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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리형 Mar 19. 2020

그리운 너를...

아름다운 날들에 대한 소고

 아름다운 눈으로 세상을 보던 너는 항상 예쁜 말을 했다. 온통 좋은 것만 바라보던 너는 나쁜 말을 할 줄 몰랐다. 함께 오고 가던 그 조그만 둑길에서 너는 나에게 늘 빛나는 표정으로 내일을 얘기했고, 재잘거리던 너의 옆모습은 햇살에 비칠 때 태양보다 밝았다.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어디에 살고 싶은지, 네가 얘기하는 소소한 미래의 일상 속에는 항상 우리가 있었다. 그 모든  것에 나와 함께 하자고 말했다. 나는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여겼고, 네가 말하는 꿈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 줄 몰랐다. 밤에 그 길을 걸을 때면 별을 보며 감상에 잠길 줄도 알았는데, 그 눈빛에는 결코 흐려지지 않는 샛별 같은 깨끗함이 있었다. 미래를 얘기하던 낮과는 달리, 과거를 얘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이 가장 힘들었고, 누가 자신을 힘들게 하는지. 가끔은 그게 나이기도 했는데, 그때는 별생각 없이 넘겨듣고는 했다. 그렇게 우리들이 함께 하는 날들은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고, 항상 옆에 있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네가 내 옆에 없는 날도 조금씩 늘어만 갔다.


 "우리 다시 만나는 날이 올 거야. 그러니까 잘 지내고 있어"

 너는 먼 곳으로 공부를 하러 간다고 말했다. 원하면 언제든 전화를 할 수 있는 세상에 살면서 굳이 작별 인사를 했던 건, 아마도 나와의 관계를 여기까지로 잠시 정리하고 싶었던 것이겠지. 새로운 곳에 새로운 마음으로 가고 싶었던 것이었겠지. 그러면서도 굳이 언젠가 있을 재회를 언급한 건, 너의 마음속에도 약간의 아쉬움은 있었던 것이라고 여기고 싶었다. 붙잡을 새도 없이 그렇게 떠나간 이후로 더 이상 너와 연락이 되지 않았고, 우리는 각자의 있을 곳에서 각자의 삶을 살게 되었다. 


 시간은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처럼, 사실을 거짓처럼, 추억을 꿈처럼 만드는 능력이 있다. 하루하루 내 삶을 살아내는 것조차 버거운 시간이 흐르고 또 흐르다 보면 어느새 과거는 또 하나의 흐릿한 거짓말이 되고 만다. 너의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을 그때쯤, 너의 목소리가 잘 생각나지 않을 그때쯤, 네가 했던 얘기들이 잘 기억나지 않을 그때쯤, 나는 그때 즈음의 어느 날인가 네가 몹시도 그리워졌다. 해가 반쯤 진 노을빛이 물든 너의 옆모습이, 낭창거리던 에너지를 발산하던 너의 말소리가, 듣는 것만으로 기분 좋아지는 희망을 담은 너의 꿈들이... 시간으로 뿌옇게 모자이크 된 기억의 모서리를 깨끗하게 지우고 선명하게 보고 듣고 느끼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 휩싸이고는 한다.


 하지만, 너무 오래 지나버린 날들은 너에게 닿을 수 있는 그림자를 지워버렸다. 그 희미한 그림자가 너에게로 갈 수 있는 유일한 이정표이자 지도인데도 난 그것을 잃어버렸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현재에서 나는 과거의 너를 기억하다 말다, 그렇게 보고 싶은 마음을 가득 안고 지내다 보면 또 갑자기 괜찮아지고는 했다. 그리고는 너의 존재는 사람을 피해 숲으로 숨은 요정처럼 내 마음속에서 점점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숨어 버렸다. 


 많고 많은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나 자신이 어디 있는지조차 모를 만큼 먼 길을 걸어왔고, 모든 순수함 마음을 잃어버리고 깜깜한 어둠 속에 주저앉았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비로소 멀리에 있는 줄 알았던 너를 다시 볼 수 있었다. 너는 여전히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밝게 빛을 내고 있었다. 주변이 모두 어두워진 후에야 항상 마음속에 너를 품고 다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내 안에서 오래전 잃어버린 너를 발견했을 때, 너는 그곳에서 여전히 예쁜 눈을 한껏 반짝이고 있었고, 나는 그런 너를 바라보다 따라서 그리운 미소를 짓고 말았다.



-처리형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MKAfCDsK4pWxrz2USDvAag


-처리형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churih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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