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디 Oct 29. 2024

비주류면 뭐 어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어딘가에 늘, 반드시 있다

언. 제. 나. 어. 디. 서. 나.

여정 자체가 보상이다


요즘의 모닝페이지는 구구절절 하소연이 유독 많다. 그 이유는 ‘일이 매끄럽게 잘 진행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매끄럽지 않은 이유는 대부분,


 시안이 잘 풀리지 않는 경우

 디자인 시안이 클라이언트에 의해 이리저리 움직이고 조합되는 경우

 수정이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경우


위 세 가지 정도로 추릴 수 있는데, 나는 최근 몇 주간 번과 번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날들을 보내야 했다. 시안이 좀처럼 잘 풀리지 않았고, 머릿속에 겨우 그린 시안이 손끝으로 잘 그려지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겨우겨우 고생해서 만든 시안들이 클라이언트의 취향대로 이리저리 찢기고, 움직이고, 조합되는 상황을 겪는 일이란. 오래도록 이 일을 해왔어도 여전히 마음이 고난스럽고 괴롭다.


… 새로운 시도를 하다 보면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는데, 결과적으로 성공하든 실패하든 배울 점이 생기기 때문에 일을 계속해나가는 데 모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성공하면 더 발전시키고 실패하면 다음에 실패하지 않도록 수정해 나가면 되니까.


계속되는 야근과 끝없는 일정 속, 고난한 날에만 빠져있을 수 없어 시간을 쪼개고 쪼개 겨우 책을 읽는 요즘. 나는 노트에 책 속의 한 문장을 받아 적으며 이렇게 메모했다.


결과만 생각해 버리면 답이 없다. 시안으로 열심히 작업했으나, 클라이언트 요구대로 이리저리 바뀌고 처음 의도와 달라진 시안이 결과물로 완성되었다는 것에만 집중하면 마음 안에는 오롯이 실패의 모습만 보이기 마련. 언. 제. 나. 어. 디. 서. 나. 배울 점은 생긴다. 탈락된 시안에 집중하지 말고, 그 과정을 집중하자. 끝내 설득해내지 못했다는 좌절감에 빠지지 말고 후회 없이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을 다했음을 기억하자. 지금은 분명, 다음을 위해 더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과정 속에 있다. 이 모든 것은 일을 계속해나가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래, 과정이 중요하지. 스티브잡스도 ‘여정 자체가 보상’이라고 했는걸. 비록 처음과 많이 달라져버린 결과물에 속상함은 생기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나는 가장 최선을 다했으니 적어도 후회는 하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때로는 마치 불변의 법칙과도 같이, 거스를 수 없는 상황은 언제든 생길 수 있다는 점. 그런 상황이 클라이언트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우선적으로는 그들을 만족시키는 것에 1차 목표를 둘 때도 종종 필요하다는 것. 유연함을 잃지 않을 것. 일을 의뢰받아 진행하는 프리랜서라면, 반드시 필요한 마인드셋이 아닐까?


이제 겨우 세 달 차에 접어들었지만, 꾸준히 노력 중인 모닝페이지. 집에서, 미팅 가기 전 밖에서.




비주류면 뭐 어때,

꾸준한 비주류가 되자


서울에 있는 학교를 겨-우 졸업했지만 알아주는 회사에 다닌 적도 없고, 여러 회사를 겨우 다니며 망하거나 월급을 안 주거나 하는 특수한 상황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내 안의 자격지심은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조금씩 커져간 그 마음은 프리랜서로 독립해 일하며 어느새 내 안에 ‘인정욕구’로 자리 잡았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곧 ‘대중적으로도 인지도 있는 디자인 일을 하고 싶다’는 희망사항이 되었다. 하지만 희망사항은 희망사항일 뿐. 나는 생업을 위한 일은 계속해나야 했기에 그 마음은 고이 접어두고 들어오는 웬만한 일을 마다하지 않고 꾸준히 작업했다. 수십, 수백 만원짜리 일은 물론, 때로는 겨우 오만 원, 십만 원짜리 일이라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위해 마다하지 않고 디자인 일을 쭉 이어오다 보니 어느덧 프리랜서 9년 차가 되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다 각자의 사정은 있는 거니까. 대기업보다 더 많은 중소기업, 그보다도 훨씬 많은 소기업, 작은 가게 등 현장에는 생각보다 디자이너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 물론 그중에는 최소한의 금액으로 최대 효과를 누리기 원하는, 상대를 존중하려 들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분명한 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자연스레,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어딘가에 늘, 반드시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어렵지만, 그 확신을 믿으며 계속해서 프리랜서 생활을 이어간다. 소위 ‘사업자를 어쩔 수 없이 내야 하는 소득 구간’에 닿을 듯 말 듯, 아직도 도달하지 않은 걸 보면, 나는 아직도 프리랜서로의 길이 멀-고, 길-다. 그래도 이제는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상대를 존중하고 내가 존중받으며 일을 지속해 나가는 방법을.

볼 때마다 웃픈, 유명한 디자이너 짤


비주류라는 생각이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SNS 속에는 한 달이면 천만 원 이상을 버는 사람들, 혼자서도 뚝딱뚝딱 멋지게 사업을 펼쳐나가는 1인 사업가들이 많이 보인다. 그야말로 ‘개인의 시대’다. 활발하고 멋진 그들을 보며 좋은 자극을 받기도 하지만, 조용하고 내성적인 나는 금세 비교하며 종종,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길 때가 많다. 나는 그들처럼 유명하지도, 엄청난 돈을 벌지도 않는 걸. ‘대중적’이라는 잣대를 기준으로 삼자면 그들이 주류일 테고, 나는 비주류일 것이다. 그렇지만, 비주류면 뭐 어때.


여전히 디자인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는 이루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는 계속해서 꾸준히 일을 하고 있고, 나름대로 장기 클라이언트들도 있으며,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이제는 그럭저럭 당장에 통장 잔고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고 있다. 당장 생업에 쫓기지는 않을 정도가 되니 모든 일 앞에 디자인으로 한번 더, 그리고 클라이언트의 마음에서 한번 더 생각해 보는 시간이 늘었다. 동종업계에 있기도 하지만, 클라이언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보고자 읽었던 책의 뒷부분을 또다시 메모했다.


상대적으로 더 나은 선택을 하나 하면 포인트를 하나 더 얻는 것이고, 그런 게 한두 개 더 쌓이면 해당 분야에서 다른 책 보다 판매가 더 많이 이루어진다. 51대 49 싸움에서 51의 위치만 반복해서 가져가면 된다. 무조건 이기는 판을 가져보겠다고 무리한다면 장기전에서 출판사도 저자도 버티기 어렵다.


예전에 썼던 책의 에필로그에도 썼던 말이지만, 나는 요즘도 49대 51에서의 1에 집중한다.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이유 또한 1에 있다고 생각한다. 1에 의해 기우는 순간에 선택을 했고, ‘하기로 했으니’ 뒤돌아보지 않고 늘 최선을 다해왔다. 그렇게 오랜 클라이언트가 주변에 남았다. 여전히 내게 일을 의뢰하는 클라이언트를 생각할 때마다 늘 감사함을 느낀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어딘가에 늘, 반드시 있다’는 문장의 힘을 믿는 이유다. 


그래, 비주류면 뭐 어때.
꾸준한 비주류가 되자.





언급한 에필로그는,

「언제 가도 좋을 여행, 유럽」


발췌한 문장의 책은,

「퍼블리싱 마케팅 트렌드」

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