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연프로 배웠어요

디자인어랑 산책갈까

by 디자인어

다음 대사가 등장했던 연프(연애 관찰 프로그램)는?


"오빠 붕어빵 좋아해요, 슈크림 좋아해요? 팥 좋아해요?" "나도 팥, 팥"

우리 스물한 살에 만났는데, 스물아홉이야”

"나, 광수야. 별처럼 빛나는 너의 옆에서 나도 잠깐 빛을 낼 수 있어서 좋았어. 너의 드라마에서 나는 지나가는 조연일지도 모르지만 내 드라마의 주인공은 너였어."

"선 넘어도 돼요?"

"많이 좋아했다. 강지수"


정답은 <하트시그널>, <환승연애>, <나는솔로>, <솔로지옥>,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입니다.

모두 맞추셨다면 당신은 연프(연애 관찰 프로그램) 덕후입니다. 방송 포맷과 추구 미는 다르지만, 공통적인건 '남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인데, 여간해선 지겹지가 않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심리학자들은 이를 가리켜 '감정전이'라고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연애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건 매우 당연합니다. 출연자가 매력적인 상대를 만나 느끼는 설렘이 말과 표정과 몸짓으로 다 표현되니, 시청자도 자연스럽게 비슷한 설렘을 느끼게 되죠."*


우리는 타인의 사랑을 관찰하면서 공감하기도, 위안을 받기도, 너무도 서툰 모습에 "나라면 그렇지 않을 텐데, 왜 저래?"하며 못마땅해하기도 합니다. 연프를 통해 즐거움과 공감도 느끼지만, 한편으론 쉬운 쾌락과 자기중심적인 관점으로 상대와 상황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방송 이후 출연자들의 뒷이야기를 마주하게 됩니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릴스'와 '쇼츠'를 통해 알고리즘이 심장박동만큼이나 정상 작동됨을 알 수 있습니다. 출연자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곳에서의 하루는 일주일 같았어요.", "4박5일이 마치 한 달처럼 느껴졌어요.", "여러분들이 거기 있었다면 아실 거예요."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거대한 블랙홀 근처를 공전하는 밀러 행성의 1시간은 지구에서의 7년이었습니다. 중력(GRAVITY)은 사랑인데, 사건의 지평선을 넘는 강력한 사랑이 시간의 흐름을 바꿔 놓은 것일까요?


우리는 분명 그곳에 없었기에, 한편으론 "중력이 강할수록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일반상대성 이론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편집자의 의도에 따라 전달된 영상 정보는, 그곳의 상황을 깊이 생각해 볼 빈틈을 허락해 주지 않습니다. 우리에겐 어떤 무거운 책임과 의무도 필요하지 않죠. 오직 쉬운 쾌락과 자기중심적 편향만 남습니다. 현실에서는 어떤가요?


<경험의 멸종>이란 책에서 크리스틴 로젠은 말합니다.

"인간은 몸을 갖고 있고, 자신의 취약성을 인식하며, 매개된 경험과 매개되지 않은 경험 사이를 자주 오가고, 성찰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하며, 결국 유한하다."*


연프를 통해 키워온 연애 감정은 어떤가요?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없고, 자신의 취약성이 인식되지 않고, 매개되지 않은 경험을 매개된 경험이라 착각하고, 성찰을 위한 시간은 재생 버튼의 빨리 감기에 사라지고, 물리적 공간은 필요 없습니다. 참을성과 인내심 없이 언제 어디서든 OTT를 통해 무한이 즐기면 그게 끝입니다.


연프를 통해 시공간의 제약 없이 연애 감정에 과몰입하면서 우리는 더 이상 연애에 대한 배고픔의 신호를 거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나는솔로', 내일은 '환승연애', 모레는 '솔로지옥' 수많은 연프를 통해 바로 바로 허기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달콤하고 쌉싸름한 간편식을 선택한 셈이죠.


한편으론, 연프의 과몰입이 부족한 연애 감각을 극복해 낼 수 있다고 착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착각엔 패널들의 역할도 매우 큽니다. 패널들의 리액션을 보는 것은 직접 경험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됩니다. 우리는 출연진과 함께 현장에 있었으며, 패널들과 함께 그 순간에 분명히 거기에 '존재'했음을 한 번 더 느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연애를 간접적으로 목격할 수 있고, 감정이입을 통해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단점이라면, 일상의 너무도 많은 시간을 나의 경험이 아닌 타인의 경험을 소비하는 데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발터 벤야민은 "경험의 빈곤"이 사람들을 낯선 유형의 절망으로 몰아넣고, 모든 것이 가장 단순하고 편안한 방법으로 해결되는 존재 방식에서 안도감을 찾을 것이라고 걱정했습니다.


연애도 결국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면서 익혀야 하는 사회적 기술 중 하나입니다. 남녀 간의 예의범절, 서로 다른 인내심, 눈 맞춤과 손짓 등. 육체적으로 직접 체험해야만 알 수 있는 이러한 진심들이 약화되고 있습니다.


많은 청춘들이 대면 만남에서 부재의 현존을 느낀다고 합니다. 부재의 현존이란 물리적으로는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만, 정신과 감정이 그 공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말이 모두 전달해 내지 못하는 서로의 감정을 느끼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눈을 맞추며, 서로에게 공감하는 몸짓이 더욱더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래서, 머리는 묶는 게 나은 건가요? 푸는 게 나은 건가요?


* 이충녕, 『가장 젊은 날의 철학』, 북스톤, 2024, p206

* 크리스틴 로젠, 『경험의 멸종』,이영래, 어크로스, 2025,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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