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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리형 Nov 18. 2019

새벽 3시의 거리

집을 찾아가지 못한 미련들

 이 새벽에 너의 얼굴을 그려보다 너의 말투를 떠올려보다,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집을 나서 걷고 또 걷는다. 큰길을 하나 건너고 오르막길을 하나 넘어 늘 너를 데려다주던 정겨운 골목길을 지나서 내 발걸음은 그렇게 또 너의 집 앞으로 간다.


 가로등 하나가 조그맣게 비추고 있는 자리, 그 옆 그늘에 서서 네 방 창문을 올려다본다. 3층 오른쪽에서 2번째. 눈에 익은 작은 창문 너머로 불이 켜져 있다. 너를 데려다준 밤에는 늘 네 방에 불이 켜지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발걸음을 돌렸었지. 너는 이미 거기에 살고 있지 않은데, 미련은 심술궂게도 너의 모습을 제멋대로 그려낸다. 금방이라도 창문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는 내 이름을 불러 줄 것만 같다.


 한참을 그곳에서 서성이다 되돌아오는 길에 우리가 자주 타던 심야 버스를 보았다. 너를 데려다 주기 위해 함께 타고 오던 저 버스 안에서, 가끔은 서로의 고민을 얘기하고, 가끔은 장난도 치고, 또 어쩔 땐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보기도 했었지. 네가 나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쉴 때면, 주변의 풍경과 소리가 하얗게 사라지고 우리 둘만 그곳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우리가 자주 앉던 뒤편에서 3번째 오른쪽 2인석. 그 자리에서 또 누군가는 새로운 사랑을 하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갈 텐데. 거기에 묻어 있는 너와 나의 모습은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못한 채 그렇게 떠나버리고 마는 걸까. 우리의 기억은 저 버스에 놔두고 내린 유실물처럼 그렇게 영영 잃어버린 것이 되는 걸까. 미련에 젖은 한걸음 한걸음이 모두 너의 생각으로 가득하다. 훅 하고 들어온 찬바람에 화들짝 놀랐다가도, 어느 순간 나는 또 너를 생각하고 있다. 


 새벽 3시의 거리는 슬픈 척 걷기에 적당하다. 늦게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수많은 미련들이 거리에 가득하다. 나 역시 그 많고 많은 미련들 중 하나겠지. 그만 집으로 가자고 억지로 손을 잡고 이끌어 보지만, 좀처럼 방향을 잡지 못하고 계속 뒤에 머물며 따라오지 않는다. 너를 데려다주던 그 거리를 떠나려 하지 않는다.


 이 새벽에 너의 얼굴을 그려보다 너의 말투를 떠올려보다,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집을 나선 그 길에서 나는 지나간 시간의 우리를 본다. 큰길을 하나 건너고 오르막길을 하나 넘어 늘 함께 내리던 버스 정거장 앞에 서서, 내 미련은 그렇게 또 너를 만나러 간다. 



-처리형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MKAfCDsK4pWxrz2USDvAag


-처리형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churih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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