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종소리를 너무 믿은 게 문제였어

by 이엔에프제이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아이들이 우르르 교탁 앞으로 나와 뛰어다녔다. 유독 냄새에 민감한 한 아이가 큰소리로 외쳤다.

-와, 이 냄새 뭐지. 설마 오늘 급식은 정체불명의 짬뽕? 아니면 돈가스?

-그러게, 말이야.

-근데 칠판 앞으로 가면 냄새가 점점 더 독해지는 거 같아. 혹시?

-난 절대 아니야.

-나도 아니거든.

-일단 자리를 피해야겠어. 의심받기 전에.

나는 창문에 기대어 미소를 감춘 채 아이들의 대화를 즐겼다. 방심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살짝 빠져나왔기에 대처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시치미를 뗄 수밖에 없는 순간 포착은 나의 유일한 기쁨이었다.

얼마 전 나는 급하게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하게 되었다. 수술은 잘 되었지만, 매우 중요한 마지막 확인 절차가 남았다고 했다. 나는 매시간 긴장된 상태로 몸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반응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전달되지 않았다. 혹시 무의식 중에 몸 안에서 빠져나온 걸 내가 감지하지 못한 건 아니었을까. 아니면 뭔가 잘못된 건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불안하게 스쳤다. 뿡. 삼 일째 되던 날 아침,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분명한 그 소리, 작지만 희망찬 소리였다. 곧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신호였다.

기쁨도 잠시 퇴원한 그날부터 시도 때도 없이 방귀가 터져 나온 까닭에, 나는 어쩔 수 없이 혼자의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분명 어떤 부작용은 아니라고 했는데도 사람들과의 만남이 조금 불편했다. 어쨌든 의도치 않게 한강이 보인 나만의 방구석을 차지하게 된 이유일지 몰랐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최적의 환경에서 뿜어 나온 소리는 창문을 열고 자유롭게 한강으로 날아가곤 했다. 어느 날 나의 자유로운 삶을 무척 부러워하던 대학원 동기한테서 뜬금없이 연락이 왔다. 그러곤 다짜고짜 뭔가의 억울함을 짧게 얘기한 후 떨림이 묻어난 목소리로 부탁을 했다.

-남편의 결벽증 때문에, 방금 이혼 도장 찍고 나온 길이야.

-에고, 그랬구나.

-그래서 말인데, 나 하룻밤만 재워줄 수 있니?

-당연하지. 어서 와.

나는 흔쾌히 대답했다. 우린 최고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거추장스러운 옷 따위는 벗어던졌다. 그리고 약속했다. 몸 안에서 나온 모든 반응을 존중할 것. 서로 눈치 보지 말 것. 오직 지금 올라오는 감정에 집중할 것. 그러곤 한강 너머의 야경을 보며 우린 와인을 마셨다. 조명 탓인지, 그녀의 발그스레한 볼이 기분 나쁠 정도로 매력적이고 예뻤다. 음악을 틀고 춤을 췄다. 이제 완전한 자유인이나 다름없음을 마음껏 축하해주었다. 조명이 꺼지기도 전에 거실에 널브러져 자고 있던 그녀의 몸 안에서 어떤 소리가 연거푸 들렸다. 뭐지, 설마? 나는 지나치고 싶은데 그녀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소리에 민감해졌는데도 희한하게 그 소리는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 소리는 재밌게 웃을 수 있는 어떤 비타민 같은 활력소였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하지만 출중한 외모에 박사 출신인 그녀는 식탁에서 밥을 먹다가 비교적 자주 방귀를 뀌었다는 이유로 무시당한 설움을 견딜 수 없었다고 했다. 그건 아직 살아있다는, 건강하다는 증거일 텐데도 누군가는 그 자연스러운 현상을 인정하기 싫은 모양이었다. 이기적인 시간에 마침표를 찍고 돌아간 그녀의 뒷모습 뒤로 뿌연 안개가 자욱했다.

나는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의 틈새를 이용하여 부글거리던 배에 힘을 주었다. 종소리에 묻혀가길 바라는 마음이었고 표정은 여유로웠다. 그런데 맙소사, 뿡뿡 이제 막 나오는데 평상시보다 빨리 종소리가 끝나버렸다. 아이들은 모두 반신반의하는 눈동자를 굴리며 동시에 나를 쏘아봤다.

-설마 지난번에도 선생님이 방귀 뀌셨어요?

-맞아. 그때도 나였어.

-뭐예요, 그럼 방귀쟁이 선생님?

-그래도 괜찮아, 근데 너희들은 혹시라도 친구가 방귀 뀌었다고 놀리면 안 돼.

-네 알겠습니다, 방귀쟁이 선생님.

그날 이후, 학교에만 가면 짓궂게 나를 놀리던 아이들과 더 친밀해졌다. 방귀의 소통은 오래도록 나를 웃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