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디자이너의 마음들]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오묘한 곳이다. 방금까지만 해도 쨍쨍하던 하늘에 조금씩 잿빛이 찾아들더니 갑자기 소낙비가 내리는 것처럼 하늘이 검게 변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점심메뉴를 고르면서 하하호호하던 사람들과 미팅을 시작하다 보면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일방적으로 혼이 나거나 희생양이 되고 싶지 않아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나도 모르게 마음에서 울컥하고 솟아오르는 마그마 같은 것이 무엇인가 살펴보면, 결국 이 줄다리기의 끝은 감정이 꽉 붙잡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디자인을 시작하고 3년 차에 접어든 대리 시절,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사수에게 혼이 나곤 했다. 긴장감에 점심을 먹다 체한 적도 많았고, 발표를 하다가 훅 들어와 지적하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수의 목소리에 제대로 발표를 마치지도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버벅거리면서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한 적도 많았다. 주니어 때는 누구나 그렇다고 하기엔, 그의 첫 시작은 혹독했고 잊히지 않을 만큼 차가운 날들이 많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출근해서 커피를 들고 엘리베이터가 오기를 기다릴 때만 해도 별 이상이 없는 마음이었다. 분명 오늘은 가벼운 마음으로 와서 열심히 일을 해야지 하고 다짐하고 왔던 그였다. 하지만 미팅을 지나면서 그의 마음에는 조금씩 먹구름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듣고 싶지 않은 말들이 오가고, 책임을 회피하고 전가하는 화살들이 콕콕 박히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마음에 들어온 화살을 피하기도 전에, 이미 그의 마음은 빨갛게 부어오른 감정들이 곧 터질 것 마냥 아슬아슬한 상황에 다다른 듯했다.
“누가 당신 보고 책임지라고 했어? 그냥 할 수 있는 데까지 가져와 보라는 거라고.”
“…”
“왜 자꾸 변명하듯이 그런 말을 해? 그렇게 까지 나올 필요는 없잖아.”
지금 처한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30분 전까지만 해도, 프로젝트의 일정을 논의하면서 업데이트를 하는 회의라고 이해하고 있었는데, 지금의 상황에서 왜 자신이 말한 부분을 설명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그는 10분 전에 어떤 일을 진행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그 부분은 상사가 원하던 답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수치스러운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들은 동시에 존재가 부인되는 경험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잘못한 것이라고 여기고 얼른 이 상황을 넘어가고 싶다가도, 정말 내 잘못인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 가엾은 나의 자아가 보이면 화를 꾸역꾸역 삼키다가도 눈물이 차오를 것 같아 얼른 눈동자를 굴리게 된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상사의 목소리 톤을 낮출 수 있는지 요령만 살피는 자신이 처량하면서도, 왜 내가 이렇게 혼이 나야 하나 싶어 억울하기만 하다.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그의 할 일을 다 했을 뿐인데 왜 혼이 나야 하는 것일까.
결국 그가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그 순간의 감정에 치우쳐서 더 큰 화를 불러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괜히 더 큰 꾸지람을 듣기보다는, 일하는 법에 대해 그 순간 배울 수 있는 라이프 레슨만 얼른 빼오고 다른 인격적인 수치감은 최대한 빨리 잊어버리자고 다짐했다. 이후로도 순간순간 마음속으로 ‘감정에 지지 말자’라고 외치면서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주니어 시절 너무 많이 혼이 나서 그런지, 혼이 나는 주니어들에게 괜히 마음이 더 가는 것 같은 그였다. 오늘도 혼이 나서 눈물을 살짝 머금고 지나가던 인턴을 발견하고, 커피를 마시러 나가면서 인턴에게 건넬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더 가져가는 것 밖에는 하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게 느껴진다. 속으로는 이렇게 외치고 싶은 마음이다.
“커피 마시고 힘내. 괜찮아, 다 지나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