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갑자기 눈이 떠졌다.
기상 알람이 울리려면 2시간이나 남았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비몽사몽에 생각했다.
'오늘 진짜 급한 업무가 있나?' - 아니다, 없다.
설사 있다 한들 지구를 구하러 가는 것도 아닌데 잠이나 더 자자..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고, 다시 잠이 들었고, 지구를 구했다.
나는 아마도 아시아 대표 히어로쯤 되는 듯했고, 긴 금발에 매력이 넘치는 언니가 보스인 듯했다.
보스 언니가 말하는 미션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내가 이걸 해낼 리가 없는데......' (참고로 난 앞구르기도 제대로 못하는 타고난 몸치다.)
그래도 보스 언니가 시키는 대로 옥상에서 옥상을 뛰어넘고, 무려 5층 높이에서 뛰어내리고(그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몸을 굴려 폐공장같이 보이는 곳에 잠입하고(굳이 왜 굴러서 들어갔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딱 봐도 중요한 게 들어 있어 보이는 가방을 들고 나와(물론, 우리가 액션 영화에서 흔히 보는 그런 종류의 몸싸움이 있었고, 난 모든 적을 정말 멋지게 무찔렀다), 공중에 떠 있는 헬리콥터에서 내려준 줄을 타고 올라가 헬리콥터 안에 탔고(이건 영화 '*카터'의 영향인가...) 공장에서 구해온 가방을 전달하던 순간, 폐공장 같던 곳은 굉음을 내며 폭발했고(내가 폭탄도 설치했던가...?), 그 여파로 헬리콥터가 심하게 흔들리며 추락하던 순간, UFO처럼 생긴 비행 물체(알고 보니 보스의 비행기)가 우리를 잡아챘고, 덕분에 난 살았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지구를 구했다며 비행기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막 안아주고, 나보고 영웅이라며 다 같이 나를 잡고 공중을 던져 공중에 붕 뜬 순간!
잠에서 깼다.
아... 피곤해... 너무 피곤해...
진부해도 너무 진부한 히어로물 주인공이 된 바람에 월요일 아침부터 삭신이 쑤시는 느낌이다.
그냥 아까 일어날걸.
그랬으면 꿈에서 지구를 구하는 대신 현실의 '나'를 구했을 텐데.
아마도 일주일의 시작이 아주 평화로웠을 텐데 말이다.
*카터 : 넷플릭스에 주원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액션 영화가 있다. 개인적으론 피가 낭자하는 잔인한 영화는 딱 질색인데, 현란한 카메라 움직임 때문에 눈을 뗄 수없는 신기한 경험을 안겨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