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 그 사이에서 중심 잡기
‘좋은 기분’은 상호작용이며, 그런 기분을 만드는 일은
각자의 스타일로 마음껏 발현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이자 작가인 박정수 작가(녹싸)의 <좋은 기분>이라는 책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연초에 서점에 오갈 때마다 매대에 놓인 걸 봤을 때는 그냥 단순히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를 위한 글 모음집일 거라 생각해 자세히 훑어보지 않았던 책. 뒤늦게 읽었지만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태도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새삼 고맙게 느껴지는 책이다.
함께 일할 동료를 찾기 위해 만든 가이드북에서 시작했다는 이 책에서는 무엇보다 ‘접객’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말 그대로 손님 접대. 가게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당연한 단어. 가게로 한 명 한 명 들어오는 손님을 접대하는 일. 읽는 내내 프리랜서 디자이너도 이와 같은 위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유독 많이 들었다. 프리랜서도 결국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고 일을 대하는 사람이라면…. 프리랜서 디자이너로서 클라이언트를 대할 때 늘 다짐해야 하는 태도와 닮았다. 결국 프리랜서 디자이너도, ‘무형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자 서비스직 종사자와 다름없는 셈이니까 말이다.
10년을 프리랜서 디자이너 생활을 지속해 온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된다. 클라이언트와 오랜 관계를 이어오면서 마음이 꽁꽁 닫힌 채로 마치 콘크리트 같은 딱딱한 접객을 해오던 날들…. 프리랜서 생활 내내 지속해 온 관계도 있을 만큼 유독 나에게는 오랜 인연들이 많다. 프리랜서 첫 시작이 지인을 통한 일이었고, 그 지인이 다른 지인을 소개하고, 또 다른 지인을 소개해 지금까지 이어져 지금에 이르렀다.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인’이라는 그 단어에 스스로를 옭아 메어 일하는 동안 제법 힘들 때가 많았다. 아는 사람이어서 편할 때도 있지만,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말 못 하는 괴로움도 분명 많았다. 벽을 쌓아둔 채 일을 대할 때마다 최대한 감정 없이 완벽하게만 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살았다. 일은 그저 일이고, 감정을 섞지 않아야 관계로부터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힘듦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어색하다고 느끼는 그 관계를 스스로 좀 더 매끄럽게 만드는 일이라는 걸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벽에 틈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매일 반복되는 업무를 꾸준히 오랫동안 행하는 것이 일이고, 오랜 기간 일을 통해 얻은 태도는 다시 내 삶에 고스란히 접목됩니다. 일을 다루는 방식이 곧 삶을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어지럽고 방황하기 쉬운 삶에 하나의 튼튼한 척추가 되어주는 것이 바로 일에서 얻은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나’로 존재해야만 내가 나인 것 같다는 생각에 한동안 일하는 내 모습에만 초점을 맞춰 살았다. 일하지 않는 동안의 나는 마치 내가 아닌 것 마냥, 불안하고 초조하기를 반복했다. 일을 해야만 나로서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살았다. 그 와중에 워라밸을 잡겠다고 프리랜서임에도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항상 ‘9 to 6’를 지켜왔다.(주말 업무 마감 및 야근 자제) 하지만 이상하게 균형감은 어딘가 애매한 모습이었다.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거나 한 건 아니지만 어딘가 모르게 위태로운 느낌.
일할 때의 내 모습 대비 일하지 않을 때의 내 모습이 얼추 서로 균형이 맞아야 한다는 생각에, 일하지 않을 때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일과 나를 분리해야만 워라밸이 지켜지는 건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Work and Life Balance. 워라밸. 일과 삶의 균형은 단순히 일하는 시간과 일하지 않는 시간을 지킨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일하는 모습과 일하지 않는 모습의 절대적 수치를 균등하게 맞춰서 균형감을 유지하는 게 아니다. 워라밸에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일(work)과 삶(Life Balance) 그 가운데에 있는 내가 중심을 잘 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일을 어떻게 더 잘하고, 삶을 어떻게 더 잘 꾸려야 좋을지를 고민하는 것 그 이전에, 무엇보다 중심에 서있는 내가 나 자체로 올곧이 바로 서있어야 하는 게 우선이었다. 일하는 나도 일하지 않는 나도. 둘 다 같은 나인데 나는 내 인생을 굉장히 이분법적으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중심을 돌보지 못했다. 물리적으로 시간적으로 균형을 잡아도 위태로운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스스로 중심이 잘 잡혀있지 않아서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사와 대화를 통해
다른 사람과 마음의 주파수를
맞추는 능력을 기를수록
삶은 그 전과 눈에 띄게 달라집니다.
관계 때문에 늘 힘들었지만, 스스로 벽에 조그마한 틈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관계 때문이었다. 일에서의 관계로 인해 수도 없이 힘들었지만, 결국 일에서 깨달음을 얻고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어나가는 중이다. 이 책에서처럼, 내 일은 내 삶의 축소판인 셈이다. 결코 일과 나를 분리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에 대한 태도는 자기 계발적 관점에서 ‘경쟁력’으로 삼기도 하지만, 결국 일에 대한 태도는 나 자신에 대한 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