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프트의 예쁜 브런치 카페, Kek
델프트의 예쁜 브런치 카페, Kek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 델프트에 도착했다. 화창한 날씨를 기대했지만 우리가 도착하기 직전에 비가 그쳤는지 길은 온통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하지만 비 온 뒤의 모든 풍경은 명도와 채도가 높아져 더욱 선명했다. 바닥은 젖어있고, 약간은 흐리지만.. 아무렴. 비가 쏟아 내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사실은 감사했다.
델프트의 첫인상은 어딘지 모를 '아기자기함'. 비가 내린 직후라 그런 걸 지도 모르지만, 암스테르담에 비하면 인적이 드물어 평화로운 느낌이었다. 암스테르담의 축소판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다. 네덜란드의 한 '도시'보다는 왠지 '마을'이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릴 것만 같았다. 점심식사를 하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브런치를 먹을 생각으로 미리 온라인으로 검색해놓았던 카페를 찾아갔다.
좁고 긴 복도 형태의 내부, 간격이 좁은 테이블이 놓여 있는 카페 안은 이미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마침 한 자리가 있었다. 우리는 손님들로 가득 채워진 테이블 사이에 겨우 하나 남은 2인석 테이블에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실 미리 찾아둔 곳이 여기뿐이었는데 다행이었다. 변수에 대처해야 할 상황이 오지 않아서. 안도하며 테이블 위에 놓인 메뉴판을 살폈다. 하지만 온통 네덜란드어로 적혀있는, 게다가 사진 하나 없는 메뉴판이었다.
사진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커피 메뉴들은 어떻게든 유추해서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지만, 다른 메뉴들은 읽을 수조차 없었다. 자리가 없을 경우에 생기는 변수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었는데, 예기치 못한 곳에서 변수가 생겨버렸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카운터에 있는 직원에게 영어 메뉴판이 따로 있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No”. 대신 영어가 가능한 직원이 있으니 그를 불러주겠다며 다른 쪽에서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던 남자 직원을 불렀다.
정리를 마치고 우리에게 온 남자 직원은 우리에게 메뉴판에 있는 모든 메뉴(A4용지 두장 짜리)를 영어로 하나씩 차근차근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는 우리에게 각 메뉴에 들어간 주재료는 어떤 것들인지, 차가운 샌드위치인지, 뜨거운 샌드위치인지를 상세히 알려주었다. 이렇게나 친절히 설명해주는데 겨우 반만 알아들은 게 미안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영어 듣기 평가의 핵심은 포인트 단어만 기억하는 것. 우리는 ‘Special 샌드위치’와 ‘Hot 샌드위치’ 그리고 커피와 스파클링 주스를 각각 주문했다.
마음은 언제나 평화롭고 여유로운 느긋한 여행을 하고 싶다. 하지만 언어의 두려움, 예기치 못할 상황에 대한 온갖 걱정이 많은 나에게는 늘 쉽지 않은 일이다. 어쨌든 여행은 왔고 그래도 여행 중 유일하게 느긋해질 수 있는 순간은 바로 카페나 식당에 앉아 주문한 것을 기다리는 시간!
예상치 못했던 듣기 평가를 무사히 마치고 나니 그제야 가게 안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복잡하지만 왠지 정겨운 카페의 모습. 우리가 앉은 테이블 양옆의 테이블은 같이 온 일행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매우 좁은 간격을 두고 있었지만 양 옆에 앉은 사람들은 각자 마주 보고 앉은 상대방과의 대화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만약 이곳에 영어 메뉴판이 따로 있었더라면 '나같이 네덜란드어를 모르는 외국인 손님이 와도 직원이 수고스럽게 메뉴를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 오히려 더 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테이블 간 좁은 간격, 그리고 북적이는 손님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번거롭긴 하더라도 메뉴를 하나씩 설명해주는 직원과 그 직원의 말에 귀 기울여 듣는 손님의 모습이 이곳 분위기에 더 어울리겠다 싶었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느꼈던 아기자기한 느낌이란 모국어 외에도 국제 공용어인 영어 메뉴판까지 당연히 구비하고 있는 세련된 모습이 아닌, 정겹고 친근한 느낌? 마치 처음 보는 이곳 사람들이 '메뉴판을 못 읽어도 괜찮아요. 저희가 이해하기 쉽게 하나씩 설명해줄게요'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먼저 나온 음료를 마시고 있으니 우리도 제법 이 풍경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 같아 마음이 평온해졌다. 우리는 잠시나마 델프트의 한 풍경이 되었다.
한창 분위기에 빠져있을 즈음, 샌드위치가 나왔다. 사실 거의 그냥 찍어서 골랐다고 해도 무방할 메뉴였지만 주문은 성공적이었다. 잘 잘린 호밀빵 위로 리코타 치즈, 채소와 베이컨, 얇은 햄 위로 소스가 뿌려져 있는 Special 샌드위치, 그리고 따뜻한 토마토소스와 함께 햄과 채소, 치즈를 골고루 넣어 바삭하게 구워 나온 Hot 샌드위치였다.
아, 브런치를 먹어본 게 얼마 만이더라...
이렇게 느긋하게 앉아 브런치를 먹으니 왜 한국에선 이런 여유를 누리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우리도 이제 제법 여행에서 여유를 누릴 줄 아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했다.
적당한 사람들, 적당한 카페, 걷기 좋은 거리,
걸어 다니며 느꼈던 곳곳의 아기자기한 풍경들,
사랑스러움이 소소하게 드러나는 마을.
'도시'보단 '마을'이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리는 곳.
화내는 사람도 없을 것 같은 델프트,
반나절뿐인 여행이었지만
이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유난히 부러웠어요.
델프트 곳곳에서 느낀 또 다른 정취는
책으로도 만나주세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언제 가도 좋을 여행,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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