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없이 텅 빈, 실속이 없이 헛된 상태
최근 들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나요?
공허함은 어떤 감정일까. 슬픔이나 외로움처럼 뚜렷한 모양을 갖춘 감정은 아니다. 차라리 감정이 사라진 자리 마음이 뻥 뚫린 틈 같은 것이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채 그저 비어 있음으로 존재하는 감정. 그래서 더 당황스럽다. 아프지도 않은데 어딘가가 계속 아픈 것 같다.
공허함은 종종 무언가가 끝났을 때 찾아온다. 시험이 끝난 후의 허무, 오랜 연애가 끝난 뒤의 적막, 목표를 이룬 뒤 밀려드는 정체감.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채우고 있던 의미라는 벽돌들이 무너질 때 비로소 그 빈자리를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의미 없는 공간 속에 혼자 남겨졌을 때 우리는 말한다. 공허하다고.
그런데 이 감정은 묘하게 중독성이 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으며 그저 멍하니 공허 속에 머무르고 싶은 날이 있다. 사람들 틈에 있어도 외로운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연결될 수 없다는 느낌. 세상의 소리들은 내 귀에 닿지 않고 내 마음의 말은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다. 내 안의 방은 텅 비었고 그 안에 갇혀 있는 나조차 그 방의 주인이 아닌 느낌. 살아는 있지만 삶이 내 것이 아닌 느낌.
하지만 공허함은 때로 귀중한 쉼의 징후이기도 하다. 그동안 너무 많이 쏟고 열심히 애쓰고 자신을 희생했던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감정. 자신조차 몰랐던 마음의 고갈이 공허함이라는 언어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공허함을 직면하는 순간 우리는 삶의 방향을 새로 점검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을 없애려 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는 일이다. 내가 무엇을 잃었는지 무엇을 너무 오래 참았는지 무엇을 향해 달려오다 길을 잃었는지. 공허함은 질문이다. 삶이 내게 던지는 고요하고도 깊은 질문. 그 질문 앞에서 멈추어 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결국 공허함은 내면의 방을 다시 채워갈 기회다. 무언가로 급하게 채워 넣기보다 천천히 새로운 의미들을 놓아두는 일. 햇살이 들고 바람이 스며드는 창을 열어두듯이. 언젠가 다시 따뜻한 감정이 찾아올 수 있도록. 누군가의 말 한마디, 나를 위한 찻잔 하나, 조용한 책 한 권으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그러니 공허한 감정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할 길목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