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통랩 Designtong Lab Oct 30. 2022

원고: 카피, 내용

나는 무엇을 작업하는지 정확히 알고 하는가?

 "내가 지금 디자인하고 있는 작업물은 뭐여야만 하지?"


내가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작업하고 있는 편집물의 결과를 설명할 수 없다면, 나는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결과에 대한 설명이란 '어느 사의 행사 리플릿이요.'와 같은 단답형 설명이 아니다. 내가 작업하고 있는 편집물의 용도와 용도에 따른 컨셉, 컨셉에 따른 디자인 계획을 설명하는 정도는 되어야 설명을 듣는 입장에서 납득이 갈만한 결과물을 상상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내가 디자인하고 있는 작업물을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디자이너가 작업 방향을 잘 잡았다거나 중간에 길을 잃지 않았음을 모두에게 확인시켜 주는 장면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집중하고 있는 작업물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거나 아니면 작업에 진척이 없어 헤매고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처음으로 돌아가 의뢰받은 작업의 원고부터 다시 검토해 보길 추천한다.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은 편집디자이너에게 부족할 수밖에 없는 기본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제일 우선해서 짚어야 하는 문제는 원고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원고'의 의미는 공개적으로 발표하기 위하여 쓴 글이나 그림을 떠올리게 할 터이지만, 편집디자인에서 원고는 '의뢰사가 의뢰한 일에 참조할 설명 문구나 카피, 사진 및 일러스트, 그 밖에 소스를 포함한 자료 전체'를 의미한다. 이에 따라 앞으로도 본 글에서 사용하는 원고는 위의 의미로 사용하려고 한다. 특히 카피는 편집디자이너에게 있어서 표현해야 하는 전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원고 중에서도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와 같이 일했던 디자이너들 중에는 카피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것처럼, 그저 대지 위에 올려놓고 위치 조정해야 하는 소스의 하나로만 해석해 작업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카피의 역할을 잘 보여주는 편집물에는 선거에 사용하는 후보 홍보물이 있다. 의뢰자인 후보의 필요는 유권자에게 자신이 얼마나 최적의 후보인지 알리는 것이다. 그런 선거 홍보물에서 카피는 기획자가 후보와 유권자 정보를 분석하여 작성한 것, 즉 슬로건 및 공약 등으로 디자이너가 대지에 필수적으로 가장 잘 보이고 효과 높게 해석되도록 배치해야 하는 기본 소스이다. 다음의 후보가 있다고 하자. 나이는 55세, 여성, 지역 내 활동 경력이 적어 인지도가 낮고 정치성이 떨어지지만, 도덕적인 면에서 높이 평가받고 강한 의지력을 바탕으로 '조용하게 일에만 매달릴 수 있는 사람'으로 홍보하기에 적절한 사람이다. 그녀의 선거 홍보물 표지를 만들어 보자.


슬로건: 일 할 준비됐습니다

네임슬로건: 생각하는 손과 발

기호: 1

이름: 이선수


책자형; 책 표지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지 점검해 가면서 만들어 보자.

잡지형; 사진이 가지고 있는 매력에 빠져 분위기를 한껏 내보자.

선거형; 보편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선거공보의 형태를 갖춰 보자.

(*위 형태명은 설명하는 데 용이하도록 필자가 임의로 정한 명칭입니다.)

책자형 / 잡지형 / 선거형


위 3가지의 시안을 후보 앞에서 프레젠테이션한다고 가정했을 때, 후보는 어떤 안을 선택할 것 같은가? 최근 선거 홍보물의 스타일이 다양해지고 있어서 의외의 안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선거를 앞둔 후보의 입장에서 보편적인 선거형을 선택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후보에 따라서는 나머지 두 개의 안, 잡지형 혹은 책자형으로 디자인한 것을 이해하기 어려운 시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만약 선거형이 아닌 책자형과 잡지형만 작업하여 후보에게 보여 줬다면 100% 반품일 확률이 높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바로 원고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것이다. 실제 업무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시안이 통과 못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파생되는 많은 문제 중에는 의뢰처를 잃는 것도 포함될 만큼 심각한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원고를 제대로 분석하는 일은 일의 결과뿐만 아니라 사후 의뢰처와의 관계 변화를 결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원고를 되도록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까? 원고를 공부해야 한다. 다음의 3가지 질문에 대해 답을 찾는 것이 내가 원고를 숙지하는 방법이다.  


하나, 의뢰처에서 원하는 결과물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기획팀의 제안서를 바탕으로 의뢰처와 이루어진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분명해진 의뢰처의 필요가 디자인할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편집디자인의 경우, 이 단계가 생략되고 의뢰처에서 받은 최초의 자료가 다인 경우가 많다. 이럴 때 디자이너인 나는 주어진 최초의 원고를 검토하여 다음의 내용을 정리한다. 결과물의 사용처, 형태의 스타일, 반드시 알아야 하는 주의사항이 그것이다. 이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결과물을 설정하여 의뢰처 담당자에게 확인하는 것으로 내가 무엇을 디자인해야 하는지 확정하는 것이다.


둘, 기획자의 제안에 의해 의도가 확실해진 카피는 어떻게 표현해야 그 효과를 증폭시킬 수 있는가? 의뢰처는 요구하는 것을 항상 알고 의뢰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획자가 제안한 기획안을 통해 의뢰처의 요구를 분명하게 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내용의 의도는 선명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디자이너는 기획안대로 표현해내는 데 집중하면 된다. 다르게 말하자면 위 과정을 확실하게 해줄 기획자가 없이 직접 의뢰처와 소통하는 경우라면, 디자이너는 기획자의 역할이 가능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원고를 주어진 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의뢰처 담당자에게 확인한 내용을 바탕으로 원고를 정리 및 교정하여 시안을 작성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셋, 의뢰처와 기획자 모두를 설득시킬 수 있는 시안이 머릿속에 그려졌는가? 원고를 검토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이 있게 마련이다. 여기서 그려진 안을 시뮬레이션해 보지 않은 상태로 컴퓨터 앞에 앉는 것은 피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컴퓨터 작업에 많은 시간을 들여도 완성도가 올라가지 않거나, 작업이 가능한 뇌 설정 상태가 될 때까지 모니터만 뚫어지게 보고 있어야 할 수도 있다. 


의뢰처와 기획자가 함께하는 전체 회의에 디자이너로 참여하고, 프로젝트가 몇 개의 팀 조합 작업인 경우는 디자인팀으로 참여하면서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이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부분은 디자인기획사마다 다를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편집디자인 분야에서는 모든 과정이 원칙적으로 진행되기 보다 일관된 기준없이 그때그때 의뢰처에 따라 작업 환경과 진행 과정이 전혀 다른 경우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유독 심하다고 생각한다. 원칙적인 진행과정이 생략되고 의뢰처에서 전달받는 원고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주는 누군가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원고를 얼마나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지에 따라 작업 결과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즉 원고를 공부하는 것이 비전공 디자이너에게는 비기秘技가 될 수 있다. 

이전 01화 디자인 전공자가 아닌 디자이너에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