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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살에 집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내 이름으로 대부업 대출을 받는 것도 모르고 그저 하라니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던 내가. 대출을 대출로 갚겠다는 이상한 논리를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던, 그때의 멍청했던 내가.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는 게 가족인 줄만 알았던 내게는 꽤 큰 결심이었다. 나는 함께 헤쳐나가길 바랐는데, 내가 아닌 이들은 그저 ‘나 혼자’ 감당하길 바랐던 것 같다.
모든 것으로부터의 독립은 모든 것으로부터의 시작과 다름없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고시원에 갔다. 침대 바로 위 빨래 건조줄이 연결되어 있는, 누우면 걸려있는 옷가지들이 바로 위에 보이는 그런 구조. 겨우 손바닥 만 한 크기의 창문일지언정, 약 3-4만 원을 더 내고서라도 창문이 있는 방으로 옮겨야 겨우 숨통이 트일 것 같은 크기였다. (실제로 중간에 돈을 더 내고 창문이 있는 방으로 옮겼다. 그때 느꼈던 쾌적함(?)이란!)
모든 것으로부터 피하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성인이 되고 처음 만들었던 휴대폰 번호도 그때 처음 바꿨다. 겨우 자리 잡아가려던 안정적인 회사도 그만두고 새로운 곳으로 이직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때 가족이 회사에 찾아오기라도 하면 어쩌지 싶은 마음이었다.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new] 버튼을 누르듯,
가족으로부터의 독립과 함께 내 인생에도 새 도큐먼트가 열렸다.
본문 디자인을 위해 새 파일을 열면, 본격적인 디자인을 하기 전(?) 작업 환경을 위한 세팅을 먼저 한다. 일단 판형과 여백의 크기를 지정하고, 마스터페이지를 만들고, 기준선 격자를 지정하고… 인생 도큐먼트를 새로 연 내게도 이 프로세스는 동일하게 적용된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존을 위한 세팅 이전에 먼저 해야 했던 일은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내게 닥친 현실을 똑바로 파악하는 것.
당장 대략 7천만 원 정도의 금액이 ‘빚’이라는 이름으로 내 앞을 막고 있었다. 한 학기를 제외하고는 모든 학기마다 생활비까지 더해 풀로 받았던 학자금, 제2금융권에 심지어 미납된 가족 의료보험까지 생각보다 꽤 큰 금액이었다. 그걸 여태 모르고 있었다는 게 한심했다. 내 이름으로 대출만 받으면 알아서 한다길래 철석같이 믿었던 순수했던 날들. 월급통장에서 압류가 걸렸던 의료보험비를 먼저 해결하고, 그다음으로 금리가 40%에 달하는 제2금융권 대출금을 해결해 나갔다. 4천만 원에 달하는 학자금 대출은 서른 중반이 될 때까지 갚았다.
빚을 갚는 일만큼이나 오래 걸린 건 그 시절을, 그 시절의 나를 이해하는 일이었다. 스스로 한 선택임에도 나를 의심하고 자책하다 아예 외면해 버리기 일쑤였다. 외면에서 더 나아가 상자에 담아두고 꽁꽁 숨겨 아예 기억에서 없애버리고 살다가 다시금 꺼내 살펴보는 시간들은 꽤 아팠지만 한편으론 좋았다. ‘그때 그 선택이 옳았을까’ 하는 생각에 답을 잘 못 내렸는데, 이제는 그때 그 선택이 최선이었다고 스스로 고백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 그래서 인생에 있어서 큰, 또 다른 도큐먼트를 열 수 있게 된 것 아닐까? 오랜 프리랜서 생활 대신 사업자를 내고 나를 드러내는 일. 그 시도의 시작은 글쓰기였다.
하루를 모닝페이지로 시작한 지도 일 년 반 이상 지났다. 줄리아 캐머런의 『아티스트 웨이』에서 처음 알게 된 ‘모닝페이지’는 창조성을 깨우기 위한 매일 아침의 글쓰기 루틴이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새 도큐먼트를 열듯, 나는 매일 아침마다 노트를 펼쳐 빈페이지를 채워나간다. 처음에는 도대체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몰라서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문장을 몇 번씩 쓴 적도 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바로 앉아서 써 내려간다는 행위가 얼마나 날 것 그대로인지 글에 그대로 드러났다.
창조성이 깨어나는 일은 내게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아침이면 마치 뇌에서 창조의 문이 열리며 빛이 새어 나올 것 같은 장면을 상상해 봤지만, 딱히 그런 일이 일어나진 않았다. 그래도 그냥 썼다. 주절주절 썼던 문장을 그대로 두 번씩 쓰기도 하고, 각종 신체의 불편함을 하나하나 써 내려가기도 하고. (아침에 일어났더니 허리가 아프다 등) 초반에는 그리 오랜 시간 손글씨를 쓸 일도 없다 보니 펜을 쥔 손이 그렇게 아프더라.
그즈음 나는 혼자 카페라테 만들기에 도전하고 있었다. 에어로치노에 우유를 넣어 겨우 거품을 내 에스프레소와 같이 담아내는 수준이었던 내가 에스프레소 머신 옆에 달려있는 스팀기에 막 적응하던 시기였다. 뭐든 매일 해야 느는 법. 둘 다 어정쩡한 상태인 라테 만들기와 모닝페이지 쓰기를 아침에 같이 하기 시작했다.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고 물 한잔을 마신다.
거의 고양이 세수만 하고,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낸다.
커피 머신 앞으로 가 '오늘의 라테'를 만든다.
(라테 아트의 성공을 기원하며)
그렇게 완성된 라테를 들고 테이블 앞에 앉아, 노트를 펼친다.
모닝페이지를 쓰는 시간이다.
매일의 루틴을 따르는 일은 때로는 지루하다. 변함없이 똑같은 시간, 똑같은 행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게 아주 가끔은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모닝페이지도 그저 루틴의 하나로 자리 잡은 행위라고 생각해 별수롭지 않게 여겼다. 특별히 변한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 행위는 단순한 글쓰기의 반복이 아니라 내게 있어 일종의 마인드셋이었다.
라테 한 잔을 만들고 노트를 펴는 그 짧은 순간들의 반복이 내 삶의 균형을 촘촘하게 잡아주고 있었다. 뭐든 완벽하게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위로하는 마음. 영영 꺼내보고 싶지 않았던 과거의 모습을 스스로 꺼내 격려하고 위로해 주는 마음. 매일 반복했던 이 작고 단순한 루틴으로부터 생긴 마음이었다.
때로 엉망인 라테아트를 만들어도 “에잇! 내일은 잘해봐야지!” 하고 쿨하게 넘길 수 있는 건 내일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오늘 커피를 망쳤다고 내일 만들지 않을 이유는 없으니까. 내일의 나는 또다시 커피를 만들고, 노트를 펼쳐 떠오르는 생각을 마구 적어 내려갈 것이다.
창조성은 거창한 아이디어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나를 들여다보는 이 반복된 시간 속에서 천천히 깨어난다. 매일의 새 도큐먼트를 열며 나는 조금씩 나를 이해한다. 그 이해가 또 다른 삶의 도큐먼트를 열게 한다. 그 중심에는 나답게 살기 위한 과정의 시간이 있다. 내가 나로 설 수 있는 용기를 내는 것이 창조성의 시작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