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자기 연민의 늪

소설 [디자이너의 마음들]

책을 읽다가 와닿는 구절이 있어 한동안 그 페이지를 넘어가지 못했다. 그가 눈을 떼지 못하던 부분은 '자신을 더 나은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데에는 자신을 더 괜찮은 사람이라 믿고 싶다는 욕심이 들어가 있는 것'이라는 구절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저자는 한동안 자신의 자기 연민을 마주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20대를 자기 연민으로 허덕였던 그 역시나 그 부분에서는 할 말이 적지 않았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게 해 준 사람은 그가 대학 때 만났던 첫 번째 여자 친구였다. 그의 자신만만한 모습을 좋게 봐주는 듯하다가, 1년여간의 연애를 이어가던 그녀는, 결국 그의 오만함에 눈물을 흘리면서 이별을 고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감이 매력이라고 생각했던 그에게는 참으로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나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닌가?'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자신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비어있는 공간을 감추려고 덮어둔 헝겊조각에 불과했고, 결국 그는 고생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에 연민 섞인 눈빛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그의 태도가 누군가에게는 오만함으로 비추었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한동안은 잊어버리고 살아가다가, 대학 졸업반이 되어서야 그 말의 의미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자신과 같은 인재를 받아주지 않는 회사를 욕하고 비난하던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렌즈가 결국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느 한 회사의 인사팀에서 일하고 있던 친한 선배는 그와의 술자리에서 그런 태도를 고치지 않으면 회사에서도 엄청난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면서 독한 조언을 남기고 갔다. 멍하니 바닥만 보던 그는 그때부터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다.


결국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들여다본 순간부터 자기 연민은 사라지고 현실을 자각하며 하루를 살아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에게 변화가 있고 난 후부터는 다른 사람들의 연민 가득한 이야기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는 극히 공감하곤 했지만, 이젠 열심히 사는 것 외에는 연민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착각 속에서 벗어난 그는 천천히 어두웠던 착각의 늪에서 나올 수 있었고, 자기 인식을 통해 조금 더 건강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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