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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star 씨애스타 Oct 22. 2022

상처는 별이 된다, 씨애스타의 탄생

i Magazin 01. 모든 출생엔 비밀이 있다

어릴 적 우리 집은 매 맞는 동네 아줌마들의 피난처이자 수다방이었다. 시퍼렇게 멍이 든 얼굴에 얇은 살코기 소고기를 붙이고 누웠거나, 날달걀로 살살 얼굴에 굴리면서도 아줌마들은 울다 또 웃다 그랬다. 그것이 내게 참 놀라웠던 일이다. 왜 그녀들은 피멍이 든 얼굴에도 웃을까? 웃을 수 있을까? 웃음이 나올까?     


외지 사람이 동네에 발만 디뎌도 우리 집에서 밥 먹고 술 마시고 자고 가야 하는 사람 좋은 할아버지는 늘 '지나가는 갈매기도 한 잔, 나도 한 잔'인 분이셨단다. 풍채 좋고 사람도 좋지만, 성격은 무지 급해서 밥상이 날아다니는 폭력을 목격한 엄마는 시아버님이 좋아하는 술상을 정성스럽게 장만해 조용히 말씀드렸단다.     


“아버님 자식들 앞에서 어머님을 때리시면, 자식들이 어머님을 뵙기에도 민망하고 아버님을 존경하기도 어렵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날로 폭력을 멈추셨고, 엄마는 아버지에게 폭력을 행사하면 그날로 집을 나가겠다고 엄포를 놓아서 동네 아줌마들에게 우리 집은 안전한 집이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우리 집이 그랬다. 아버지가 바람은 피워도 폭력이 없는 거의 유일한 집이자 안전한 집이 우리 집인 이상한 동네. 자상한 아버지도 없었고, 따뜻하고 상냥한 아내도 엄마도 없어 늘 자식에게 욕을 퍼붓거나 때리거나 살림이 부서지거나 싸우는 소리가 언제 어디서나 들리는 그런 이상한 나라의 어른들이 사는 동네. 폭력과 싸움으로 날이 서 있는 아줌마들에게 아이들은 감정이나 욕을 쏟아붓는 쓰레기통 같은 존재였지만 그녀들의 모성애는 “공부해서 이 지긋지긋한 곳을 떠나”라는 말을 반복하는 것이었으니, 학구열은 싸움의 강도만큼이나 높은 동네...      


다행히 엄마는 욕을 끔찍히도 듣기 싫어하는 내게 욕 한마디 하지 못했다. 엄마의 표현대로 경상도에서 여자 아이에게 흔하게 부르는 ‘가스나’라고도 못 불렀단다. 다른 아줌마들은 화풀이로 때리고 욕하고 그랬는데 엄마는 한 번도 그러지 못했다. 내가 자식이지만 어려워서였다는데... 그 점은 늘 감사하다.      


나는 어릴 적 방바닥에 엎드려 숙제하다 그림 그리다 뭔가 꼼지락거리면서 아줌마들의 수다를 듣는 것을 좋아했는데, 어느 날 한 아주머니가 물었다.      

     

“아들 잘 크나?”

“누구요?”

“왜 그 못생긴 여자가 애를 낳았다고 안 켔어예”

“내는 모른다.”

“언니도 안 만났어예?”

“애를 가졌다케서 찾아갔지.”

“못생긴 것이 한이라 예쁜 아이를 낳고 싶어 그랬다 카더라고. 애 아버지가 인물이 훤칠해서 애를 가졌다카니 내 속에 천불이 나더라. 그래서 쟈를 안 가졌나. 내 둘로 마칠라켔는데 거는 아들 낳고 나는 딸을 낳다 보니 그것도 처음에는 화가 나더라고...”


‘응? 쟈라면 나?’     

아는 척을 할 수도 물어볼 수도 없는 그 순간... 그 이야기는 평생  내 가슴 속에 박혔다. 나의 존재는 아버지의 바람 때문에 엄마의 천불 때문에 끓어오르는 질투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그 대화로 유추하면 아버지에게는 나와 동갑인 배다른 남자아이가 있다는 것인가?     


“뭐, 애 아버지가 맞다면 한번은 연락을 했을텐데 한 번도 없는 거 보면 아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값네, 언니. 우째 한 번도 연락을 안 했겠노.”

“아니라예, 절대 아니라예.”

“소문엔 아 아버지라 그랬는데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는 것을 보니 아닌갑지.”

“하모요.”


그래 아닐 수도 있다. 그 후로 한 번도 연락이 없었지만, 나의 탄생 이유는 변함이 없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상하게 끌려서 사랑에 빠지고 보니 배다른 오빠였다는 스토리를 볼 때마다 나는 뜨끔했다. '그렇게 되면 어쩌지?'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 초인종을 누르고 찾아오는 남자아이를 수도 없이 상상했고, 또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동네 아주머니의 호기심 때문에 옆에 있던 어린아이를 살피지 않고 했던 그 이야기는 지금까지 박혀있던 화살이 되었다. 어떨 때는 심장을 관통하고 있어 실제로 통증이 느껴지기도 하는...     


어른들의 그냥 사소한 대화가 그 부주의함 때문에... 당사자가 듣고 있는 그 상황에서도 호기심이나 궁금증 때문에... 나는 아주 오랫동안 고통받았다. 출생이 거창한 태몽이나 뜨거운 사랑... 기대와 설렘은 아닐지라도 아버지의 바람이나 엄마의 질투라니... 나는 존재 자체가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하는 기분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자를 쓰고 있는 나... 지나갈 때마다 그것을 아는 아줌마들이 앞으로는 밝게 웃으며 인사해도 뒤에서는 “쟤, 삼 층 언니가 아저씨 바람 때문에 욱해서 낳은 애잖아...” “어머 그래?” “나는 몰랐는데...” 쑤군쑤군 소리가 귀가 아니라 심장으로 따끔따끔 들리는 느낌... 엄마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고... 누구와 상의할 수도 없어서 끊임없는 도돌이표처럼 돌아와서 울렸던  소리와 따라다녔던 수군거림... 내게 씌워진 상자와 내가 쓰고 있던 안경... 그 안경으로 본 세상...     


어릴 때 부부싸움 한 번은 아이에게 삼천여 번의 여진으로 남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 말에 백 퍼센트 공감한다. 아마도 그날의 이야기는 삼천여 번 나를 흔들었을 거다. 지금도 이 이야기가 가슴 아프고 눈물이 난다. 때리거나 욕하지 않았지만, 평생을 갈라지고 무너지며 흔들어놓는 지진과 삼천여 번의 여진을 만든 엄마가 한없이 안쓰럽다가도 원망스러웠다. 다만 내가 태어나길 그렇게 기다렸다는 작은 오빠... 태어나자마자 “내가 네 오빠야. 오빠라도 불러봐”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나의 갈라짐과 흔들림을 멈추어주었으니 혹 아이가 자신의 출생을 묻거든 술 때문이나 어느 날 사고가 아닌 사랑이나 축복 그 자체라고 부디 들려주시길... 그것이 설사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 이야기는 삼천여 번 사랑과 축복의 여진이 되어 아이를 안정시킬 테니... 사소한 부주의나 감정으로 내뱉는 이야기가 평생 박히는 못이나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 남자에 대한 사랑에 대한 결혼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과 불신 그리고 적개심과 증오... 이런 것들로 인해 세상의 남자들과 자연스럽지 못했고... 초등학교 3학년부터 남녀 분반과 여중 여고 여대를 거쳐 남자들이 거의 없는 직종에 종사자가 되는 그런 아픔을 가진 절름발이로 자랄 수 있으니...      


엄마도 돌아가신 아버지도 내가 그런 마음으로 살기를 바라지는 않으셨겠지만(늦은 결혼을 재촉할 것이 아니라 그 이유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았을까?)... 내가 세상에 나온 이유를 부정할 수는 없고... 배다른 오빠는 지금까지도 없었으니 아마 세상에 존재한다고 해도 만날 수는 없을 것 같아 밝힌다.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못한 것은 숨기고 싶고 두렵기도 했지만, 그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를 배다른 오빠에 대한 예의라 생각했다. 그에게도 출생의 비밀이 자신이 아닌 누군가에 의해 정의 내려지거나 밝혀지는 것은 고통일 수 있으니... 세상 모든 아이는 사랑으로 축복으로 이 세상에 왔다고 나는 우기고 싶은 사람이니... 설사 존재한다고 해도 이제 오십을 훌쩍  넘은 나이라 그에게도 이제 누군가에 의해 태어나면서부터 쓰게 된 안경을 벗을 나이가 되었으니 나를 이해해주지 않을까? 눈물 때문인지 그 눈물로 벗겨진 안경 때문인지 창밖에서 들어오는 햇볕 때문인지 부은 눈으로 맞는 유난히 눈부신 아침, 남편에게 나의 출생의 비밀을 밝힌 것은 3년 전이다. 이십여 년을 살면서 하지 못한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며 남편은 그랬다.


“옛날엔 다 그랬지. 별거 아니야.


그래, 내가 자랄 때는 적어도 내가 태어난 곳에서는 대부분 그랬다. 그래서 평생의 상처가 될 화살을 어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쏘아댔다. 모두가 그랬으므로. 모두가 그렇게 사는 것이 마치 당연하다는 것처럼. 그러니 너도 그따위 일이랑은 별일 아니게 여기며 살라는 것처럼, 상처에 소고기를 붙이고, 시퍼런 멍 자국 위로 날달걀을 굴리며 깔깔거리며 웃는 그녀들처럼 너도 그렇게 살라고 말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는 이렇게 상처받았고 그래서 그렇게밖에 살지 못했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글을 써놓고도 몇 명의 사람에게 커밍아웃하듯 보여주는 내게 한 사람이 그랬다.


“Scar into star,"


가슴 속에 있으면 상처지만 그것을 밖으로 내뱉으면 별이 된다고. 그 별은 빛나서 자신을 비추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빛이 될 수도 있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가슴은 반짝였다. 마치 어두운 골목길에 가로등이 켜진 것처럼. 그래서 씨애스타란 이름을 지었다. siestar는 ‘Scar into star’를 줄인 말이다. 그 사이에 한글로 사랑 애愛, 그리고 영어로 e는 Love에서 가져온 것이다.


'상처는 별이 된다.

그 방법은 결국 사랑이다.

스스로에 대한 사랑과 용기만이 별이 될 수 있다,

그것이 상처일지라도."


그래서 나는 태어난 지 53년 만에 씨애스타로 다시 태어났다. 이제 출생의 비밀이라는 다른 사람이 씌워 준 안경을 벗고 나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지금 세상에 태어난 아이처럼, 눈이 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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