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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serve better Feb 09. 2021

아무튼, 차

maison de silk





1.


알레르기성 질환 (비염과 천식) 치료를 위해 카페인을 줄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 왔다.

2년 동안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수술과 치료를 받고 작년 말에 부모님의 닦달에 아산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인데 처방받는 약을 잘 복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치료의 핵심은 식습관과 생활 습관의 전반적인 개선이다.

염증을 유발하는 밀가루와 인스턴트식품을 줄이고 알레르기 약과 흡입기 사용 시 권장되는 카페인 섭취 줄이기 등과 같은 것에서부터 방 안의 온도와 습도 맞추기,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방 안의 모든 물건은 수납장 안으로 넣고 커튼이나 블라인드 사용하지 않기 등까지 모든 생활 패턴을 바꿔야 하는 게 가장 어렵고 힘들다. 살아왔던 익숙한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건강한 패턴이 습관이 될 때까지 길게 보고 가야 하는 장기 전이기 때문.


2.

지금도 여전히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좋지 않은 음식을 입에 대고 악순환을 반복한 후, 다시 눈물로 후회하며 바로잡기의 과정을 살고 있다.

그래도 근 1년간 가장 큰 변화는 커피를 줄이고 차를 마시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작년 여름쯤, 우연한 기회에 자주 가는 밥집과 카페 근처에 있는 예쁜 찻집을 보고 인스타로 팔로우해서 소식을 받다가 친한 언니와 첫 방문을 하게 되었던 메종 드 실크 다옥

하루에 서너 잔씩을 마실 정도로 좋아하는 커피를 몸의 질병과 건강 때문에 마시지 못한다는 게 알게 모르게 큰 우울감으로까지 왔는데, 엇비슷한 시기에 차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호감을 갖게 해 준 곳도 메종 드 실크였다.

다옥 안에 들어서는 순간 작지만 아늑한 공간에 엔틱 가구와 흔하지 않은 디자인의 화병과 꽃들, 차 도구들이 촘촘히 놓여 있는데 따듯하고 편안했다.

좋은 차를 추천해주시고 차에 대한 설명과 내리는 법을 차분히 설명해주시는데 참 좋았던 기억으로 언제든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가고 싶은 찻집으로 마음에 남아 있었다.


3.

눈이 오고 따듯해졌다가 또다시 추워진 날씨의 변덕 사이에 또 곧 다가올 연휴를 바라보며 마음이 흔들거려 오늘은 혼자 메종 드 실크에 다녀왔다.

​감사한 교수님,
또 큰 도움을 받은 고마운 언니에게 전할 선물로
추천해주신 우롱차와 개완, 숙우, 유리 찻잔을 포장해왔다.

​내가 마실 우롱차와 홍차 백작약 찻잔도 데려오고.




4.

천방지축 오두방정의 20대를 지나 보내고 정신없이 달려오던 삶에 몸의 질병으로 의도치 않게 갖게 된 쉼표의 삶이 때로는 감사하다가도 ‘나 지금 뭐 하고 있지? 이게 뭐지?’ 싶은 어두운 마음으로 요동칠 때 나를 붙잡아준 것들이 나의 취향이 되었다.


커피를 마실 수 없어서, 자연스레 관심이 옮겨간 차

살기 위해 선택한 것이 나를 풍성하게 해 주고, 더 나아가 좋아하고 즐길 수 있다면 그걸로 감사하자고 다짐한다.

​고난이 유익이라 하신 말씀처럼,
아픔을 통해 얻게 된 타인 이해, 새로운 소득을 기뻐하자.

그래서
아무튼, 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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