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어랑 산책갈까
"불의 호흡"
올해 3월 진격하는 거인의 이야기에 이어, 8월 귀(鬼)를 멸하기 위해 칼날을 휘두르는,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 개봉했다. 그리고 지금 불의 호흡으로 뜨거운 숨을 뱉어내듯 극장가의 열기가 뜨겁다.
<귀멸의 칼날>은 만화가 원작이지만, TV 시리즈가 더욱 인기 있었고, Netflix를 통하여 전 세계적인 흥행에도 성공했다. 주인공 탄지로의 가족은 한날한시에 혈귀에게 몰살당한다. 여동생 네즈코는 살아남았지만, 혈귀가 되어 태양 아래에선 살 수 없게 된다. 네즈코를 인간으로 되돌리고 가족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귀살대에 들어가 혈귀와 싸우는 험난한 여정. <귀멸의 칼날>의 주요 줄거리이다.
"귀멸의 칼날은 슬프다."
하루아침에 비극적이고 참혹한 가족의 죽음을 목격한 탄지로의 이야기가 슬픈 것은 당연한 얘기지만, 등장하는 혈귀들마저 인간성과 괴물성의 경계가 강하게 부각되면서 단순한 악당이 아닌, 측은지심과 연민이 가득한 대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귀멸의 칼날>은 전투신과 회상신이 교차하는 구조의 전개를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전투신의 가속도가 극에 달할수록 회상 장면의 관성도 짙어진다. 동시에 혈귀들이 인간이던 시절의 비극적 슬픔을 무방비 상태에서 여과 없이 목격하게 된다.
혈귀 저마다 재래(再來)된 기억에 인간성의 잔향과 상실의 집착들이 사연으로 가득하다. 이번 무한성 1편의 부제가 '아카자 재래(再來)인 이유도, '선이 아닌 악', '악 이전의 선' 아카자의 서사를 조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선, 악 구분 없는 정교한 회상 장면에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게 된다.
"한계를 뛰어넘은 듯 다가오는 액션들이 구조적 결함까지 넘어서 질주한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 씨는 별점 3.5점과 함께 한 줄 평을 남겼다.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스크린의 공간을 통하여 입체성과 속도감을 폭포처럼 쏟아낸다.
평면의 한계를 뛰어넘는 자극은 이전 <진격의 거인>에서도 유사하게 경험한 바 있다. 거인에 맞서는 조사병단에 고속 이동과 공중 전투를 펼칠 수 있도록 했던 입체 기동장치의 박진감이 그것이다.
"구조가 곧 이야기다."
<귀멸의 칼날>을 언어적・물리적 두 가지 측면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귀멸의 칼날은 "선과 악의 대칭성", "순환성"이라는 언어적 구조를 띠고 있다.
스타크래프트 게임 속 발업 저글링에 맞서는 스팀팩 파이어뱃, 그런 파이어뱃을 상대하는 버로우 럴커처럼 상성으로 맞선다. 주고받는 반복적인 구조에 대칭의 서사를 차곡히 쌓아간다.
탄지로는 가족이 몰살되며 무잔을 찾아 나섰고, 무잔은 태양의 극복이 필요해서 네즈코를 찾는다. 인간에 대한 원망과 집착은 혈귀로 변모했고,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귀살대는 호흡했다. 한색과 난색의 대비, 귀살대와 혈귀의 선, 악 구도, 이러한 대칭성은 으레 만화적인 이야기에서 자주 등장하는 방식이다.
조금 특별한 점은 혈귀들도 저마다 밀도 높은 서사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것도 농도 짙은 슬픈 사연이 반복된다. 혈귀의 이야기가 극에 달할수록 결국에는 분노와 원망의 대상이 타자가 아닌 내면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변화와 순환성을 깨닫고 자신의 본성을 깨우치는 불교, 도가적 동양적 세계관이 깃들어 있다.
귀멸의 칼날은 "신체적 공간과 세계의 무한성"이라는 공간적 구조를 띠고 있다.
귀살대는 호흡을 통하여 신체의 능력을 극한으로 재설계해 내고, 혈귀는 뼈와 살이 잘려도 붙고,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귀의 재생 구조를 띠고 있다. 신체의 부분적 요소가 전체를 이루는 얼개로 사용된다.
이번 영화의 배경이 되는 무한성은 <인셉션>,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이미 경험한 것처럼 철저히 물리법칙을 위반하고 있고, <인터스텔라> 테서렉트 유영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무한한 3D Structure로 구성되어 있다. 접촉할 순 있지만 아무것에도 묶여있지 않는 구조다.
공간의 무한성이 제시된 건 결국 내면의 무한성에 도달하기 위한 구조적 트리거가 필요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귀멸의 칼날>은 전체 시리즈는 짧지만, 이야기의 종지부를 찍는 최종 국면이기에, 시공간을 초월한 궁극의 구조가 필요했다.
"나는 내 맡은 일을 다 했다! 너도 너의 맡은 일을 다 해라!"
<무한열차편>의 '렌고쿠 쿄쥬로'의 말처럼, 공간은 맡은 바 일을 다 했으니, 탄지로와 귀살대원들 내면의 자아도 맡은 바 일을 다 하면 된다.
격렬하게 부딪히는 칼날 소리, 무너지는 '무한성'의 굉음, 귀살대의 호흡 소리 그리고 울려 퍼지는 비파의 잔향까지, 소리로 전해지는 압도적인 현장감은 이전의 모든 한계를 뛰어넘었다.
이전 <무한열차편>이 한편의 휘몰아치는 완결된 영화처럼 구성되었다면, <무한성편>은 박진감 속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회상 장면처럼, 시작과 끝이 모두 비어 있는 공허함이 존재한다. 절대 악은 한순간에 연민이 된다.
영원한 불꽃이 존재하지 않듯, 절대적 가치와 진리의 존재를 부정하는 서양의 허무(虛無)주의와 닮았다. 여기서 허무(虛無)는 텅 비어 실상이 없는 상태, 기존 가치 체계의 해체를 통한 자유의 계기, 인간 존재의 근본적 한계로 보고 있다. 동양의 불교와 도가적 사상과 상통한다.
꿈을 훔치고 생각을 심는 영화 <인셉션>에서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말했다.
"생각은 바이러스와 같아. 끈질기고 번식력도 강하지. 생각의 씨앗이 자라면 사람의 본질이 되기도 하고 그를 완전히 바꿔놓을 수도 있어."
탄지로는 '투명한 세계(내비치는 세계)'의 의미를 깨닫는다. 무의식의 고요함 속에 결국 궁극의 기술이 깃들어 있다고 느낀다. 아카자는 상대의 살기와 투기를 감지해 내 끊임없이 공격한다. 그래서 탄지로는 자신의 살기를 완전히 지워내는 허무(虛無)의 결론에 도달한다.
'무아(無我)의 경지' '아(我)'가 없는 상태로 감각이 극한으로 확장된 상태!
자신과 세상의 모든 것이 경계 없이 녹아있는 상태. 우리의 뇌는 수만 가지 생각 끝에 복잡한 판단을 내리지만, 생각하면 이미 늦다. 그래서 생각이 없는 무의식의 세계, 무아의 상태가 필요하다.
귀멸의 칼날은 싸움을 즐기며 능력의 한계를 초월하는 도장 깨기식 영웅물이 아니다. 오히려 싸움 없이 사랑하는 존재를 지켜내려는, "지키기 위해 싸운다."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동시에 인간의 존엄과 본성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탄지로가 그랬던 것처럼, 자의식이 사라진 몰입의 심리 상태는 분명 내적 충만감과 문제해결의 창의성을 가능하게 한다. 무아의 호흡은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자, 시작해 보자. 연회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