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어랑 산책갈까
지난 7월,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싱어송라이터 한로로가 단편소설《자몽살구클럽》으로 작가로 데뷔했습니다. 그리고 열흘 뒤, 동명의 첫 소설과 연결된 세 번째 EP《자몽살구클럽》을 발매했습니다.
이야기는 책 속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활자로 시작된 이야기는 음악이 되었고, 뮤직비디오로 확장되며 다섯 가지 맛을 품은 오미자처럼 우리의 오감을 자극했습니다. 책을 읽으며 마음속에 그리던 장면이 어느 순간 멜로디로, 영상으로 번져갈 때, 우리는 더 이상 독자가 아닌 이야기의 참여자가 됩니다.
"할 일 줘요? 술 말고 할 일 줘요? 날 추앙해요. 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난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요."
손석 구씨를 단숨에 스타덤에 올려놓은 드라마《나의 해방일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책은 드라마가 되고, 드라마는 일상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박해영 작가의 내면에서 출발한 작은 서사가, 매체를 거치며 직장인과 청춘들의 집단적 공감을 불러낸 것입니다.
《자몽살구클럽》은 죽고 싶은 아이들의 '살구 싶은' 이야기입니다. 자몽과 살구라는 단어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소설 속 등장하는 4명의 소녀, 이보현·하태수·나유민·김소하는 서로에게 따뜻한 온기가 되어 주며, 토마토 씨앗처럼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는 시간을 통해 살아낼 용기를 키웁니다.
"매일 세상이 쥐여주던 어둠 끝에. 홀로 숨죽여 울고 있던 너를. 안아주지 못한 날 용서해. 어린 아픔 나의 사랑 이젠 안녕."
소설 속에서 눈으로 읽었던 문장이 어느새 귀로 들려옵니다. 곡 〈To._〉에서 캐스터네츠와 트라이앵글의 명랑한 리듬은 오래도록 귓가에 메아리처럼 맴돕니다.
《나의 해방일지》에서는 세 인물이 모여 ‘해방클럽’을 만듭니다. 규칙은 단순합니다. "위로하지 않는다. 조언하지 않는다. 경청한다." 그저 서로의 무게를 들어주는 자리에서, 이들은 관계와 사회적 압박으로부터 잠시나마 해방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추앙’이라는 단어를 통해, 존재 자체를 존중하고 응원하는 태도를 배워갔습니다.
《자몽살구클럽》,《나의 해방일지》가 결국 가리키는 곳은 같습니다. 타인의 시선과 삶의 무력감에서 벗어나 '나답게 살고 싶다'라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근원적인 소망을 향하고 있습니다.
"요즘 것들은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세상에 안 힘든 사람이 어딨어!""나 때는 말이야...."세대와 시대를 막론하고 되풀이되는 타인의 무심한 말들, 때로는 지옥처럼 우리를 옥죄곤 합니다.
알베르 카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칙은 큰일에나 적용할 것, 작은 일에는 연민으로 충분하다." 우리에겐 거창한 담론보다, 일상의 작은 순간마다 연민과 자비를 나눌 수 있는 너그러움이 더 절실합니다.
자몽처럼 쓰고, 살구처럼 달콤한 날들이 필요한 우리.
"여러분들은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고 싶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