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5년 차, 다 그렇게 먹고사는 거지 뭐.
지난 여행 후 어느 날엔가 올렸던 사진이 30,000회나 조회되었다며 구글맵에서 메일이 날아왔다. 어제는 항공권 환불 처리가 완료되었다는 메일이 날아오더니만.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2년 내내 나의 여행 예정지였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이번 가을에 다시 찾아갈 수 있을 줄만 알았는데 결국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암스테르담 감자튀김’을 검색하면 인터넷에도, 여행 정보 책에도 많이 나왔던 그 집 말고, 그 시절 네덜란드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친구가 진짜 맛집이라고 콕 집어 추천해줬던 자그마한 감자튀김 가게. 버벅거리며 주문하는 나에게 친절했던 사장님 미소가 불현듯 스친다. 감자튀김 진짜 맛있었는데.
정신없이 쏟아지는 일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잠시 잊고 있던 나의 여행책을 다시금 들춰본다. 2016년 가을에 다녀온 고작 열흘간의 여행을 기억하고 쓰고 다듬으며 2019년 2월에 기어코 책으로 만들어냈다. 서툴고 어설펐던 그때의 나와, 그 여행기를 감히 책으로 엮어낸 이후 지금의 나를 겹쳐본다. 그래도 제법, 잘한 거겠지? 새록새록, 술렁술렁. 이리저리 책을 들춰보다가.
그저 꼬박꼬박 내야 할 이자와 공과금을 비롯한 생활비 등을 벌기 위해 일을 한다. 집 대출금도 아직 한참이고, 가진 돈도 거의 없다.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도 인디자인 켜고 모니터 앞에 죽치고 앉아있지 않으려면, 지금 열심히 벌어야 한다. 철저히 생계형. 내야 할 이자 따위 없거나, 가만히 있어도 돈이 들어오는 몇몇 소수를 제외하면 아마 대부분 다 그렇지 않을까? 그런데 이상하게 내가 하는 일, 그러니까 ‘디자이너’라는 직업군 앞에 ‘생계형’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괜히 뭔가 구질구질한 느낌이 든단 말이지.
디자이너라고 하면 왠지 무에서 유를 창조해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아야만 할 것 같고, 매일 떠오르는 영감을 끄적인다거나, 온갖 트렌드는 다 꿰고 있어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 일상에서 쓰는 온갖 제품에서부터 입는 옷, 먹는 음식까지 왠지 남들이 보기에도 그럴싸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느낌 때문인지 프리랜서를 시작하고도 나는 늘 자신이 없었다. ‘그래, 뭐라도 해보자!’며 책을 만들기 전까진.
프리랜서를 시작하며 스스로 능력치를 테스트해보기 위해(?) 책을 만들고 보니, 이제는 어느덧 5년 차 프리랜서다. ‘3년만 버텨보자!’하고 시작했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주 조금은 내가 대견스럽다. 눈에 띌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그래도 아주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가긴 한 것 같아서. 물론 언제 보릿고개가 올지 절대 예측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말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는, 그런 대단한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분명 나는 어딘가에서 ‘디자이너’로 불린다. 때로는 선생님, 때로는 실장님으로. 세상에서 내가 주인공일 순 없지만, 적어도 내 인생에선 내가 주인공이니까. 나를 필요로 하는 클라이언트가 있고, 그들이 계속해서 나를 찾아주는 덕분에 나는 보람차게 일을 하고 나의 생계를 유지한다. 한편으로는 하고 있는 일이 즐겁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모른다.
아침에 선선했던 바람에 9월이구나 싶다가도 그래도 아직 후덥지근한 여름 태양 때문에 오늘 오후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함께다. 100일동안 글을 써보기로 한 첫날이기도 한 오늘. 아주 약간의 변화도 꽤나 그럴듯해 보이는, 별거 없는 일상이지만. 그래, 생계형 디자이너가 뭐 어때서. 다 그렇게 먹고사는 거지 뭐. 오늘도 쿨하게 받아들이며, 디자인 수정 작업이나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