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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Nov 17. 2019

로또 맞을 만큼의 기막힌 타이밍은 아니지만

작년 10월, 아버님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다. 정말 갑자기. 새벽에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달려갔는데도 이미 아버님의 손은 차가웠다. 차도 없이, 먼 거리에 살고 있다는 그 자체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죄송함과 자책감에 갑자기 혼자가 되어버리신 어머님을, 조심스럽지만 우리가 모시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지만 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 상을 다 치르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집을 팔기로 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매매로 들어왔지만 애정을 많이 쏟았던, 작은 빌라 우리 집.


가을이 지나고 집을 보러 오는 사람 하나 없이, 2019년이 왔다. 겨울이라 그런지 여전히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우리는 괜히 초조했다. 지금 어머님이 살고 계신 집 전세 만기가 다가오는데... 정 팔리지 않으면 이 집에서 같이 사는 방법도 고려해보자며 심각하게 논의했다.


하지만 집이 정말 너무 작은데 어쩌지. 게다가 나는 집에서 일을 해야 하는데 괜찮을까? 갑자기 고민이 깊어졌다. 이런 나의 고민에 역시나 주변 지인들 10명 중 9명은 대부분 뜯어말렸다. 이유는 말 안 해도 짐작이 가리라.


어머님 댁 전세 계약 만기일을 앞둔 어느 날, 어머님은 먼저 우리에게 살던 집을 재계약하겠다고 하셨다. 그 말 뒤로는 괜히 같이 살면 서로 불편할 테고,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은 사실 너무 ‘멀어서 싫다고’ 하셨다. 아니면 차라리 우리 집 근처로 오면 적어도 반지하는 아닌, 더 깨끗하고 넓은 지상 집에서 살 수 있으니 이 근처로 이사를 하면 어떠냐고도 해봤지만 유지 부동이셨다.


앞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나도 짐작했던 부분이나, 뒷부분은 사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님은 반평생 이상을 한 동네에서 살아오신 분이었다.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지역이 전부 다른 나로서는 의아했지만 어쩌면 그게 당연한 거였다. 집은 단순히 집 자체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살지만 적어도 한 곳에 오래 머물렀다면, 공간의 개념을 벗어나 그로 인한 생활 전체를 다 아울러야 하는 거니까. 어머님에겐 그 동네가 어머님의 삶이었다.




결국 어머님 뜻대로 어머님은 사시던 집의 전세계약을 더 연장했다. 이렇게 되어버리니 괜히 마음이 붕 떠버렸다. 내놓은 집을 다시 철회할까? 애초에 어머님을 모시고 살 생각을 하고 집을 내놓은 거였는데, 정작 그 이유가 사라져 버렸으니 말이다.


열 발자국 안에 거실에서 모든 방들을 다닐 수 있을 만큼 굉장히 작은 집이었지만, 우리에겐 그 집이 너무 소중했다. 70%의 대출이 아닌 나머지 30%에 해당하는 몇천만 원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생애최초 주택자금 대출까지 받아가며 이사 온 집. 동네에 도서관이 생기고 새로운 지하철 노선이 생기는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90% 이상 다 대출이었던 대출금도 열심히 다 갚아나갔다. 들어올 땐 빚뿐이었는데, 그래도 이젠 우리에게 약간의 자본금이 있다고 생각하니 엄청 뿌듯했다. (물론 이건 다 집이 팔려야 가능한 이야기)


우리는 상의 끝에 기왕 집을 내놓은 거 올해까지만 두고 보기로 했다. 올해 안에 집이 나가면 새로운 터전을 알아보자고. 만약 그렇지 않으면 지금껏 그래 왔듯이 이곳에 좀 더 오래 정을 붙이고 살아보자며 말이다. 하지만 집을 부동산에 내놓아본 사람이라면 아마 다들 공감할 거다. 집은 부동산에 내놓는다고 바로 팔리는 것이 아니다. 또 집이 팔릴 듯 팔리지 않는 게 사람을 얼마나 정신적으로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인지. 길고 길었던 겨울이 지나 아주 느지막이 봄이 찾아왔다. 계절의 속도처럼,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하나둘씩 천천히 찾아왔다. 덕분에 나는 매번 집을 깨끗이 청소하느라 엄청나게 부지런해졌다. 


아예 사람이 안 오면 여기서 살 운명인가 보다 하고 그냥 살았을 텐데, 지쳐 포기할 때쯤 사람들이 찾아왔다. 가을철을 앞둔 8월, 평일은 물론이고 매주 주말마다 사람들이 집을 보러 왔다. 여전히 돌아가면 소식이 없었다. 매주 오는 사람들마다 집이 참 깨끗하다며 칭찬을 늘어놓아도 돌아가면 통 소식이 없으니 아주 환장할 노릇이었다. 온 신경이 집에만 쓰였다.



집이 팔릴 거라는 믿음이 필요했다.

그런 느낌이 든 순간부터 우리는 이사 갈 집을 알아봤다. 지금보다는 조금 더 넓은 곳으로. 창문 밖 풍경이 멀리 내다보이는 곳으로. 8월 한 달 동안 열 팀이 넘는 사람들이 다녀갔고, 결국 가장 마지막 날에 찾아온 사람이 우리의 다음 집주인이 되었다. 드디어 팔았다. 그리고 우리는 놀랍게도, ‘이제 이사를 어디로 가지?’라는 고민을 할 틈도 없이 기적처럼 9월에 곧바로 새 보금자리를 얻었다. 


앞서 말했던, 지금보다는 조금 더 넓은 곳으로. 창문 밖 풍경이 멀리 내다보이는 곳으로.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말을 늘 몸소 체험한다.

인생에 있어 로또 맞을 만큼의 기막힌 타이밍 만이 타이밍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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