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 서울에서 부산까지 달렸다.
어느 겨울밤.
자고 싶은 데 잠이 오지 않았다.
혹여 수면에 방해될까 봐 발끝에 던져 놓은 핸드폰을 가져올지 말아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의식적으로 잠을 자야 한다는 생각이 깊어질수록 별의별 생각들이 뇌 주변으로 모였다.
떨쳐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어느 것 하나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몸을 뒤척이지도 못하고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부탁을 하고 애원해 봐도 꿈쩍도 하지 않는 불량한 나의 수면 패턴.
입면기 불면증이 시작된 후 삶의 질이 바닥이었다.
조금씩 변해가는 일상들이 낯설기만 했다.
그러려니 하고 적응하며 살기로 마음먹었는데 언젠가부터 조조 각성까지 생겼다.
겨우 잠이 든 거 같은데 수면 중간에 맑은 정신으로 눈이 확 떠진 날이 많았다.
몇 시쯤 되었을까 시간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대로 눈을 감았다.
좀 더 재워주기를 간절하게 빌면서.
하지만 그냥 눈을 뜨고 말았다.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기 직전 짜증 내지 않고 조용히 이불 밖으로 나왔다.
그러곤 주섬주섬 옷을 껴입고 카드와 자동차 키만 들고 현관문을 나섰다.
새벽 두 시.
깜깜한 주차장에 세워진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모르겠다.
어디든 달리고 싶었다.
본능적으로 생각난 것은 고속도로 질주였다.
이렇게라도 스트레스가 풀린다면 한 번쯤은 도전해 볼만했다.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한 나는 운전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목적지는 불분명했다.
앞차가 보이지 않을수록 긴장의 땀이 났다.
다른 잡생각이 사라졌다.
고속도로 중간 어디쯤에서부터 급기야 눈발까지 흩날려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맙소사, 오래전 눈 오던 날에 사고 났을 때의 트라우마가 다시 소환되었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
몸이 점점 굳어져 경직된 다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머리에선 눈이 더 쌓이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하라 하고, 눈앞에 보인 배경은 나를 더 암흑세계로 몰아갔다.
그렇다고 운전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냥 직진만 했다.
답이 보일 때까지.
다행히 눈발이 멈췄다.
밤새 서울에서 부산까지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렸다.
어스름이 걷히고 이윽고 나타난 이기대 공원.
이기대는 자연스럽게 목적지가 되어 버린 셈이었다.
수평선 끝자락에서 떠오른 태양이 나를 반기는 듯했다.
잠깐이었지만 이유 없이 행복했다.
아침 햇살을 가득 머금은 이기대 공원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좀 더 아늑하고 포근한 햇살로 안아달라고 요청하며 그렇게 해변산책을 했다.
바닷가와 어우러진 해안절벽을 따라 이어진 데크산책로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가끔 바람이 불 때마다 꽁꽁 얼어버린 나의 손과 발 그리고 얼굴의 근육이 아팠다.
털 목도리라도 챙겼어야 했다는 걸 몰랐다.
일정한 간격으로 철썩거린 파도의 울림이 아침 고요를 깨트리며 나의 심장으로 파고들었다.
오늘 밤은 꿀잠을 잘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