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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May 11. 2019

블랙홀의 버퍼링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블랙홀 관측에 성공했다는 기사 속 사진을 보았다. 지구에서 빛으로 5천5백만 년이나 떨어져 있는 은하 중심부의 그 블랙홀은 태양보다 65억 배나 무겁다고 했다. 짐작할 수 없는 아뜩한 거리에서 모든 것을 빛의 속도로 빨아들이고 있는 도넛 모양의 물체는 내 이해 범위 밖에 있었고, 그보다 더 신기했던 것은 그렇게나 멀리 떨어져 있는 블랙홀을 사진에 담은 관측 방법이었다.

블랙홀 관측을 위하여 우주 전파를 영상으로 구현하는 전파 망원경이 동원되었다. 여러 나라에 위치하는 전파 망원경을 서로 연결하여 지구 크기만 한 직경을 가진 가상 망원경을 만드는 기술이용했다. 망원경은 직경이 클수록 배율이 높아지므로 멀리 떨어진 망원경과 연결할수록 해상도는 더 높아졌다. 이번에는 칠레, 하와이, 스페인, 미국, 멕시코에서 남극까지 총 8개의 전파 망원경을 서로 연결하여 인간의 시야를 5천5백만 광년 거리까지 확장해냈다.


연결을 통한 시야 확장은 과학의 영역에만 있지 않다. '불편한 독서법'이라는 말이 있다. 보통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찾아 읽더라도 가끔은 선호 분야나 관점의 정반대에 있는 책을 찾아 읽는 방법이다. 생경한 분야나 철학이 완전히 다른 책은, 읽을 때는 불편하지만 그 책이 발산하는 전파와 연결되는 순간 생각의 범위가 확장된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확 넓어진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저마다 다른 주파수를 가지고 있어 좀처럼 연결이 쉽지 않다. 가까운 사이인데도 버퍼링이 계속되거나 가끔은 시스템이 멈춰버린 건지, 재부팅을 해야 하는 건지 하는 느낌도 받는다. 그럴 때면 업무나 혈연, 지연으로 얽혀있지 않는 사람들과 만날 기회를 가져보면 좋겠다. 서로 평소 영향을 주고받거나, 어떤 일을 하는 누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 또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보는 관계 맺음 속에서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축구를 할 때, 아옹다옹 좁은 공간에서 서로 공을 주고받다가 멀리 대각선으로 롱패스를 하는 순간 경기의 전략 공간이 확 열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요즘 들어 가족들과 얘기하다 보면 가끔 내가 버벅버벅 버퍼링 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뭔가 서로 연결이 잘 안 되고 연결될 때까지 계속 뱅글뱅글 돌아간다. 아무래도 관계가 5G 아니고 와이파이인 듯싶다. 기사에서 본 블랙홀의 모습이 언뜻 보면 버퍼링 되는 모습과 비슷하게 보였다. 우주 공간에서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나 블랙홀의 비밀이거나 버퍼링이거나 부디 모두 풀려서, 서로 멀리 같이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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