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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May 12. 2019

팔이 아팠다

며칠 전부터  오른쪽 팔이 아팠다. 특히 무엇인가 들거나 팔을 좀 비틀면 더 그랬다. 아픔은 몸이 나에게 한번 잘 살펴봐 달라며 보내는 신호다. 살펴봐서 근육이 뭉쳤으면 움직여서 풀어야 하고 다친 것이면 아픈 팔을 쓰지 말아야 한다. 다쳐 염증이 있을 때 많이 움직이면 오히려 악화된다.


다친 기억은 없지만 우선 최대한 오른팔을 안 쓰기로 했다. 몸의 자연 치유력을 기대하며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얼마 전에 책을 읽다가 아이들을 '다정한 무관심'으로 대한다는 구절을 보았다. 커가는 아이들에게 무관심하기는 어렵지만 게으른 관심은 오히려 더 해롭다. 몸이 아픔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아이들도 아프다는 신호를 보낸다. 아이들의 신호는 부모에게 보통 반항이나 말 안 듣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서 연민보다는 '이렇게 두어서는 안 된다'는 당위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당위에 대한 처방은 질책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연민은 '오죽하면 이럴까.' 하는 공감으로 나타난다. 아이들의 마음을 가만히 살펴보고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아이들의 아픔을 함께 치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가능하면 아이들의 신호에 가만히 다정하게 지켜보는 편이 좋다. 아이들은 모르는 것 같으면서도 다 안다.


오른팔을 하루 이틀 쓰지 않았더니 아픔이 많이 가라앉았다.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몸 안의 모든 기관은 그동안 부지런하게 치유를 위하여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잠깐 잠이 들었다. 도착 즈음해서 눈을 떠보니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눈은 눈곱을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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