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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May 12. 2019

눌러 담는다는 것

오늘 아침. 나의 계획표에 하루 일과를 눌러 담았다. 넘쳐 버릴 것 같은 일 들이 꾹꾹 들어가 하루를 가득 채웠다. 그러다가 문득 너를 생각했다. 아주 옛날, 오랜 시간 동안 너를 내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았었다. 너를 담을수록 내 마음은 점점 늘어나며 커졌다.


눌려진 마음이 커져가며 찢어질 듯 아파왔지만, 그만큼 단단해졌다. 가끔은 참을 수 없는 마음을 조금씩 덜어내어 펜을 꾹꾹 눌러가며 너에게 글을 써 보냈다. 그러면 터질 것 같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너를 비워냈다. 한번 눌려 늘어난 마음으로 세상을 더 넉넉히 품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내 마음은 성장했다.  

피아니스트는 건반을 꾹꾹 누르고, 현악기 연주자들은 현을 꽉 눌러 잡는다. 농부는 나무를 심고 땅을 눌러 밟고, 아르바이트생은 아이스크림을 통에 눌러 담는다. 어린 시절 친구를 부를 때 친구 집 초인종을 눌렀다. 누르는 것에서 감동과 기대감이 솟아 나온다.


요즘 여간해서 잘 누르지 않는 세상이다. 스마트한 기기들은 갖다 대기만 해도, 근처에만 가도 반응한다. 사람들도 굳이 예민할 필요가 없는 일에 점점 민감해졌다.


우선 마음에 한번 눌러 담아보고 마음 자국을 살펴보고 행동해도 될 텐데. 무엇이든 좀 더 꾹꾹 마음에 눌러 담아 넉넉해진 다음에 행동할 시간은 충분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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