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가족끼리도 조직문화의 기본, 그라운드룰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명확하지 않으면 서로의 영역이 엉키고, 사소한 일로 다툼이 생깁니다. 독립생활을 하다가 다시 본가로 들어왔을 때, 바로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각자의 역할과 책임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가족이니까 괜찮겠지”라는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지만, 그때는 갈등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습니다. 그 경험 이후로 확실히 느꼈습니다. 가족 사이에서도 역할, 책임, 그리고 합의된 규칙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그래야 불편 없이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집의 그라운드룰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월요일은 한 주의 시작이자, 우리 집의 청소하는 날입니다. 작은 조직처럼, 우리 집도 함께 사는 공동체이기에 역할이 나뉘어 있습니다. 저는 무선청소기 담당입니다. 미리 100% 충전을 해두고, 구석구석 청소합니다. 구축 아파트라 문지방이 있어 로봇 청소기를 쓸 수는 없지만, 나무 결 방향으로 밀면 흡입이 더 잘됩니다. 눈에 보이는 먼지를 제거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큰 일도 잘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요. 창문을 활짝 열고 청소를 마치고 나면, 이번 한 주도 잘 버텨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결벽증이 있는 언니는 화장실 청소를 담당합니다. 대신 아르바이트비를 받습니다. 역할에는 보상이 따릅니다. 이것 역시 합의된 규칙입니다.
주말에는 세탁기를 돌립니다. 네이버 날씨를 보며 영상이 되는 시간을 확인해 일주일치 빨래를 모읍니다. 환경을 생각해 건조기는 두지 않았고, 테라스와 거실 한켠에 빨래를 넙니다. 두꺼운 옷과 얇은 옷을 교차해서 널면 더 빨리 마른다는 건, 살면서 얻은 작은 팁입니다. 양말도 색깔별로 짝을 지어 겁니다. 그래야 갤 때 덜 지칩니다.
우리 집에는 이런 무언의, 혹은 명시적인 규칙들이 있습니다.
장을 보고 오면, 집에 있던 사람이 물건을 옮긴다
샤워나 목욕은 밤늦게 하지 않는다
피아노는 오후 9시 전까지만 친다
각자 먹은 설거지는 바로 처리한다
내돈내산 물건은 허락 없이 사용하지 않는다
늦게 귀가할 땐 미리 공유한다
사전 공지 없는 손님 초대는 없다
가족 간 금전 관계는 철저히 계산한다
문제가 생기면 회의를 소집할 수 있다
가까울수록 선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응원과 격려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서로에게 짐이 되지는 말자는 것이 우리 가족의 암묵적인 합의입니다. 그래서 카카오 단체방을 통해 필요할 때마다 긴밀하게 소통합니다.
이런 생각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닙니다. 리더십 코칭을 하면서 리더들에게 늘 조직문화의 중요성을 이야기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 연습은 회사에서만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집에서도, 가족과 함께 매일 하고 있었습니다. 규칙은 함께 정해야 하고, 특정 기간을 정해 실행해 본 뒤 불편하면 고쳐야 합니다. 그렇게 다듬어진 그라운드룰은 삶을 더 안전하고, 건강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듭니다. 그 과정에서 신뢰가 쌓이고, 존중과 배려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오늘도 저는 청소기를 밀며 생각합니다. 우리는 집에서도, 이미 함께 일하고 있다고. 이게 우리 가족의 조직문화의 일부분이라고. 여러분의 집에는 어떤 그라운드룰이 있나요? 그리고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나만의 바운더리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