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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독일에서 재취업하기

어느 디자이너의 갭이어

by 디자이너요니

올해로 디자이너로 일한 지 12년 차가 되었다. 한국, 영국, 중국, 그리고 독일에서 이름난 브랜드에서 일을 해왔기에 나는 늘 내 커리어에 자신이 있었다. 2024년 7월, 다시 독일로 돌아와 구직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남편과 함께 살기 위해 독일에 왔기 때문에 나는 반드시 이곳에서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만약 다른 나라에 취직한다면, 남편과 함께 살겠다고 중국에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독일에 올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


처음 한두 달은 독일 내에서 꼭 가고 싶은 회사에만 지원했다. 그다음 몇 달은 독일 전역의 크고 작은 모든 회사에 지원을 했다. 그리고 구직을 시작한 지 6개월쯤 지나면서는 유럽 전역에 있는 디자인 회사들로 지원 범위를 넓혔다.


돌이켜보니 지난 1년 동안 100곳이 넘는 회사에 입사 지원을 했고, 그중 7곳 정도에서 면접 제안을 받았다. 독일에 있는 네 곳은 오프라인 면접을, 나머지는 유럽에 위치한 회사들과는 온라인으로 면접을 진행했다. 면접 제안만 받아도 눈물이 날 만큼 반가워서, 면접이 잡히면 휴가도 미루고 약속도 취소하며 온 힘을 쏟았다.


어떤 면접은 비록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더라도 대화 그 자체가 편안하고 즐거운 경험이었고, 또 어떤 면접은 괜히 기싸움을 하는 듯한 분위기에 기분이 좋지 않게 끝나기도 했다. 어쨌든 면접의 유무와 분위기에 따라 내 감정은 크게 흔들렸고, 그 여운은 며칠, 때로는 몇 주 동안 이어지곤 했다.


면접을 보는 동안의 분위기가 꽤 좋았다고 생각했는데도 탈락한 경험이 몇 번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부 지원자가 있어 그들을 우선 채용한 경우였다. 이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내가 무엇이 부족했는지, 어떻게 보완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오랫동안 답답했고 자존감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그러니 취업이나 재취업을 준비하는 여러분들, 바로 취직이 안된다고 해서 여러분의 탓을 하거나 너무 자괴감에 빠지지 마시길. 우리가 취직이 안 되는 이유가 꼭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취업을 준비하는 동안 남편과 친구들, 그리고 옛 직장 동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추천서를 써 주기도 했고, 포트폴리오에 대한 피드백을 주었으며, 내가 지원한 회사의 분위기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조언을 해 주었다. 지난 10년 동안 내가 쌓아온 것은 이력서나 포트폴리오가 아니라 내 곁에 있어준 다양한 사람들이었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다양한 도움을 받으며 나는 삶을 헛살지 않았다고 느꼈다. 눈물 나게 감사한 순간들이었다.


정확히 독일에 온 지 1년 만에 새 회사에 출근하게 되었다. 1년을 고군분투하다가 간신히 취업해 보면서 느낀 점은, 취업은 꽤 운이 따라 주어야 한다. 그래서 취직이 안된다고 해서 과하게 내 탓을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나와 함께 회사를 다니고 있는 동료들이 미래에 어떻게 나와 연결될지 모르니 사람들과 잘 지낼 것,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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