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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엔에프제이 Jan 04. 2024

드라이브

고흥에서 여수 가는 길 위의 찻집

나는 오랜만에 고흥에 있는 나로우주센터를 방문했다.

그리고 쑥섬에 올랐다.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난 힐링 정원이었다.

국내에서 유일한 해상 꽃 정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하늘과 바다 사이에 있던 아담하고 소박한 하늘 정원에 다다르니 감탄사가 쉴 틈이 없었다. 

삼삼오오 저마다의 사연을 들고 오는 사람도 있고 혹은 혼자만의 조용한 내적 사유의 시간을 갖고 싶어 찾아온 사람도 더러 있는 듯했다. 

왠지 여기에선 욕심을 부려선 안 될 거 같은 소소한 여유로움이 나를 확 끌어당기는 거 같았다. 

어디 그뿐일까.

남해안에서만 볼 수 있다는 난대 원시림이 울창한 당숲에선 인생샷을 남기기도 했다.

둘레길을 걸으며 만난 바위들도 나처럼 뭔지 모를 사연이 있는 듯했다.

바다가 잘 보인 정원 벤치에 앉아 짭조름한 햇살을 맞으며 나는 잠시 멍 때리고 싶었다.


작고 소박한 정원이 주는 기쁨이 이만큼인데 나는 무엇 때문에 맘껏 웃지 못하는가.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데 끝내 비우지 못하고 있으니 무얼 더 기대할 수 있겠는가.    

노력 없이 타인의 시선에 조종당하지 않고 어떻게 일평생 나의 시선을 따라 살겠는가.

잠잠한 생각이 깨어나자 갖가지 야생화와 분홍 접시꽃 사이로 바닷물이 출렁인 소리가 가슴에 와닿았다.

자족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뇌리에 맴돈다.

쑥섬에서 바라본 주변의 풍광은 날 배신하고 떠났던 사람마저 용서하게 만들었다.

때 묻지 않은 둘레길을 걸으며 나의 삶에 쌓여 있던 묵은 때를 의지적으로 벗기고 싶었다.

이어서 감사함으로 소박하게 살고 싶단 마음이 한결같기를 바랐다.


정오의 따사로운 햇살이 지나가자 문득 쑥섬에서 내려다본 바닷길을 따라 달리고 싶었다.

나는 새로운 마음 가짐이라도 하는 양 지체 없이 내려와 시동을 걸었다.

남해안 섬과 섬들이 연결되어 육지와 육지의 만남이 이루어질 첫 번째 다리를 향해 달렸다.

섬과 사람을 잇는 첫 번째 다리인 팔영대교를 따라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서행 운전을 하며 좌우로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바다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앙증맞은 작은 섬들이 더는 외롭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

부드럽게 연결된 다리를 지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어쩌면 더불어 산다는 게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연결 고리 같은 거.


팔영대교가 잘 보인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주문했다. 

맙소사, 카페 안에 통유리로 되어 있는 화장실이라니.

낯선 장면이어서 볼 일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부끄러움은 잠깐이었고 나는 점점 빨려갔다. 

화장실 통유리 밖으로 펼쳐진 바다가 그리고 파도가 들려준 평안과 위로를 따라서 말이다.

마침내 커피 잔이 비워졌다.

나는 다시 시동을 걸었다.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남쪽 바다의 비경을 옆자리에 태우고 바닷길 한가운데를 달렸다. 

해안 도로를 따라 드라이브하던 나의 시선이 정면으로 돌아오자 여수가 코앞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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