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날고 있어

디자인어랑 산책갈까

by 디자인어

"전략이 아니라 기회를 만들어야지. 희망은 전략이 될 수 없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영화 속 소니 헤이스(브래드 피트)가 기회를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달리기였다. 그리고 매일 뛰었다. 러닝으로 체력을 다졌고, 테니스공을 튕겨가며 레이싱에 필요한 집중력을 높였으며,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며 자신의 랩타임을 단축해 나갔다. 경기가 아닌 준비 과정에 소니 헤이스는 이미 달리고 있었다.


<F1 더 무비>의 흥행세가 놀랍고도 경이롭다. OTT의 간편함 속에 영화관을 찾는 관객은 나날이 줄어들고 있지만 좀 더 사실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접하고자 아이맥스와 4DX로 N차 관람을 이어가는 관객들이 늘고 있다.


F1의 짜릿한 속도, 고막을 진동시키는 굉음, 질주 본능의 욕망. 이 3박자를 위해 스마트폰에 중독된 포노 사피엔스들이 3시간 가까운 상영시간을 좁은 F1 운전석에 앉아 견뎌내고 있다.


그 이유가 뭘까?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은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다."

김지운 감독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이병헌 배우의 나레이션이다.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화엄경의 가르침처럼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 이는 외부 세계와 내면의 경험은 모두 마음의 작용으로 만들어진다는 유심론적 관점을 담아내고 있다. 결국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린 거고, 그 마음을 먹기 위해서 사람들은 그토록 달리는 모습을 보려 하고 또 달리려 드는 것 같다.


대중은 <나 혼자 산다>에서 42.195m를 완주해 낸 기안84를 더 이상 기이한 사람으로만 인식하지 않는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고통을 이겨낸 집념의 사나이, 그가 보여준 울림과 감동은 그를 달리기 홍보대사로 임명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요즘 2040 사이에서 러닝은 소위 '힙한 운동'으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 달리기가 그토록 열풍인 건, 움직이지 않던 그 무겁던 마음도 달리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전략처럼 여기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건, 갈 곳 잃은 마음을 가장 쉽게 변화시킬 수 있는 값싼 방법은 달리기이다.


블랙핑크의 <뛰어>가 전 세계 K-POP 팬들을 격렬하게 쉼 없이 뛰게 만들고 있고, 바닥의 진동 폭은 다르지만 오래전 옥상달빛도 <달리기>를 통하여 청춘의 마음을 달랬었다.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할 수 없죠. 어차피 시작해 버린 것을 쏟아지는 햇살 속에 입이 바싹 말라와도 할 순 없죠. 창피하게 멈춰 설 순 없으니...."


'창피하게 멈춰 설 수 없어서 달리기를 시작해 버렸다.'라는 가사처럼 달리기는 희망을 넘어 기회를 만들어 주는 가장 값싼 방법인 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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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박동훈 부장(故 이선균)은 이력서에 '달리기'란 문구를 특기로 작성한 이지안(아이유)에게 내력이 세 보인다고 했다. 100m를 몇 초에 뛰는지도 모르는 이지안이지만 "달릴 때는 내가 없어져요. 근데 그게 진짜 나 같아요" 동적 달리기의 정적인 순간에 진정한 자아를 발견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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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차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이 고요해지고, 심장이 멈춘 듯한 정적이 찾아와요. 그 순간 나는 운전하는 게 아니라....날고 있어요."


몰입의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F1 드라이버의 초월 감이다.

이는 단지 속도만의 표현이 아니다. 소니 헤이스는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순간에 온전한 자아를 만나고, 심장의 정적이 자욱한 시간에 가장 높은 곳으로 날았다.

몰입하면 결국 날 수 있다.


청춘의 여정도 수많은 굉음과 손에 잡히지 않는 드넓은 지평선을 매일 마주하게 된다. '도전 안 하면 우승 못 하지'란 영화 속 대사처럼 적막함 속에서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몸부터 움직여야 한다.


달리자. 두려움 없이 질주하자. 결국 날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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