐링의 조
저는 차 렌털을 하지 않고 제주시에 주로 머물렀는데요. 지인이 추천한 리젠트 마린 더 블루 호텔 오션뷰 룸을 주로 이용했어요. 방에서 바다를 보면서 일할 수 있는 게 큰 장점이에요. 배달음식 시켜서 먹기도 하고 주변 와인바나 식당에서 밥 먹고 산책하기 좋아요. 카페 골라 다니기도 편하고요. 큰 슈퍼도 있고 아라리오 뮤지엄탑동 시네마도 있어요. 스스로 고립되고 싶을 때 괜찮은 것 같아요. 그러다 정 외로우면 제주도 지인이랑 같이 식사하기도 하고요. 가심비 만족도 높은 편이에요. 날씨만 크게 문제없다면 말이죠.
태국 방콕, 적당히 즐기기 좋은 도시
한달살이를 했었어요. 보통 치앙마이나 치앙라이로 많이 가시던데 저는 모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멘토링 제공을 위해 방콕에 머물렀어요. 제가 머문 호텔 Sora Hotel Silom은 Chong Nonsi BTS역 바로 앞에 있어서 교통이나 편의시설 접근성은 최고였습니다. 다만, 평범한 방구조에 하루 종일 창문에 커튼을 쳐놓아야 했어요. 안 그러면 지하철에서 내린 손님과 눈이 마주칠 수 있거든요. 바로 뒤편에 아침 시장이 있고, 현지인에게 인기 많은 식당과 브리오슈가 유명한 카페, 세탁시설, 마트, 마사지샵, 공원에 이르기까지 편의시설이 없는 게 없더라고요. 사람들은 친절하고 시장 물가는 저렴해요. 대신 외국인 상대 식당이나 루프탑, 쇼핑몰은 당연히 비싸고요. 한국사람이 지내기에 괜찮은 도시라고 생각해요. 돈이 많을수록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지갑이 얇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정도면 꽤 오래 머물러도 괜찮겠다 싶더라고요. 역사 깊은 재즈 라이브 클럽도 맘에 들고요. 다만, 요즘 지진과 싱크홀로 좀 불안하긴 해요. 또한 대마(카나비)의 노골적인 유혹이 있는데,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나이 든 백인 남성과 젊은 여성 커플을 봐도 쿨하게 견딜 수도 있어야 합니다. 현지인과 외국인들이 이용하는 공간이 구분이 된 것 같아 씁쓸한 감정이 올라올 때도 있긴 합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타우랑가, 자연 속에서의 재충
뉴질랜드는 1년에 한 번씩 최대 3개월 정도 머물 던 곳이에요. 물가가 비싸고 차가 없으면 꼼짝 못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자연환경은 단연 베스트입니다. 번아웃이 왔을 때 재충전을 할 수 있었어요. 특히 오클랜드에서 차로 세 시건 떨어진 타우랑가에 있는 에어비앤비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바다가 있어서 매일 아침 명상하듯 찾았습니다. 매일 바라보는 바다의 풍경은 매번 달라서 신기했어요. 해변으로 가는 길에 있는 동네 카페도 정겹고요. '플랫 화이트'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뉴질랜드랜더들이기에 뉴질랜드에 가면 거의 이 커피만 마셨어요. 워낙 인구수가 적고 인종차별은 없지만, 남한테 무심하기 때문에 외로울 수 있는데요.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안 할 때도 있거든요. 이럴 때를 대비해 한인 교회 커뮤니티에 조인했고, 주변 지인들을 가끔 만나거나 한국 친구들과 카톡으로 대화하면서 극복할 수 있었어요. 뉴질랜드 동네 슈퍼마켓에도 김치나 한국에서 수입한 제품들이 있고 한국 슈퍼, 한국 식당도 늘어나고 있어 생활에 불편함은 크게 없어요. 수도 웰링턴은 바람은 많이 불지만 산책하기에 적당한 사이즈의 도시입니다. 하지만 가족이 아닌 내향형 싱글이라면 뉴질랜드에서 고독감을 느낄 할 수 있는, 심지어 고립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워싱턴 DC, 일과 삶의 균형이 가능한 곳
지금도 기억나요. 알링턴 어떤 건물 엘리베이터를 애플 CEO '팀쿡'과 함께 탔었는데요. 보디가드가 많아서 조용히 구석에 찌그러져 있었어요. 잘 사는 백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는 나름 안전한데요. 버지니아 주 알링턴이 바로 그런 분위기였어요. 저는 스튜디오를 렌털했는데 공간이 넓고 창문 밖에 초록초록해서 재택 하기 딱이었어요. 조금만 걸어가면 알링턴 국립묘지공원에서 명상이 가능하고, 다리만 건너면 조지타운, 케네디 센터가 나와요. 쇼핑과 카페, 식당, 장보기, 문화생활 모두 가능해 접근성이 좋았죠. 워싱턴 DC는 대중교통이 잘 돼있어서 차가 없어도 버틸 수 있어요. 한인 유학생들과 직장인들, 한인 교회와 성경공부 커뮤니티도 잘 돼있어서 한인마트 쇼핑이나 한인 식당 방문 등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일은 갤러리와 협업한 코워킹 스페이스를 이용하기도 했고, 집에서도 근무했어요. 수준 높은 무료 문화공연과 갤러리, 미술관, 박물관이 많고 또 무료가 많아서 문화생활은 제대로 했지요. 또 가고 싶긴 한데, 최근 케네디 센터가 '도널드 트럼프 케네디 센터'로 이름을 바뀌면서 공연이 취소된다고 해서, 발길을 끊게 되네요.
포르투갈 포르토, 슬로 라이프가 가능한 곳
주변에서 하도 극찬을 하길래 저도 가봤어요. 캐리어를 끌고 힘들게 계단을 한참 올라갔던 곳이지만, 레베이라강이 보이는 호텔 겸 에어비앤비를 잘 잡아서 워케이션 하기에 안성맞춤이었어요. EU 국가 중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하고 좀 슬로하면서 동네 골목을 산책하기 안전하고 음식도 맛있었어요. 파두 공연을 못 봐서 아쉽지만요. 파두는 리스본에 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여기는 웰컴 음료가 포트 와인이에요. 해리 포터 작가인 J.K 롤링이 글을 썼다는 카페와 해리 포터를 연상케 하는 서점은 관광객 바가지 느낌이라 스킵했어요. 하지만 타일의 도시 느낌이 남아있고 뭔가 소박하고 여유 있는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독일 베를린, 다인종 도시에서의 새로움
베를린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두 번이나 워케이션을 했는데요. 겨울을 지내고 나서 그 말이 쏙 들어가 버렸어요. 한국의 겨울과 달리 우중충하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그런 을씨년스러운 겨울이더라고요. 하지만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를 들으면 뼈가 시린듯한 마음도 스르륵 녹아버리죠. 카레 핫도그와 다양한 비건 메뉴를 즐길 수 있고, 친환경적인 라이프 스타일, 장보기도 유쾌한 경험입니다. 신뢰 바탕의 지하철 시스템도 잘 돼있고요. 밝고 안전한 큰 도로 위주로 다니면 무섭지 않아요. 케이트 블랑쳇 주연의 영화 <타르>의 배경이기도 한 도시인데요. 다인종에 영어가 잘 통하고,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 대비 물가 저렴하다고 주장하는 베를린 워케이션은 한 번쯤은 경험해 보길 추천해요. 겨울이 아니면 괜찮은 것 같아요. 그래도 남자 어른들이 축구 유니폼을 입고 길에 서서 맥주를 마시고 있으면 무서워서 돌아가요. 실수로 자전거 길에 서 있다가 빽! 욕먹기도 했고요. 하지만 나름 상식적으로 돌아가는 도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는 어디로 워케이션을 떠나게 될까요? 마음 같아선 일본 삿포로 근처의 작은 온천 마을도 좋을 것 같고요. 아니면 스페인이나 프랑스의 해변가 마을도 좋아 보입니다. 꼭 멀리 갈 필요도 없지요. 잘 알려지지 않은 북스테이나 웰니스 공간에서 머물며 일하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아요. 워케이션은 꼭 멀고 비싼 곳, 아니면 유명한 곳보다는 현지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담담하게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이렇게 다양한 장소에서 경험한 워케이션은 그 자체로 새로운 도전이자 힐링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최애 워케이션 장소는 어디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