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가족이 되다
“아, 뼈다귀 해장국 먹고 싶어.”
“뭐라고, 또?”
“그렇다네. 지금 어디야?”
한여름인데도 감출 수 없는 식욕이 나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내 안에 또 다른 생명이 숨을 쉬며 탯줄을 통해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뭔지 모를 황홀함을 느끼곤 했다. 첫 태동이 느껴지는 날, 그날의 신비로움은 결단코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대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뜨거운 맥박 소리가 이토록 아름답고 경이로웠다는 사실을 느끼는 순간 온몸에 소름 꽃이 피었다.
그렇게 내게로 온 사랑스러운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밤낮으로 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 작디작은 집이 얼마나 답답하였던지 곧 집을 부수고 나올 태세였다. 주변 사람들은 어느새 이른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듯했다. 나에게도 봄이 올 것 같아 틈틈이 봄맞이하고 싶었다. 하지만 봄을 느끼기도 전에 때때로 긴장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아니나 다를까 아직 예정일이 일주일이나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양수가 터져버렸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 아침 8시쯤 병원에 도착하여 오랜 진통의 시간이 지나도 아이는 숨바꼭질을 하는 듯 자꾸만 위로 올라가 버리곤 했다. 그렇게 애간장을 태우기만 하던 아이가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결국 수술하기로 했다. 오후 3시를 지나 마침내 나의 반쪽 아니 나의 전부인 것만 같은 아들과 만남이 이루어졌다. 4.2kg의 건강한 아이, 신생아의 주름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하얀 피부를 가진 아이가 마치 윙크하듯 나를 보며 베넷 웃음을 웃었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어떤 책임감 같은 울컥함이 내 안으로 쏙 들어왔다. 그리곤 아이가 살았던 집이 이사라도 간 것처럼 허전함이 남은 곳엔 알 수 없는 묘한 감정들로 채워졌다. 분명 무거웠던 육신은 홀가분하여 살 것만 같은데 마음의 중심은 양가감정의 혼란으로 인해 흔들리고 있음을 감지했다.
솔직히 엄마가 된다는 것이 두려웠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 보아도 자신이 없었다. 아이를 보면 볼수록 더더욱 그랬다. 밤이면 밤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다음 날 아침이면 눈이 퉁퉁 부어 밤새 울었던 것을 숨길 수도 없었다.
사실 같은 병실에 있던 다른 산모의 아이가 태어난 지 하루 만에 건강에 이상을 발견한 후 핏덩이 같은 작은 몸에 주사를 주렁주렁 매달 고선 급하게 큰 병원으로 갔었다. 하지만 건강하게 돌아올 거라는 기대를 저버리고 아이는 엄마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사흘 만에 하늘나라로 갔다고 했다.
나의 몸도 속히 회복하여야 하는데 그 소식을 듣자마자 슬픔에 빠져버렸다. 당사자는 아닐지라도 같은 산모로서 마음의 충격이 가만가만 전이가 되는 듯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혼자였던 아이는 얼마나 무섭고 아팠을까. 지켜주지 못한 엄마의 마음은 또 얼마나 아렸을까. 퇴원하는 날까지 낮과 밤을 불문하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소리 없이 흐느껴 우는 것을 보았다. 마음이 짠하여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내 나도 같이 울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오랫동안 나의 몸과 마음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아서 조금 걱정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빈혈이 심하여 더 힘든 상황이 지속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잔상에는 무조건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부담이 강박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현실과 부딪치며 살아가는 동안 좋은 엄마가 될 수 있겠냐는 의문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나는 완벽하지도 못하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않음을 알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없었다. 좀 더 나은 환경에서 나보다 좋은 엄마를 만났으면 아이가 더 행복할 것 같은 생각이 들자 한없이 미안했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 어쩌자고 내게로 왔는지 바보 같은 질문을 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안고 있는데 느닷없이 눈물이 주르륵 흘러 아이의 작은 얼굴에 뚝 떨어지고 말았다. 아이는 깜짝 놀라 울고 나는 미안해서 울었다. 아마도 그 무렵이지 싶다. 나의 삶을 덮치는 우울한 기분은 나를 점점 더 바닥 깊은 곳으로 몰아갔다. 급기야 아이도 가정도 다 팽개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그냥 아무도 모르게 숨어버리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아이를 훌륭하게 잘 키울 자신이 없었기에 도망가고 싶었다. 부끄럽지만 그게 나였다. 그렇게 산후우울증을 호되게 앓았다.
그랬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늦가을 갈대만큼이나 요동치던 감정의 기복은 뜻밖에도 아이의 똘똘한 눈빛과 교감하기 시작하면서 안정을 찾는 듯했다. 그 아이는 다행히 기대했던 것보다 더 건강하게 잘 성장하여 가족 구성원 중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중심에 당당하게 서 있다. 생각할수록 한 생명이 태어나 가족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