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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May 12. 2019

오르지 못해도 괜찮아

델프트 구교회와 신교회


  이번 델프트 여행을 준비하며 가장 고대했던 것은 신교회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델프트의 풍경이었다. 날씨 좋은 날 이 전망대에 오르면 델프트 바로 옆 동네인 로테르담과 헤이그까지도 보일 만큼 멋지고 드넓은 풍경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여행을 하기 전, 그러니까 사전에 그 여행지에 대한 많은 공부를 하고 여행을 했더라면 그 지역에 대해 와 닿는 게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그럴 여유도 없었거니와, 여행에서 꼭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기보다는 그냥 내 기준대로 내 방식대로 그 지역을 그냥 여행하고 싶었다. 해외여행도 거의 처음이나 다름없는 내겐, 이 먼 곳을 온 것만으로도 큰 성과인 셈이니까. 


  어느 지역을 여행하더라도 그 지역의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대부분 그 지역의 포인트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높은 곳에 올라가 드넓은 풍경을 시선 아래에 놓고 보고 있으면, 마치 2D로만 접했던 지도 속 명소들이 3D가 되어 한눈에 보이는 점이 내게는 꽤나 매력적이었다. 우리는 날이 조금 흐리긴 했지만 그래도 별문제는 없을 거란 기대감에 잔뜩 부푼 채, 조금 전 결혼식 장면을 보았던 시청사 맞은편에 있는 신교회로 향했다. 


The tower is closed.


  하지만 교회 입구에서 우리가 마주한 건 다름 아닌 올라갈 수 없다는 문구가 적힌 게시판이었다. 바람이 많이 불거나 흐린 날씨에는 안전상의 이유로 전망대를 폐쇄한다고 했다. 날씨 탓을 누구에게 돌리겠냐만, 이렇게 기회가 날아갔다는 생각에 허무했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교회 내부만 둘러보기로 했다. 흐린 날씨여서 그런지 어둡고 웅장한 교회 안이 더 쓸쓸해 보였다. 좀처럼 가시지 않는 아쉬움에 구경하는 것에 점점 흥미를 잃어갈 때쯤, 나와는 너무 다르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교회 안 곳곳을 구경하는 다른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다.



  ‘저 사람들도 분명 오늘 전망대에 올라가지 못해 아쉬움이 크겠지?’


  생각해보니 전망대에 오르지 못한 건 나만 서운한 일이 아니었다. 함께 온 동행인과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사람도, 자신만의 시선으로 조용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사람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아쉬움을 달래며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이곳에 남아 곳곳을 둘러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계획을 잘 세워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인데 여행은 오죽할까. 원했던 풍경을 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쉽고 서운한 감정에 휩싸여 지금의 상황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을 반성했다. 



지금 오르지 못해도 괜찮아.
비록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덕분에 다음에 또 올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니까.



  우리는 델프트를 떠나기 전, 신교회에 이어 마지막으로 구교회를 찾아갔다. 델프트 역에 내려서 시내 중심가를 향해 걸어가는 길목 저 멀리에 가장 먼저 보였던 건물이다. 기울어진 채로 우뚝 솟아있는 모습은 멀리서 바라봐도 단연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어둡고 웅장한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졌던 신교회 내부와는 달리, 구교회 내부는 상대적으로 밝고 환했다. 형형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가 하얀 벽에 대조되어 더욱 화려하게 보였다.



  기울어진 건물이라서 ‘델프트의 피사의 사탑’이라고도 불린다는 것 외엔 별다른 정보가 없었던 나는 한쪽에 놓인 교회 소개 브로슈어를 챙겼다. 브로슈어에 적힌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곳은 요하네스 베르메르가 잠들어 있는 곳이라는 것, 그리고 교회 탑은 오래전부터 지반 침하로 인해 조금씩 기울어졌지만, 계속된 보수공사로 지금은 다행히도 2미터 정도만 기울어진 채 멈춰있는 안전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당시 델프트에 살고 있던 시민들은 점점 기울어져 가는 교회 탑을 보며 언제 붕괴할지 모를 두려움에 떨며 매일을 살아야 했다. 그러나 붕괴를 우려해 탑을 무너뜨리려 했던 시의 계획에는 거세게 반대했다. 탑이 무너져 자신들을 위협할지도 모를 상황이었음에도 늘 곁에 있었던 건축물을 지키고자 했던 마음. 그 마음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아름다운 델프트가 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문득, 눈앞에 놓인 순간의 두려움보다 조금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는 그들의 넓은 마음을 닮고 싶어 졌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느끼고

다음을 기약한 다음,

그 다음 기회가 왔을 때

이전을 떠올리며 천천히 다시금

느끼고 배우고 경험하는 것.


어쩌면 저의 여행방식은

효율적이진 않은 것 같습니다.

여행을 수없이 다녀온 다음에는

좀 더 효율적인 여행이 될까요?



온라인으로 다 담지 못하는 글과 디자인은

책으로도 만나주세요 :)

이번 편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언제 가도 좋을 여행,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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