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 CASE STUDY : Second order effect
영국 정부가 식민지였던 인도에 코브라가 너무 많아서 실행했던 정책이 하나 있다. 코브라들을 잡아오면 보상금을 주는 정책이다. 이 정책을 실행하고 처음에는 코브라가 줄어드는 듯했지만, 나중에는 돈을 벌기 위해 일부러 코브라를 번식시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영국 정부에서 보상 정책을 중단했다. 그러자, 코브라 사육자들은 가치가 없어진 코브라들을 몽땅 풀어줘 버렸다. 결과적으로 정책을 시행하기 이전보다 더 많은 야생 코브라가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본 의도와는 다르게 비극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이 상황을 코브라 효과 라고 부른다. 코브라 효과는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2차 효과(Second order effect)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20세기 초,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베트남 하노이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여기서는 '쥐 없애기' 정책을 시행했는데, 코브라 정책과 마찬가지로 쥐를 잡아서 죽이고 그 꼬리를 가져오면 보상금을 주는 간단한 제도였다.
하노이에서는 이 정책이 효과가 있었을까?
예상할 수 있듯, 코브라 정책 때와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하노이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쥐를 죽이는 게 아니라 꼬리만 자른 다음에 다시 풀어줬다. 그래야 번식을 계속 할테고 자를 꼬리도 계속 생기니까 그걸 의도한 거다. 뿐만 아니라 더 많은 꼬리를 모으기 위해 직접 쥐를 사육하기도 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2차 효과(Second order effect)의 사례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하고 행동을 하면, 그 모든 행동에는 '결과'가 따라온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인해 또 다른 '결과'가 생길 수 있는데, 이를 2차 효과(Second Order Effect)라고 부른다.
위 두 가지 사례에서 봤듯, '결과'에 대한 또 다른 '결과', 즉 2차, 3차 결과들은 초기에 의도한 것과 전혀 다른 정반대의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이러한 효과는 디자인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디자인 분야에서는 어떤 2차 효과 사례가 있는지 살펴보자.
약관 동의 UI
UI 디자이너들이 약관 동의 페이지를 만들 때, 어디에 초점을 두고 디자인을 하는지 한 번 생각해 보자.
디자이너들은 어떤 목표를 갖고 약관 동의 페이지를 디자인할까?
그들의 디자인 목표는 바로 "빠르고 쉽게 동의를 하고 넘어갈 수 있는 페이지"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약관 동의 UI'를 검색해 보면, 아래와 같은 디자인 전략이 대부분이다.
1. 동의 체크 박스를 오른쪽에 둘지 왼쪽에 둘지 (어디에 둬야 빠르게 체크하고 넘어갈 수 있을지)
2. 엄지 손가락이 닿을 수 있는 핫스팟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거기에 체크박스를 둬야 빠르게 체크할 수 있으니까)
3. 수많은 약관들에 동의하는 작업을 어떻게 하면 최소화할지 ('전체동의' 버튼을 만들면 터치 한 번에 넘어갈 수 있듯)
이러한 전략들은 모두 약관 체크(CHECK)가 아니라 스킵(SKIP)에 초점 을 맞추고 있다. 이름은 '약관 동의 UI' 지만, 정작 중요한 '약관 전달'에 대한 고민은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이다.
- 약관의 내용을 어떻게 전달할지
- 어떻게 하면 약관의 핵심을 이해시킬 수 있는지
- 모르고 지나갔을 때 피해를 볼 수 있는 약관을 어떻게 강조할 건지
등의 고민말이다.
대부분의 서비스들은 사용자들의 개인정보를 당연하게 수집하고 활용하면서, 그 정보들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 얼마의 기간 동안 보관이 되며 어떻게 폐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약관'은 쉽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빠르게 넘겨야 좋은' 페이지로만 인식하게끔 만든다.
이렇게 약관 동의 UI를 디자인했을 때, 1차 결과와 2차 이후 결과들은 다음과 같다.
① 계획 약관 동의를 쉽고 편리하게 할 수 있는 페이지를 만든다.
② 1차 결과 약관에 빠르게 동의하고 넘어간다.
③ 2차 결과 어떤 약관에 동의했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④ 3차 결과 모르고 동의한 약관으로 인해 피해(서비스 해지 시, 수수료 부과 / 환불 불가 / 개인정보 이용 등)를 받는다.
⑤ 4차 결과 제품/서비스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하고 그 브랜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긴다.
초기 의도는 사용자들이 머리 아프지 않게, 약관동의를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선한 의도'였다. (요즘엔 일부러 약관을 못 보게 숨겨놓은 기업들도 있긴 하다.)
1차 결과는 의도한 대로, 사용자들이 쉽고 빠르게 약관 동의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2차 이후의 효과들을 보면, 초기 의도와 달리 브랜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기는 결과로 이어졌다.
인스타그램 (1)
요즘은 인스타그램을 일부러 '끊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나만 빼고 모두가 좋은 곳에 놀러 가고, 비싼 물건을 사고, 맛있는 걸 먹고 있는 것 같이 느껴져서 우울한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사용자들의 상대적 박탈감, 인스타그램이 의도한 일일까?
① 계획 '좋아요', '팔로워' 등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을 보여주는 '보상 지표'를 통해 사람들이 삶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공유하도록 장려한다.
② 1차 결과 삶의 하이라이트만 편집하여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③ 2차 결과 다른 사람들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보며 자신의 현실과 비교하게 된다.
④ 3차 결과 상대적 박탈감, 우울함, 허무함 등을 느낀다.
⑤ 4차 결과 인스타그램을 삭제하거나 탈퇴하는 등 사용을 거부한다.
당연하겠지만, 인스타그램은 사용자들로 하여금 우울함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 그저 개개인의 순간을 캡처하여 공유하는 '사회적 문화' 형성에 집중했을 뿐이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처음엔 의도한 대로 인스타그램 BOOM이 생겼고, 사용자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그 이후에 결과를 보면, 사람들이 편집된 '순간'과 자신의 '현실'을 비교하며 우울해하고 결국 인스타그램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이어졌다. 심지어 '인스타그램 끊기'를 장려하는 문화가 생겼을 정도다.
인스타그램 (2)
인스타그램의 2차 효과 사례가 한 가지 더 있다.
스마트폰 중독을 일으키는 무한 스크롤 기능, 대표적인 다크패턴 디자인 사례 중 하나인데, 그렇다고 이 기능이 처음부터 나쁜 의도를 갖고 만들어진 건 아니었다.
① 계획 사용자들이 콘텐츠를 보다가 끊기지 않도록, 계속 콘텐츠를 보여주며 '매끄러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자.
② 1차 결과 스크롤만 내리면 새로운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다.
③ 2차 결과 흐름이 끊기지 않아서, 하루종일 스크롤만 내리는 '중독'에 빠지게 된다.
무한 스크롤 기능을 처음 개발한 디자이너, Aza raskin(에이자 래스킨)은 이렇게 생각했다.
스크롤하고 있다는 건 이미 콘텐츠를 더 보고 싶다는 증거인데,
왜 굳이 더 보기 버튼을 넣어야 하지?
그래서 그는 하단에 더 보기 버튼을 없애버리고 대신 스크롤을 하면 계속해서 새로운 콘텐츠를 볼 수 있게 만들었다. 1차 결과만 보면, 이 디자인은 적중률 100%로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2차 결과는 처음에 의도한 바와 전혀 다른 부작용으로 이어졌다.
이 문제는 윤리적으로 많은 논란이 되었던 사례이기도 하다. 결국 Aza raskin(에이자 래스킨)은 무한 스크롤 대신 '정지 신호'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인간 중심적인 디자인', '윤리적인 디자인'을 위한 Center for Humane Technology를 설립하기도 했다.
위 사례들은 '2차 효과'라는 것 말고도 다른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다크패턴 디자인(Dark Patterns Design)'이라는 것이다.
다크패턴 디자인은 사용자를 속이고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디자인이다. 사용자로 하여금 불편함, 두려움, 불안 등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사용자가 특정 작업(구독 유지, 추가 기능 구매 등)을 취하도록 강요한다.
이러한 정의를 보면, 기업이 의도적으로 사용자를 속이기 위해 만든 디자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2차 효과 사례에서 보았듯, 사용자 경험을 개선시키겠다는 선한 의도를 갖고도 다크패턴 디자인을 만들 수 있다.
혹은 눈앞의 단기적인 이익에만 집중(1차 결과)하여 장기적인 이익을 놓치는(2차 결과) 다크패턴 사례들도 있다. 저번 글에서 썼던 스포티파이의 오프보딩 프로세스가 후자에 해당하는 대표 예시이다.
첫 의도와 다르게 나타나는 2차 효과를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사실 이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어떻게 모든 원인과 결과들의 변수를 예측하고 제어할 것인가.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해서 아예 손을 놓고 있어도 된다는 건 아니다. 디자이너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고민하고 생각해봐야 한다. 이와 관련된 체크리스트가 있다.
1. 내가 지금 하는 이 선택(디자인)으로 인해 어떤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가?
2. 내가 맞을 확률은 얼마나 되는가?
3. 1차 결과에 따라올 수 있는 2차, 3차, 4차 결과는 무엇인가?
4. 부작용이 있을 경우, 후속 조치는 어떻게 취할 것인가?
5.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가능성과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
사례에서 보았듯, 2차 결과(혹은 그 이후)는 1차 효과보다 훨씬 더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기업 자체적으로도, 사용자들에게도 말이다. 그리고 불확실성이 높은 지금 세상에서는 거의 모든 변화와 행동에 대해 2차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대의 디자이너들의 역할은 다음과 같이 확장된다.
역할 1 문제 해결(1차 결과)을 위한 디자인
역할 2 해결 이후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2차 결과)도 함께 고려하여 의사결정
위의 기사는 ChatGPT를 활용해서 자기소개서를 쓰는 지원자들을 어떻게 걸러낼 건지 대비하고 있는 기업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에 대한 결과는 다음과 같이 예상해 볼 수 있다.
① 계획 AI가 작성한 자기소개서를 걸러내고, 직접 자기소개서를 쓴 지원자들을 채용하자.
② 1차 결과 AI를 활용하지 않고 직접 글을 쓴 지원자들을 뽑는다.
③ 2차 결과 ?
2차 결과에 들어갈 수 있는, 적절한 보기는?
❶ AI를 활용하지 않고도 업무를 잘할 수 있는 인재들이 모인다.
❷ AI 활용법을 전혀 고민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AI가 상용화되었을 땐, 이미 뒤처져있다.
❸ AI 기술을 사용하려고 보니, 이걸 잘 활용할 수 있는 인재가 없다.
❹ 결국, AI 기술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인재 채용을 다시 한다.
❺ ChatGPT를 활용하여 다양한 프로젝트를 한 포트폴리오를 검토하여 인재를 채용한다.
위 기사에서처럼, AI 기술을 활용한 자기소개서를 막는다면 당장은 ‘직접 쓴 자기소개서를 쓴 사람’을 골라낼 수 있는 확률을 높일 수 있다.(1차 결과) 하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나중에 진짜로 그 기술을 사용해야 할 때, 어떨 것 같은가? 아마도 점점 도태되거나, 그때가 돼서야 급하게 활용법을 고민하게 되지 않을까? (2차 결과)
지금 2차 결과, 더 나아가서 3차, 4차 결과까지 생각해 본다면, 하루빨리 새로운 기술이 가져오는 변화를 받아들이고 우리 업계에, 내 업무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는 게 훨씬 더 합리적이고 똑똑한 선택일 것이다.
새로운 기술을 마주한 현대인으로서,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디자이너로서 2차 효과를 고민해 보자.
내용 출처
https://medium.com/paloit/second-order-effect-in-product-design-and-strategy-82c7fd2c52e6
https://www.jamesstuber.com/second-order-effects/
https://fs.blog/second-order-thinking/
https://personalmba.com/second-order-effects/
https://growth.design/psychology#second-order-eff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