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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은 Sep 16. 2020

말로 하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프리랜서 디자이너 생존법(1)


어제 올렸던 글 누적 조회수가 4,000을 넘었다. 100일 글쓰기를 시작하고 처음 나온 숫자. 아무것도 아닌 내 글을 4,000명이 넘게 보았다고 생각하니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무섭다. 조회수와 라이킷이 그리 비례하지 않는 걸 보면 다들 기대치에 못 미쳤나 보다. 


그래도 [브런치가 추천하는 글]로 잠시나마 선정되었으니, 기념으로 찰칵.


 



나는 사실 말보다 글이 훨씬 더 편하다. 엘리베이터를 타도 제일 구석에 서 있는 사람, 여러 사람이 모여 대화하는 자리를 어려워하는 사람. 전형적인 내향적인 사람이다. 아무리 내향적이어도 회사 생활엔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다행히 직업 자체도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하는 직업이 아니라 혼자서 진득하니 컴퓨터 앞에 앉아서 제 할 일 하면 그만인 직업인 게 어찌나 다행이었는지.

그런데 프리랜서가 되고 나니 상황이 달라졌다. 회사에 소속되어 있을 땐 전혀 하지 않았던 일들. 내가 미팅을 하기를 해, 거래처에 견적서를 요청하기를 해, 하긴 뭘 해! 그저 회사에서 하나의 톱니바퀴만 열심히 돌리면 그만이었는데, 프리랜서는 그걸 다 혼자서 해내야 했다.

프리랜서여서, 혼자 일해서 편하고 좋은 점도 있지만 의외로 나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전화로 말하기’. ‘직접 만나서 회의하기(미팅)’보다 10배 정도는 더 어려웠다. 말로 하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지금도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초창기에 내가 클라이언트와 소통하는 데 선호하는 방식은 ‘메일(문자) > 미팅 > 전화’ 순이었다.

내 기준에 이 세 가지 방식이 무슨 차이냐면,


메일 : 첫인사와 본론, 마무리 인사까지 최대한 정중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메일을 쓰면 불필요한 말을 주고받지 않으니 간결해서 좋다. 게다가 정리된 메일이 남아있으니 기억하기에도 좋다. 종종 상대방은 그렇지 않지만.

미팅 : 사전에 연락을 취한 후 만나러 가는 자리이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상대방 역시 호의적으로 나온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서로 인사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이런 사소함이 긴장감을 풀어준다. 게다가 첫 만남 시 명함을 주고받게 되면 내가 좀 더 존중받는 기분이 든다.

전화 :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실시간 채팅하는 격인데, 뭔가 3초 안에 생각하고 바로 답해야 하는 느낌? 예전에 어느 예능에서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들고 이어 말하기 게임을 하는 것 같다. 상대방의 질문에 지체할 수 없고, 조금이라도 늦으면 폭탄이 뻥! 하고 터질 것만 같다.


대략 이런 뉘앙스. 그래서 나는 미팅보다 전화가 훨씬 더 어렵다. 하지만 역시 어렵다 어렵다 계속 생각하면 정말로 그건 영원히 어려운 일이 되는 법. 이런 내가 결정적으로 생각을 고쳐먹게 된 건 생각보다 가까운 데에서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게 뭐 있나, 우리 남편을 보니 알 수 있었다.

무언가를 물어보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면, 말로 하는 게 편하다며 전화하는 남편. 세대 차이라고 해야 하나, 성격 차이라고 해야 하나.. 싶지만. 나와 남편의 출생 연도는 앞자리가 서로 다른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언제나(?) 을의 입장인 나와 달리, 남편은 나 같은 을들을 관리하고 아래 직원들을 관리해야 하는 사람이다. 남편의 위치가 곧 내가 마주하는 클라이언트의 모습인 것!!!




내가 클라이언트라면




입장 바꿔 생각해보기. 이렇게 딱 한 번만 더 생각해보기로 했다. 되게 단순한 방법을 이제야 알아채다니. ‘말로 하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하는 생각에 한 가지 생각을 더했더니 마음가짐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대면 미팅은 특히나 어려우니, 자료를 주고받거나 정리된 피드백 이외에 가장 정확하고 확실한 전달 방법 중 하나가 전화라는 사실. 간단한 질문조차 시간을 들여 메일을 쓰던 내가 직접 전화를 하는 일이 잦아졌다. 덕분에 메일 한 번 쓰는데 고심해서 쓰느라 할애했던 시간을 벌게 되었다. 메일로 온 애매한 피드백에 전화를 해서 질문하는 일이 생겼다. 클라이언트의 전화에 당황하지 않게 되었다.

내 손에 들려있던 폭탄이, 어느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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