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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May 19. 2019

없으면 없는 대로 즐기는 여행

‘여행하는 삶’이라는 말.

  우리는 다시 기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 암스테르담 중앙역에 도착했다. 처음 도착했던 날에 비하면 조금 나은 편이었지만 여전히 중앙역은 정신이 없었다. 역을 겨우 빠져나와 곧장 암스테르담 시내에 박물관이 몰려있는 ‘박물관 지구’로 향했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앞에 놓인 유명한 ‘I amsterdam’ 조형물은 이미 사람들에 둘러싸여 잘 보이지 않았다. 사진으로 많이 접했던 곳에 사람들이 가득 있으니,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유명 관광지의 이상과 현실’이라는 제목의 글이 생각났다. 유명한 관광지를 여행할 때 꿈꾸는 ‘이상적인 풍경’과 실제 여행지에서 겪는 ‘현실적인 풍경’을 서로 사진으로 대조해가며 비교해놓은 글이었다. 


  예를 들면, 누구나 파리의 에펠탑 앞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도시락을 꺼내 먹으며 여유롭게 에펠탑을 바라보는 이상적인 풍경을 꿈꾸지만, 실제로는 전부 그런 사람들로 빼곡히 채워진 잔디밭에 겨우 다리를 모으고 앉아 에펠탑은커녕 옆 사람의 눈치를 봐야 하는 여행의 현실, 뭐 그런 것이다. 내가 본 사진에 이곳은 없었지만, 적어도 그에 못지않은 비교 샷이 되기에 충분했다.


유명 관광지의 이상과 현실(사진 출처 : 구글)

  


  “도대체 저긴 어떻게 올라간 거지?” 


  계단이 있는 것도 아닌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그 거대한 알파벳 위에 잘도 올라가 잔뜩 신난 표정으로 연신 포즈를 취해가며 인증샷을 남기고 있었다. 역동적으로 사진을 찍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치 내가 올라가 있는 것처럼 아찔했다. 


지금은 철거되어 이 자리에 없을, I amsterdam


  조형물 앞으로 드넓게 펼쳐진 잔디밭에서도 어떤 이들은 셀카를, 어떤 이들은 삼각대까지 펼쳐놓으며 적극적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우리도 저들처럼 셀카 행렬에 동참하고 싶었다. 


  남편과 나, 둘 다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데

  겨우 휴대폰 셀카로 만족할 순 없지.

  기왕 찍는 거 화질 좋은 카메라로 남기고 싶었다.


  잔디밭에 앉아 가방을 삼각대 삼아 뷰파인더 속 구도를 맞췄다. 평소대로라면 이 많은 사람의 시선을 일일이 신경 쓰느라(실제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굉장히 어색해할 텐데, 이상하게 이 순간만큼은 주변 사람들 시선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카메라를 타이머로 맞춰놓고 제시간에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겠다고 연신 숨 가쁘게 뛰어와선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카메라를 바라보는 남편의 모습이 너무 웃겨서 사진을 찍는 내내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여행지에서 가장 크게 웃고 신났던 순간이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상황에 맞는 방법은
언제나 어떻게든 생기게 마련이니까.


  삼각대도, 카메라 리모컨도 없었지만 우리는 그 순간을 있는 그대로 마음껏 즐겼다.

 



  활발하고 적극적인 사람의 여행 스타일에 비해 우리의 여행 스타일은 다소 조용하고 소극적인 편이다. 그래서 우리의 여행이 누군가의 감정선에 어떤 작은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남들에 비해 잘 먹고 다니는 여행도(맛집 투어 따위 없는 여행), 다양한 곳을 많이 다니는 여행도(효율적이지 못한 여행) 아니었으니까. 실제로 누군가는 우리의 여행이 너무 잔잔하다 못해 지루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은연중에 하기도 했다. 


  하지만 각자 살아온 인생이 다 다른데 여행하는 방법이라고 모두 같을 수 있을까? 만약 여행하는 방법에 정답이 꼭 있어야 한다면 오히려 ‘각자의 방식대로 풀어나가는 여행’이라는 말이 정답에 가까울지 모르겠다. 부족한 만큼 다음에 채울 수 있는 여지는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다른 여행자들에 비해 덜 먹고 덜 다녔을지언정 이것 또한 하나의 여행을 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면… 나의 여행도 누군가에게는,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조금이나마 작은 '울림'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정도는 가져도 괜찮지 않을까?


  여행하며 마음에 품게 된 ‘여행하는 삶’이라는 말. 사실 마음에 품긴 했지만 무언가 막연하게만 느껴질 뿐이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여행하는 삶이라는 말은 어쩌면 ‘여행을 통해 삶을 살아간다’는 말인 것 같다.








'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의 줄임말이

'여행'이라는 누군가의 말을 참 좋아합니다.

어쩌면 지금의 행복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자꾸만 여행을 갈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없으면 없는 대로- 그 상황 속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여행에 대한 마음가짐.

삶 속에서도 늘 그러했으면  좋겠습니다.


이곳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는

책으로 만나주세요. 고맙습니다 :)




언제 가도 좋을 여행,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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