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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자인너마저 Nov 24. 2020

아무튼, 맥주는 독일이다

호프에서 쪼끼한잔

# 단골 질문


독일에서 공부를 하고 왔다는 얘기를 하면 십중팔구는 '독일 맥주 맛있나요?'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다음 질문은 역시나 소시지... 아마 독일 연관 검색어 중 맥주가 가장 상위 노출이 되어있지 않나 싶네요. 그 질문이 싫다는 게 아니라, 그럼 맛있지 맛없겠냐! 라는 마음속 외침과 함께, 카스와 하이트가 맥주 시장을 수십 년 지배한 우리나라에서, 독일 맥주에 대해 간단히 그리고 명확하게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네. 맛있죠~ 또 가고싶네요'라는 너스레로 받아쳐왔던 것 같아요. 그 첫 번째 이유는 독일 맥주의 긴 역사와 그 종류의 방대함이고, 두 번째 이유는 독일 맥주에 대한 제 경험이 그만큼 깊지 못하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생각난 김에, 그리고 6년 전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독일에서 1년간 이곳저곳 다니면서 마셔본 맥주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짧게...  



# 지역의 자랑, 맥주

쾰슈 맥주 '프뤼' 넘나 훌륭

독일에는 각 지역마다 지역을 대표하는 양조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안동소주, 제주도 한라산소주, 부산의 좋은데이! 만드는 방식이 지역마다 조금씩 달라서 그 지역을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꼭 한 번씩 지역 맥주를 드셔 보시길 추천합니다.

쾰른의 자랑 쾰슈

예를 들면 쾰른에서 Kölsch(쾰슈)를, 뮌헨에서 Paulaner(파울라너)를, 프랑크푸르트에서 Schöfferhofer(쉐퍼호퍼)나 Krombacher(크롬바허)를, 브레멘에서 Becks(벡스)를. 에르딩에 가면 Erdinger(에딩거)맥주를 드시면 됩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구스 아일랜드 역시 시카고의 한 섬 지명입니다. 칭다오도 중국 청도!

발음이 좀 어렵죠. 쉐퍼호퍼!!
참 많이도 마셨다. 비트부어거~~~

독일에서 가장 많이 마셨던 맥주는 프랑크푸르트 지역 맥주인 Schöfferhofer(쉐퍼호퍼)와 Bitburger(비트부르거)입니다. 제가 살던 곳이 프랑크푸르트 근처였습니다. 쉐퍼호퍼는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수입이 활발히 되어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는 맥주입니다. 비트부르거는 국내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프랑크푸르트가 속한 주의 작은 도시인 Bitburg(비트부르크)에서 만드는 맥주로 라벨은 이렇고, 독일 전체 판매량 3위 굉장히 대중적인 맥주입니다. 독일 내에서 광고도 엄청 많이 나오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 우리나라로 치면 카스나 하이트가 되겠네요.

이탈리아의 대표 맥주 Birra Moretti(비라 모레띠)

이렇게 지역명을 딴 맥주가 대부분이지만, 양조장 창립자의 이름을 딴 맥주도 여럿 있습니다. 챔피언스리그 스폰서로 제겐 너무 호감 브랜드인 Heineken(하이네켄)은 창립자 Gerard Adriaan Heineken의 이름을 땄고, 더블린의 흑맥주 Guinness(기네스)는 Arthur Guinness의 이름을 땄습니다. 피자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탈리아의 맥주 Birra Moretti(비라 모레티)의 창립자는 Luigi Moretti입니다. 마지막으로 독일 지역 내 판매 1등 맥주인 Beck's의 창립자는 Heinrich Beck씨 네요.



# 판매 1위 맥주, 벡스

말이 나온 김에 Beck's에 대해 좀 더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Beck's는 독일 내 판매 1위이기도 하지만, 해외 수출량도 1위입니다. 수출용 병맥주의 사이즈가 다양한데요, 아시아에서는 큰 병의 병맥주가 잘 팔리고, 유럽 내에서는 작은 병(330ml)에 담긴 맥주가 수출이 많이 된다고 합니다.

맥주와 전용잔. 우리는 카스를 하이트 잔에 테라 잔에...

그 이유는 바로 아시아와 유럽의 맥주를 즐기는 방식의 차이에 있는데요. 유럽 사람들은 맥주를 각각의 전용잔에 마시는 것을 선호합니다. 심지어 코스터까지 깔맞춤을 합니다. 그리고 한 병=한 잔 이라는 인식이 있죠. 자신의 페이스로 자기가 마시고 싶은 만큼. 반면 아시아에서는 큰 맥주병을 두고 여럿이서 작은 잔에 나눠마시는 스타일이죠. 서로 따라주고 서로의 페이스에 맞추죠. 무엇이 옳고 그르다가 아닌, 스타일의 차이에서 발생한!



# 벡스의 마케팅

라벨 어디갔엉

위에서 보신 것처럼 벡스는 라벨이 참 이쁩니다. 그런데 그 라벨을 드러내지 않는 마케팅을 통해서 오히려 벡스를 더 알리기도 합니다. 2018년 벡스는 5천만 병의 맥주에 'No Label'캠페인을 진행했는데요. 라벨 대신에 'Make it your Beck's'라는 캠페인으로 소비자들이 직접 라벨을 디자인해볼 수 있도록 했고 총 27,000점의 디자인이 접수되었다고 합니다.

Beck's Green Label



참, 벡스는 독일 Bremen지역의 맥주입니다. 독일의 큰 상업/공업 도시중 하나로, 노동자 계층이 대부분이었죠. 그래서 하루 일과를 마친 노동자들이 맥주 한 잔씩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고... 이와 동시에 벡스도 전국구를 넘어 주변 국가로 널리 널리 퍼지게 되었고 현재 독일 내 판매 1위, 수출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 맥주 많이 마시면 살찌나요?

ㅈㅓ도 이때 이후로 많이 쪘습니다

두괄식으로 말씀드리면 네 살찝니다. 참 안타깝죠??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마셔야지요...


살이 찌는 이유는 맥주에 포함된 당분 때문입니다. 맥주에는 알콜 이외에도 단백질, 당분 미네랄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500 생맥 두 잔 기준 120~200kcal 정도입니다. 사실 그렇게 부담되는 칼로리는 아닌데... 이 정도 칼로리도 섭취하기 싫은 분은 아사히 슈퍼드라이처럼 드라이 맥주를 드시면 살 덜 찝니다. 대신 저지방 우유가 그렇듯 맥주의 복합적이고 깊은 풍미는 부족하겠죠.



# 호프집 호프집

Hof Bräuhaus(호프 브로이하우스)라는 뮌헨의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명한 양조장이 있습니다(수용 인원은 무려 1,000명). 뮌헨에 방문할 일이 있다면 BMW 박물관과 함께 꼭 한 번 들러야 하는 명소이죠. 호프 브로이하우스...?


네 호프! 호프집! 아 호프집이 여기서 나온 말이구나! 그런데 호프는 독일어로 정원이라는 뜻이에요. 브로이하우스가 양조장. 뭔가 이상하다... 그렇죠? 우리는 왜 맥주 마시는 곳을 '브로이하우스'라 부르지 않고 그동안 '호프집'이라고 불렀을까... 1980년대 OB맥주가 대학로에 OB호프(OB정원, OB가든정도 되겠네요)라는 맥주집을 열어 대박이 난 이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맥주집을 (OB를 빼고) 호프집 호프집 이렇게 부르게 됐다고 해요… Hope 아니구여… 아무튼 뮌헨에 가면 꼭 제가 말한 '호프집'을 방문하시길!


뮌헨 얘기가 나온 김에, 독일의 가장 큰 축제라 할 수 있는 6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찾는 그야말로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는 10월이 아닌 9월에 열립니다. 옥토버는 10월을 뜻하지만 말이죠. 1800년대부터 이어져왔던 옥토버페스트는 원래 10월에 열리던 것이 요즘 들어 10월이 좀 춥다고 느껴서 9월 셋째 주로 당겨졌다고 해요.



# 국내산 하이네켄 맥주 

하이네켄 맥주는 독일의 이웃나라 네덜란드의 맥주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수입 맥주 중에 하나이기도 하죠. 그런데 이 하이네켄 맥주가 1981년부터 국내에서도 생산됐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뿐만 아니라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호가든(병맥주), 버드와이저는 국내 OB맥주 공장에서 생산됩니다. 그렇다고 실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맥주의 가장 많은 성분은 물이고, 어느 지역의 맥주가 맛이 좋다는 것은 곧 그 지역의 물 맛이 좋다는 뜻도 되는데요. 요즘 같은 시대의 기술력을 갖춘 맥주 양조장에서는 물의 미네랄 양을 99% 조절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말인즉슨 본고장 맥주의 물 맛과 99% 일치하는 물 맛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 OB맥주 공장에서 생산했다고는 하지만, 맛은 현지와 99% 동일하다는 점~



# 라들러 맥주

저 같은 알쓰들을 위해 가벼운 맥주를 추천하자면, 라들러를 추천합니다. 맥주와 레모네이드를 혼합한 음료이고, 독일어로 Radler는 자전거(Fahrrad, Rad는 Wheel)를 타는 사람이라는 뜻. 라들러를 마신 후에도 자전거를 탈 수 있다(그만큼 알콜 함량이 낮다 2~2.5%)는 뜻에서 유래했습니다.


참고로 맥주의 나라답게 독일에서는 맥주를 만 16세 이후부터 마실 수 있습니다.



# 번외, 파타고니아의 맥주

디자인마저 파타고니아 그 자체

파타고니아는 왜 맥주를 만들었을까... 개인적으로도 좋아하고 한국에서도 참 인기가 많은 친환경 브랜드 파타고니아. 맥주를 ‘농산물’이라고 판단했다고 해요. 그도 그럴 것이 맥주는 보리와 홉으로 만들어지니까요. 화학 비료나 살충제 없이 효율적으로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파타고니아는 ‘컨자’라는 개량 품종으로 맥주를 생산, 판매하고 있습니다. 결국 맥주 또한 파타고니아가 바라보는 농업과 지구의 미래를 위한 일인 것이죠.


식품을 대하는 파타고니아의 태도는 ‘의류’에 대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놀랍네요. 불필요한 요소는 제거하고, 지역 경제에 도움을 주는 방식을 택하고, 맥주 한 캔을 마시는 것만으로도 환경을 보호하는 활동에 참가하게 되는 이 짜릿함...



# 마무리하며, 독일인에게 한국 맥주를 권해보았습니다

저의 독일인 친구는 한국이 자랑하는 하이트 병맥주를 한 입 하고는,

조용히 내려놓은 채 저녁 식사를 마칠 때까지 다시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네, 아무튼 맥주는 독일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미지 출처

https://www.serviceplan.com/en/our-work/becks-green-label.html

https://www.event-partner.de/wp-content/uploads/2015/12/Fr%C3%BCh-Veranstaltung-Heinzelm%C3%A4nchenraum-60.jpg

https://www.timeoutkorea.kr/seoul/ko/bars/%ED%95%9C%EA%B5%AD%EC%9D%98-%EB%A7%A5%EC%A3%BC-%EB%B3%80%EC%B2%9C%EC%82%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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